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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Sep 09. 2019

처음보는 사람 앞에서 이 쑤시지 마세요

감정을 팔고 죽음을 사는 사람들

    

“내 말 잘 들어. 내가 스타벅스 카드가 여러개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쓸 수 있겠어? 내가 왜 묻냐면, 전에 다른 애가 내 말을 못알아먹더라고. 그래서 하는 말이니까 내 말 잘 듣고 행동해. 할 수 있겠어?”     


말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쏟아진 이 말들은 전부 ‘실화’다. 50을 조금 넘어 보이는 남자고객이었다. 심지어 그는 충혈된 두 눈으로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손에 들고 있던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주문한 건 그다지 어려울 일도 없는 거였다. 메뉴를 정해주기만 하면, 차례로 카드잔액을 소진하는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다른 파트너가 못알아들었을리도 없었지만, 못알아들었다고 한 이유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정신을 부여잡고 답했다.      


“고객님. 하나씩 사용해 드릴게요. 어떤 거 주문하세요?”     


“아니. 내가 시킨 걸 할 수 있겠냐고? 내가 왜 묻는지 아냐고. 전에 너 같은 다른 애가 내가 시키는게 뭔지 말을 못알아듣더라고.”     


화가 치밀었다. 그가 전에 어떤 알바를 만났든, 설령 그 알바로부터 어떤 부당한 일을 당했든 그게 내게 이렇게 무례하게 대해도 되는 이유는 되지 않았다.      


이런 적도 있다. 두 사람의 중년여성이 함께

방문한 그들은 주문하는곳에 서서 한참을 둘이서만 대화를 했다. 그러다 음료를 시키고, 갑자기 주섬주섬 뒤에 짊어진 배낭에서 수십장의 스타벅스 카드를 꺼냈다.


“이거 잔액 확인해줄 수 있어?”


“네 한장씩 확인해 드릴게요”


그녀는 카드를 한장씩, 두손가락 사이에 끼워 계산대로 휙휙 던지기 시작했다. 앞 차례의 카드잔액조회가 끝나지 않아서 내가 미처 그 카드를 받아내지 못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30여장의 카드 잔액 확인이 끝났다. 그녀는 한장 한장 “이게 얼마였지?” 하며 계산대에 계속 자리잡은채 그걸 따로따로 지갑과 가방 주머니들에 정리하고 있었다.


“고객님. 다음분 주문 도와드려야 하는데 옆쪽에서 챙겨주시겠어요?”


그러자 그녀는 나를 휙 째려보며 말했다.


“다음분? 내가 일 마치기도 전에 무슨 다음분이야, 별 배워먹지 못한 미친 알바 다 보겠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내게 “일 나간 뒤로 너 많이 밝아졌다”고 말했던 남편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상고객에 대한 내 스트레스를 받아주는 창구가 되어갔다. 많이 자제하려 했지만 내게도 출구가 필요했고, 어느덧 나는 가족들에게 친한 친구들에게 내가 겪은 일들을 하나 둘 풀어가고 있었다.      


지역장과의 면접 때가 떠올랐다. 그때 지역장은 “주부인 것이 더 마음에 걸린다. 그 이유는, 주부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스트레스가 전가되는 걸 못견뎌하기 때문에 일에 적응 하더라도 결국 그것 때문에 그만두더라”는 말을 했었다. ‘감정을 받아주는 역할’인 주부이면서, 하루에 수십명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 그걸 다시 가정에 전가한다는 건 지역장의 말대로, 정말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때문에 나는 주로, 스스로도 내가 겪은 일들을 모른척하는 편을 택했다. 처음 진상고객을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다음날 오픈 근무임에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나가는 일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분노가 가시지를 않았다. 그리고 너무나 빈번한 진상고객과의 대면에, 결국 이걸 그냥 넘겨버리는 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매순간 학습되는 무력감. 처음 접하는 타인들의 지독한 무례함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것을 스스로 ‘프로페셔널하다’고 여기는 태도. 이런 것들이 쌓여가며 나는 점점 내 안에 있는 어떤 것들이 죽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의 사회학자 엘리 러셀 혹실드는 자신의 저서 <통제된 마음>에서 감정노동자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들을 ‘감정을 팔고 죽음을 사는 사람들’ 이라고 언급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산다’는 표현에 감히 공감하리라.      


그 후 중년여성고객들은 결국 그 카드를 하나하나 다른 공간에 차곡차곡 챙기고서야 자리를 떴다. 이쑤시개 할아버지의 경우는 어떻게 주문을 했고, 어떻게 자리를 떠났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억지로 잊는 걸 택한 것 같다. 다만 그가 주문을 마치고 가면서는 아예 손가락으로 앞니에 묻은 이물질을 쑤시며 나를 곁눈질로 흘깃 보던 눈빛 같은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주문받는 알바를 아예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는 것 같은 그의 태도는 어쩌면 단지 알바생을 대할 때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알바’를 하지 않았으면 결코 겪을 일이 없었을 무례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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