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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Sep 16. 2019

이선희 선생님이 뭐 좋아하세요?

feat.이거 변호사님들이 드실거예요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면 초반에는 마감업무에 투입된다. 마감업무를 먼저 익힌 후 상황에 따라 고정이 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교대근무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오픈, 미들, 마감으로 불리는 세 가지 형태의 근무는 각각의 특성이 굉장히 뚜렷해서, 파트너 중에는 각각 오픈, 마감, 미들 중 선호하는 스타일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하루를 일찍 시작해 길게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픈을 선호하는 경우가 가장 많기는 했지만 미들이나 마감의 경우 보다 한가하다는 장점이 있고, 대학생인 파트너의 경우는 학업과 병행할 수 있다는 이유로 마감을 선호하기도 했다. 내 경우 마감근무는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 때문에 애가 탔지만 어느정도 집안의 일을 마무리해놓고 나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게다가 밤에 외출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자체가 행복하기까지 했다. 내가 일하는 매장과 우리집 사이에는 반포대교가 있었는데, 반포대교를 지나며 버스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의 풍경이 일하는 내내 큰 위안이 되었다.      


가을의 낙엽이 겨울의 까만 강으로 변하고, 다시 봄이 되어 벚꽃이 필 때까지 나는 근무를 했는데, 봄 무렵부터는 오픈 고정이 되었지만 매장 사정에 따라 여전히 마감에 투입되는 경우도 있었다. 마감 근무를 하면 고객의 특성을 더 면밀히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바리스타가 오전보다 한가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고객 역시 마감시간대에 방문한 이들은 오전보다 한가하며, 매장잔류시간이 길다. 테이크아웃보다는 책 한권, 노트북을 가지고 자리에 머무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틈틈이 매장을 돌며 청소를 하는 바리스타의 눈에는 보지 않으려해도 손님들의 면면이 들어올 때도 있고, 때문에 내가 기억하는 고객들의 상당수는 저녁에 방문했던 이들이었다.      


하루는 저녁에 근무를 하고 있는데, 고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중년 여자고객이 들어왔다. 그 분은 들어오자마자 푸드쇼케이스를 훑어보며 물었다.     

 

“이선희 선생님이 뭐 좋아하세요?”    

 

정말로 이게 첫 마디였고, 나는 당황했다.     

 

“네? 누구요?”     


“이선희 선생님이요. 지금 뵈러 갈건데, 뭐 좋아하시는지 모르세요?”     


나와 다른 파트너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 고객은 기가 찬다는 표정을 지으며 스스로 품목을 정해 주문을 마쳤다. 케이크와 빵 여러개를 포장해 간 것으로 보아 나름대로 그 고객에게 중요한 사람을 위해 가져가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나중에 혹시나 ‘이선희 선생님’이 단골인가 싶어서 매장 안의 모든 파트너에게 그 건에 대해 질문해봤지만 아무도 그 사람을 알지 못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기들이 주문하는 커피를 마실 사람을 높이느라 알바를 하대하는 부류도 있었다. 그때는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가해지기 시작하는 무렵이었다. 두 명의 중년 여성이 들어와 아메리카노 네잔을 주문했다. 캐리어포장도 부탁한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가져간다는 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주문을 받는 포지션에 있었고 다른 파트너가 바에서 음료를 제조하고 있었다. 주문을 마친 후 다른 고객들을 받고 있는데, 바 쪽에서 아까 그 여성들이 화난 얼굴로 다가왔다.      


“아메리카노 시켰는데 네 잔 다 라떼잖아요?”     


상황을 보니 바에 있는 파트너가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사실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헷갈리는건 흔한 실수 중 하나이고, 고객의 잘못인 경우가 파트너의 잘못인 경우보다 훨씬 많다. 실제로 이것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은 ‘정말 계산대에 녹음기 설치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었다. 아마도 라떼가 아메리카노와 함께 워낙 자주 찾는 음료이기 때문에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어쨌든 이번에는 주문서에 확실히 <아메리카노 4>가 찍혀있고, 고객들도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바에 있는 파트너의 실수인 것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우리의 잘못임에도 내가 그 고객들을 ‘진상’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다음의 대사 때문이다.      


“무슨 이런 실수를 해? 이거 변호사님들이 드실 거예요”     


나도, 다른 파트너도, 뭐라고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당연히 뱉을 수는 없었다. 그녀들은 이어 음료를 제조한 파트너를 향해 “무슨 주문을 이따위로 받아놓고 넙죽 사과부터 해야지, 말이 많아?”하는 식의 발언들을 이어갔다. 직접적으로 나를 향한 것이 아닌데도 듣기에 괴로웠다. 파트너가 하려는 사과나 변명의 말을 신경질적으로 자르며 “일을 이딴식으로 하면 어떡하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인상을 팍 쓰고 있더라니까” 같은 인신공격성 발언도 했다. 마지막에 나가면서 그들은 나를 향해서 “이쪽은 주문 제대로 받았잖아. 그쵸? 잘했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매장을 나갔다. 당연히 그 질책을 고스란히 들으며 새로 만들어준 네 잔의 아메리카노를 들고서였다.      


물론, 이 일은 내가 겪었던 다른 진상들의 일화에 비하면 진상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객이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잘못 말하면 실수고 파트너가 그것을 실수하면 대역죄인일까? ‘변호사님들이 드실거’라는 말의 행간에는 ‘그런데 니들이 감히 실수를 하냐’는 말이 숨어있다는 것은 내 과민한 상상이 결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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