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Oct 28. 2019

프랑스 카페 바리스타는 안 친절하겠지?

카페 드 플로르에서 만난 자극요정


여행을 앞둔 딸은 오샹젤리제를 흥얼댔다.

알바퇴사도 퇴사라고, 퇴사기념 파리여행을 앞둔 우리는 몹시 들떠있었다. 딸은 서점에 갈 때마다 프랑스 관련 책을 사들이며 자신의 파리 위시리스트를 완성했다.


딸은 루부르, 오르세를 기대했고, 나 역시 퐁피두센터를 고대했다. 에펠탑 앞에서 샌드위치먹기, 센강변에서 바람쐬기 같은 소소한 계획들도 쌓였다.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도장깨듯 들르고 있는 파리디즈니랜드가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중대한 일정이었다.


정작 내가 가장 고대한 곳은 따로 있었다. 생제르맹 거리의 카페 드 플로르, 그리고 맞은 편에 위치한 레되마고였다. 유럽권 옛 작가들의 고전 꽤나 읽었다는 사람 중에서, 이 두곳 카페를 모르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장 폴 사르트르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거물급 문인들이 단골인 것으로 유명한 장소다. 워낙 훌륭한 그들이 남긴 잡문들도 책으로 다수 출간되어있고, 신변잡기 위주인 그 글들에는 펜과 종이를 챙겨 카페 드 플로르에서 하루를 보냈다는 내용이 많았다. 꼭 들러보리라. 그곳에 가면 왠지 좋은 영감이 막 피어오를 것 같은 기대로 나는 들떠있었다.


파리에 삼주 가까이 머물면서, 시간이 충분할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은 제아무리 혼자서 체력이 빵빵하고 정신력이 넘친다한들, 아이의 컨디션이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하루에 두 군데 정도. 식당이나 공원에 들르는 것까지 포함해도 서너가지 정도의 일정을 소화하며 다니니 가끔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대부분은 정말 이 도시에 살아보는 것 같은 여유로움이 느껴져 좋았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시간표로는 바쁜 일정을 보내고, 이주일이 다 되어가는 어느 날에야 드디어 아침을 먹고 카페 드 플로르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여행 내내 햇빛이 좋았다. 날씨의 신이 따라다니는 것 같았던 이번 파리여행 중에서도 유독 햇빛이 좋은 날이었다. 파리의 카페대부분은 사람들로 늘 붐볐지만, 그날의 카페 드 플로르는 유독 더했다. 엄청난 사람들로 인해 앉을 자리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자리를 잡으려 멀뚱히 서 있는데, 한 웨이터가 나를 부른다.


”마담. 잠깐만 기다려. 너와 니 아이를 위한 완벽한 자리를 잡아줄게”


몇분의 기다림 끝에 그가 유난스레 밝은 표정으로 다가와 우리를 빈자리로 안내했다. 앉으려는데, 자리가 단체손님들이 앉음직하게 크다.


“우리 뿐인데...”


”괜찮아. 우디(woody)도 같이 앉아야지.”


그렇게 말하는 그의 손끝은 딸아이가 전날 디즈니에서 구입한, 토이스토리 우디인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아이는 배꼽인사를 했고, 마음 편하게 그 자리에 앉았다. 이미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커피 한잔과, 여행 내내 카페에 들를 때마다 딸이 주문했던 오랑지나를 주문했다. 주문한 음료와 함께 그곳카페의 초콜렛을 잔뜩 가지고 나와 먹으라고 챙겨주는 그에게 물었다.


”여기가 사르트르, 헤밍웨이 왔던 곳 맞지?”


수없이 들은 질문일텐데, 마침 처음 듣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맞다고 답한 그는 이어 내게 카페 안쪽 자리에 잠깐 들르자고 말했다. 그를 따라 들어선 카페 안에는 과거 문인과 예술가들이 들렀던 시기의 카페를 그대로 재현한 모형과, 그들의 사진과 싸인 같은 것들이 가득 붙어 있는 곳을 보여주었다. 앞에서 사진도 찍어주었다.


그것들을 신기하게 구경하는 내게 그는 너도 혹시 글을 쓰냐고 물었다. 부끄러운 마음에 “쓴다”고는 못하고 “쓰고싶다”고 대답한 나에게 그가 건넨 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도 헤밍웨이처럼 유명해지면 이곳에 다시와. 꼭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그곳에 꽤 오래 머무르며 몇잔의 음료를 더 마신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우리 자리에 몇번이고 더 들른 그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영감을 받은 것도 같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그가 카페 테이블에 까는 종이들을 세장이나 챙겨주었다. 깨끗한 새것이었다. 아이에게 친절한 프랑스 파리에서 딸과 다닌 덕에 많은 친절을 받았지만, 이처럼 마음에 남는 선물은 처음이었다.


사실 파리여행길에 오르기전부터, 나는 내가 겪은 진상들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유럽은 한국처럼 진상고객이 많지 않고 문화가 다르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알바에게 무조건적인 싹싹함을 원하는 것은 한국사회특유의 폭력적인 분위기 탓이라는 생각도 했다. 파리에 다녀오면 그 생각이 더 확고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만난, 결코 예상치않았던 친절한 서비스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친절함은 확실히 좋은 가치다. 나는 알바는 친절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긴글들을 써왔지만, 그럼에도 자발적으로 우러난 알바의 친절함은 고객 한사람 한사람의 하루를 바꿀 수도 있을만큼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카페 드 플로르에서 만난 그를 통해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자발적인 친절함. 그건 알바에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알바가 원할 때 이루어져야 빛나는 게 아닐까 싶다. 다음날 식사 후 레되마고에도 가기 위해 생제르망에 다시 들렀던 나는 또 다시 카페 드 플로르에 갔다. 그의 근무시간이 아닌지 그는 없었지만, 역시나 좋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파리에 살았다면 아마도 나 역시 카페 드 플로르의 단골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핸드폰 속에 아직 그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다음번에 또 파리를 언제갈수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직 젊은 나이니 아마도 몇번은 더 그곳에 갈일이 있을 것이다. 또 다시 파리에 가게되면 그때 역시 나의 파리여행 위시리스트 일번은 카페드 플로르에 가는 일이다. 꼭 카페 드 플로르에 다시 들러 그를 찾아가 내 책을 선물하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디가서 진상부린 피해는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