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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Nov 28. 2023

왕가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키도 좋아한다

왕가위와 하루키 그리고 쳇베이커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것은 질문이기도 하다.



왜 왕가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키도 좋아하는 걸까?


물론 이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일 뿐.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내 취향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보면 왕가위와 하루키, 이 둘을 동시에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끔 쳇 베이커의 재즈까지 더해져 있을 때면 '이 취향의 결은 정해져 있는 건가?'라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1. 오래된 기억은 중경삼림으로부터


한참 영화에 빠져있던 우리 집은 내가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매일같이 비디오를 빌려와  밤새 보다 잠들곤 했다. (그로 인해 다음날 유치원에 못 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 당시 한국에는 홍콩 영화의 붐이 일어났고 우리 부모님도 그에 푹 빠진 듯 보였다.


그때 부모님을 따라 본 영화가 바로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이다. (아마도 홍콩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빌려오셨을 거다) 어릴 적 본  ‘중경삼림’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는 영화였지만 ‘주황빛과 회전하는 화면’만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었다.  


감독과 영화뿐만 아니라 촬영기법(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은 왕가위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까지 워낙 유명하다 보니  굳이 제목을 기억하지 않아도 내가 어릴 적 본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tv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주황빛과 회전하는 화면이 대체 어떤 영화인지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보게 되었고, 그 이후 좋아하는 감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2.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만난 하루키



유명한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81화 중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서울대 출신 남친의 친구 커플과 식사 자리에서 하루키와 앤디 워홀을 몰라 자존심이 상하는 서운대 출신 황정음의 에피소드이다. 저 때만 해도 하루키를 들어보기만 했지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던 터라 '아니, 하루키를 모르면 무식한 거야?' 하며 읽어보지도 않은 책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그러다 대학생 1학년이 되었고 1Q84가 발매되었다. 엄청난 두께의 책은 1권도 아닌 무려 3권이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지만 그때 뭔 생각이었는지 그 책을 대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허무맹랑한 판타지에  빠져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더 좋아한다),   도쿄기담집, 여자가 없는 남자들, 기사단장 죽이기 등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많지만 그만큼 '한 번 읽으면 멈출 수 없어'를 시전하기도 한다.


왕가위의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내용이 쓰여있는데, 그 짧은 한 문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하루키야 워낙 유명한 재즈광으로 재즈와 조예가 깊지만 특히 재즈 에세이에서 쳇 베이커를 제일 처음 소개해 구입 욕구를 상승시켰다.


이렇게 셋이 오묘하게 연관이 되어 있어서 그런가,

'왜 왕가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하루키도 좋아하는 걸까?'

좋아할 이유들이야 허다하고 모든 것은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하루키의 말을 빌려 살짝 예상을 해보자면...



하루키, 왕가위, 쳇 베이커의 작품 속에선 청춘, 사랑, 위태로움의 냄새가 난다.



작품 속 인물들과 내가 같다고 여기지는 않지만 나 역시 불완전한 상태의 사람이라 그런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공감하고 동요되는 것 같다. 또한 언제나 사랑을 말하는 그 이야기들이 특히, 너무 좋다. 그리고 작품을 보고 난 뒤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음악들 역시 내가 저것들을 좋아하는 데 크게 한몫하기도 한다.


모두가 나처럼 위태로운 청춘에,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왕가위와 하루키, 쳇 베이커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다. 같은 것을 좋아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왜,  왕가위와 하루키를 (쳇 베이커도 해당이 된다면 포함해서) 좋아하는지.

아마 몇 시간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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