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시간을 잃은 얼굴

by 가오나시
dorian_gray041.jpg Dorian Gray (2009), Netflix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시간을 잃은 얼굴: 시간이 얼굴을 떠났을 때, 인간은 성숙할 수 있는가


Ⅰ. 나이 들지 않는다는 축복에 대하여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찾아오는 노화일지도 모른다. 주름, 쇠락, 추함. 우리는 시간의 흔적이 얼굴에 남는 것을 실패처럼 여긴다.


오스카 와일드의 장편소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늙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단지 한 인물의 비극이 아니라, 그것을 쓴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삶과 깊이 맞닿아 있다.


Ⅱ. 오스카 와일드: 도발과 파멸 사이, 한 탐미주의자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1854~1900)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그는 런던 사교계의 총아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엄격한 도덕과 위선이 공존하던 사회였다. 와일드는 그 규범 속에서 끝내 ‘이방인’으로 남았고, 그의 삶은 작품처럼 사회와 충돌했다. 그의 삶 자체가 '아름다움과 파멸'의 서사였다.


그의 삶이 사회와 충돌했다면, 그의 작품은 그 충돌을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언어화한 결과였다. 와일드의 글에는 아름다움과 쾌락, 아이러니가 반복된다. 그는 사회적 위선을 풍자했고, 예술과 삶의 경계를 일부러 흐렸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그 세계관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다.


탐미주의: 아름다움은 목적이 될 수 있는가

와일드의 도발적인 삶과 문장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신봉한 하나의 미학적 태도, 탐미주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탐미주의란 도덕보다 미(美)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예술 사조다. 와일드에게 영향을 준 월터 페이터는 선언했다. 아름다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예술은 도덕적 교훈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고.

와일드는 소설 서문에서 이를 더욱 밀어붙인다. 예술에는 도덕적인 책도 부도덕적인 책도 없으며, 잘 쓴 책과 못 쓴 책만 있을 뿐이라고.

도리안 그레이는 이 탐미주의의 실험체다. 아름다움을 삶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을 때, 미적 완벽함은 윤리적 공백을 낳고 쾌락의 추구는 타인의 파멸로 이어진다.


Ⅲ.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1. 노화의 정지와 성장의 실종

젊고 아름다운 귀족 청년 도리안 그레이는 화가 바질 홀워드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영원한 청춘을 소원한다. 그 소원이 이루어져 초상화가 대신 늙고 타락한 모습을 떠맡게 된다. 바질의 친구인 헨리 워튼 경은 도리안에게 "젊음과 아름다움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라는 탐미주의적 궤변을 심어주고, 도리안은 온갖 쾌락과 악행에 몰두한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순수한 소년이지만, 다락방에 숨겨둔 초상화는 끔찍한 괴물로 변해간다.


노화는 단순히 추해지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과 '필멸성'을 일깨우는 장치다. 주름은 시간 속에서 살아왔다는 증거이며 경험과 성찰의 흔적이다. 도리안에게는 이 장치가 제거되었다.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도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스무 살이다. 결과가 얼굴에 새겨지지 않을 때, 책임감은 자라지 못한다.


사랑하던 시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도리안이 느낀 것은 슬픔이 아니라 "낭만적 비극의 주인공이 된 듯한 흥분"이었다. 살인을 저지른 이후에도 그가 느끼는 것은 죄책감이 아닌 발각에 대한 공포다.


2. 도리안은 왜 어른이 되지 못했는가

헨리 경의 쾌락주의는 도리안을 감각의 세계로 이끌었다. 보석, 향수, 음악, 자수 - 그는 아름다운 것들을 수집하며 삶을 채우려 했다. 그러나 감각적 탐닉은 내면을 채우지 못한다. 그것은 자아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도리안은 자신의 추악함을 초상화에 떠넘겼다. 초상화는 그가 마주하기를 거부한 자기 자신이다. 그는 그것을 다락방에 가두고 천으로 덮었다. 양심을 외주화 한 것이다. 성숙이란 자신의 행위와 그 결과를 직면하는 용기인데, 도리안은 그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소설의 종반부, 도리안은 분노하며 초상화를 칼로 찌른다. 그것은 양심의 파괴였을까, 자기 구원의 시도였을까? 확실한 것은 그 행위가 평생 직면하지 못했던 '진짜 시간'에 대한 뒤늦고도 치명적인 인정이었다는 점이다.


Ⅳ. '나이 듦'이라는 축복

우리는 현대판 도리안 그레이 시대에 살고 있다. SNS에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굴들이 넘쳐난다. 필터는 주름을 지우고, 보정은 세월의 흔적을 삭제한다. 안티에이징은 산업이 되었고, 늙어 보이는 것은 자기 관리의 실패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우리가 얼굴에서 지우는 것은 단지 주름만이 아니다. 도리안이 초상화를 다락방에 가둔 것처럼, 실패의 기억, 후회의 흔적, 상처받은 경험들도 함께 지워서 '보정된 자아'만을 세상에 내보낸다.


노화는 저주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고 내면을 완성해 가는 '성숙의 지도'다. 시간이 얼굴에 남기는 흔적이야말로 인간이 살아왔다는 유일한 증거다. 주름은 웃고 울고 고민한 날들의 기록이며, 흰머리는 견뎌낸 시간의 훈장이다. 늙는다는 것은 쇠락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온전히 짊어졌다는 증명이다.


도리안 그레이는 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삶의 고통을 자신의 얼굴로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다. 늙지 않는 얼굴은 축복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을 미성숙한 상태에 가두는 가장 교묘한 형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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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ar Wilde (1854 - 1900): 『행복한 왕자』,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살로메』, 『아서 새빌 경의 범죄』/

1884년 콘스턴스 로이드와 결혼해 두 아들(시릴, 보이치)을 낳았으나, 1886년 로버트 로스를 만나 동성 관계를 깨닫고 본격적으로 탐닉하기 시작했다.

1891년 퀸즈베리 후작의 아들 '보시'(알프레드 더글라스)를 만나 열애. 더글라스는 16세 연하의 미소년으로, 와일드를 호텔 유흥과 사치에 끌어들였으나 히스테릭한 성격 탓에 이별과 재결합을 반복했다. 더글라스는 와일드의 돈을 낭비하며 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냈고, 이는 후작의 분노를 샀다.더글라스는 와일드의 돈을 낭비하며 관계를 공공연히 드러냈고, 이는 후작의 분노를 샀다.

후작이 동성애를 비난하는 쪽지를 붙이자 와일드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재판에서 호텔 기록과 소년 매춘 증언이 쏟아졌다. 와일드는 "소년이 못생겨 키스할 생각 없었음" 같은 발언으로 상황을 악화시켜 1895년 '남색죄'로 2년 노역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아내와 별거, 파산하며 프랑스로 망명해 1900년 사망. 2017년 영국 정부가 사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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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 묘지 in Père Lachaise Cemetery in Paris, France (by Jacob Epstein, 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