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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10. 2019

내가 너 죽여버릴거야

커피와 술의 상관관계

술과 커피는 어느정도 상충되는 존재일 거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언제 커피 한잔 하자"와 "언제 술 한잔 하자"사이의 어감은 상대와의 친밀도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하고, 첫만남에서 밥을 먹은 다음 술을 마시러 가느냐, 커피를 마시러 가느냐가 상대에 대한 호감도와 (소개팅의 경우) 애프터 여부를 암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술과 커피는 그만큼, 서로 대비되는, 서로 어느정도 반대되는 개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인즉슨, '카페에 진상이 많아봐야 술집만큼 많겠냐. 적어도 술에 취한 사람이 횡포를 부리는 일은 거의 볼일이 없겠지. 맨정신인 사람만 상대하겠지' 라는 것이, 카페 알바를 해보기 전의 나의 생각이었다.


현실은 달랐다. 적어도 연말에 한정해서만큼은, 커피와 술은 함께가는 존재였다. 이런걸 경제학 용어로 보완재라고 하던가. 둘은 서로를 보완하며 함께 가야 하는 단짝처럼 보였다.


12월. 바야흐로 송년회시즌이었다. 나 역시도 사회생활의 일원이었던 시절 술을 진탕 마신 후 여럿이서 우르르 카페에 들어가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주문하곤 했었다. 내가 '사회'를 떠난 지 수년이 지났어도 사람사는건 언제 어디서나 비슷한가보다. 술에 취한 이들이 끊임없이 카페로 왔고, 열잔 이상의 단체주문이 마감 20분, 10분 전에도 밀려들어왔다.


매장에는 나를 포함해 두 사람만이 근무 중이었다. 다른 직원은 바에서 음료를 제조하는 일을 맡았고 나는 계산대 업무를 보며 빵, 케익 등을 데우거나 포장하는 업무를 맡았다. 이 일을 글로 쓰면 정말 별 것도 아닌 일 같지만 실제로 고객이 많은 상황에서 이 같은 업무분담에 직면하면 말그대로 컨베이어벨트위에 놓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순서대로, 루틴을 한시라도 놓쳤다가는 일이 꼬여 업무가 느려져버리고 마는 긴장감. 이런 상황에서는 대신 시간은 잘 가기 때문에, 그럭저럭 벨트 위를 널뛴다는 생각에 집중하며 업무를 하다보면 그날의 일이 끝나있는 경우가 많다.


고객이 늘 많은 프렌차이즈커피회사의 특성상 파트너들에게 동영상강의까지 공유하며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실제로 이 루틴을 놓쳤다가 음료를 10분만에 내놓게 되는 참사를 겪은 적도 있다. 이토록 중요한 루틴의 기본 중의 기본은, '먼저 온 고객의 주문을 먼저 처리한다'는 것. 이것을 어기기를 강요받는 일은 사실상 그날 밤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날밤은 음식을 데워서 포장해가는 고객도 유독 많았다. 자연히 십수잔씩 음료를 제조하는 선임파트너나, 온갖 푸드를 종류별로 데워가며 주문을 받고 있는 나나, 서로 말할 틈 없이 자기 '벨트 위'에서만 집중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내가 데워진 샌드위치를 막 집게로 꺼내고 있을 때였다. 매장에서 화장실로 가려면 나가야 하는 문(우리 매장에는 화장실이 없어서 상가에 있는 공용화장실을 이용하도록 안내되어있었다) 앞, 다시 말해 매장을 나가는 문 앞에 한 할아버지가 비스듬히 기대어 선채로 말을 걸었다.


"화장실 비번"


그때 그의 태도가 어땠고, 그 말이 심지어 반말이었고, 하는 것들이 중요치도 않을만큼 매장은 바빴다. 나는 기계처럼 외우고 있는 화장실 비밀번호를 읊어주었다.


"그거 아니야. 화장실 비밀번호가 뭐야?"


사실 매장에 연결된 그 상가 화장실의 비밀번호를 물어오는 고객의 수는 상상 이상이다. 매장유리문에 화장실 비번이 붙어있음에도 그 질문을 하루에 백번은 받는 통에, 근무 첫날 몇시간만에 화장실 비멀번호를 외웠던 것은 물론이고, 우리 매장의 파트너 중 누군가가 고객에게 비밀번호를 틀리게 가르쳐줄 확률은 정말로 0에 수렴한다.


"다시 한번만 해보세요 고객님~^^ 그 비밀번호 맞아요 제가 매일 가는데요"


"아니라고. 싸겠다고. 화장실 비밀번호가 뭐냐고"


그제야 나는 그가 취한 상태라는 걸 눈치챘다. 함께 근무하던 선임에게, 저 사람 일을 먼저 봐주도 될지를 물었다. 눈치로 그 사람의 상태를 확인한 선임은 지금 데우고 있던 샌드위치만 포장한 후에 그의 요구를 먼저 들어주자고 말했다. 샌드위치가 오븐에 이미 들어가 있어서 바로 자리를 뜰 수 없었던 나는-샌드위치는 보통 20초 정도 돌아간 후에 바로 꺼내야 타지 않는다-그를 향해 웃으며 말을 했다.


"고객님 그러시면 제가 이것만 끝나고 바로 가서 도와드릴게요~^^"


나도 힘들게 웃은 거였다. 헌데 그 때문에 더 만만해보였던 걸까. 정말이지 나이를 먹어가며 옛 선조들이 만들어놓은 속담들이 참 훌륭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되는데, 적어도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만큼은 틀렸다는걸 카페에서 일하는 동안에 확실히 깨닫게 됐다.


"어 그래라. 대신 가서 너 비번 틀렸으면 내가 너 죽여버릴거야"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 말에 웃으며 대응할만큼 나는 대인배가 아니었다. 싸한 기운이 흘렀고, 선임도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그 분위기를 본 할아버지고객은 되려 더 화를 냈다.


"내가 싸겠다잖아. 내가 알바들을 수업이 봤지만 이따위 알바들은 태어나서 처음 봤어!!!"


그는 바지 지퍼를 내리며 바 안으로 들어섰다. 고객이 진입할 수 없는 구역이었다. 들어오시면 안된다는 교과서적인 말은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나를 위협적인 눈길로 보며 밀치더니, 안쪽에 있는 선임에게 다가가 화를 퍼부었다. 우리 사이의 대화나 분위기를 보고 안쪽에 서 있던 파트너가 책임자임을 눈치챘을 정도면, 그다지 취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선임을 밀쳤고, 바지를 벗겠다는 위협을 하며 계속 고성을 질렀다. 그는 혼자 온 것이 아니었고, 수 명의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이 매장 안에 있었음에도 아무도 그의 만행을 말리지 않았다.


고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난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매장에는 여전히 고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선임과 그 진상이 그러고 있는 옆에서 바닐라 라떼, 핫초코 등을 쉴새 없이 제조하고 있었다. "오래 걸려요?"라고 음료의 안위만을 묻는 고객에게 "금방 해드릴게요"라며 미소를 날리며,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 그 고객의 음료를 건네고 있을 즈음, 선임 파트너는 백룸으로 들어가 전화기를 들고 나왔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했다. 그제야 할아버지의 '친구들'도 나서 한번 봐달라고, 니들이 비번을 정말 틀려서 그렇다며 성화였지만 우리는 정말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경찰이 오고 있다'는 말에, 그는 한번만 봐달라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일로 경찰이 온적이 있었다며, 경찰이 또 오면 진짜 자신은 큰일이 난다며 그가 사정했다. 사람을 죽일 정도로 화장실이 급했다던 그는, 실갱이를 벌이는 20여분의 시간이 지나도록 화장실에 갈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이건 내가 겪었던 최초의 대형진상과의 조우였다. 이후에도 이 정도의 '빌런'을 만난 적은 없었다. 누군가에게 죽여버린다는 말을 면전에서 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라는 질문을 한다면 내가 너무 온실 속 화초같은 삶을 살아온 것일까?


경찰을 불렀다는 말에 도망치던 그는, 옆 건물에서 다른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같은 아르바이트끼리 사정을 봐달라고 말하며 도망치던 그에게는 최소한의 동병상련이라는 인정조차도 없었나보다.


물론 술을 마셨기에 그런 것일 수도, 원래의 그는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술을 마셨다고해서 새로운 자아가 창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면의 것이 자유롭게 발현된 것일 확률이 높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고, 스스로도 말한 '같은 일을 하는 아르바이트'에 대한 존중이 없는, 그러므로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도 없는 사람인 것이다.


그날은 나도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싶을만큼 힘든 밤이었다. 하지만 술을 마실 수도 없었다. 집에는 저녁 내내 엄마를 기다린 딸이 있었고, 나는 다음날 새벽에 오픈근무조로 출근해야 하는 '죄인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는 힘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연말이 되어 풀어져서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다가 실수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파트타임맘'으로 살아가던 당시의 내 애환도 어디가서 풀어낼 거리가 많은, 그 못지않게 힘든 것이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잇는 우리들은 대부분, 거의 모두들 힘들다. 술을 마셔 잊고,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힘을 낼 수 없을만큼. 나만큼이나 힘들게 살고 있을 타인들에게 서로가 예의를 갖추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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