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에 이미 새겨진 서사들
Where is your hometown?
두바이에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질문이다. '고향이 어디야? 어느 나라에서 왔어?'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두바이에 왔다. 고향이 싫어서, 가족을 따라, 일 때문에, 혹은 그냥 더 나은 기회를 찾아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고향보다도 두바이에서 산 시간이 더 길기도 하다. 나 역시 해외에서 산 기간과 한국에서 산 기간이 거의 비슷해졌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한국인이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음악 그리고 한국 관련 뉴스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그 쪽으로 기울어진다. 이런 감정들은 왜 생기는 걸까? 내 조국에 대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조국이 사라진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국가'라는 개념은 사실 꽤 최근에 생겼다. 그리고 그 이전의 인류는 떠돌며 살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디지털 노매드’ 같은 삶이 어쩌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또한 과거를 기록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상상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새해나 결혼, 혹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 사주를 보는 것도 결국은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일이다.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이미지로 만들고, 감정으로 번역하는 일이 바로 예술이라고, 팔레스타인 출신 아티스트 라리사 산수르(Larissa Sansour)는 말한다.
우리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과거라도 이야기를 전해 듣고, 책을 읽고, 그림을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상상한다. 역사적 사실은 학습을 통해 알게 되지만, 그 시대의 감정은 예술을 통해 느껴진다. 그렇다면 미래는 어떨까? 미래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 산수르는 자신의 예술로 그 질문에 답한다. 이미 일어난 일이나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미래의 감정을 영상과 설치로 먼저 체험하게 만든다.
그녀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미래가 아니다. 과거나 현재의 연장선에서 예상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어딘가 낯설고 기이한 어떤 ‘완전히 다른(Something strange) 세계’에 가깝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9년 작품 〈In Vitro〉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여성 과학자가 등장한다. 한 사람은 기억을 붙잡은 채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는 기성세대 두니아, 다른 한 사람은 실험실에서 태어나 ‘기억이 이미 주어진 존재’인 알리아다.
알리아는 태어나보니 이미 자신의 기억이 “자신 이전의 타인의 서사”로 채워져 있다고 느낀다. 그곳에 있어본 적이 없는데, 무언가를 추모하고, 사랑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요구받는 상태. ‘나는 어떤 곳을 고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 앞에 서 있는 존재이다. 알리아를 통해 산수르는 기억이 어떻게 문화적 전승이 되고, 그 전승이 어떻게 트라우마가 되는지를 보여준다. 경험하지 않았지만 전해받는 감정. 몸으로 겪지 않았지만 유전처럼 흡수되는 슬픔과 애도.
두니아와 알리아가 나누는 대화는 결국 “기억을 어떻게 전승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국을 잃고, 조상의 땅에 살고 있더라도 이방인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문제이자, 모든 디아스포라에게 닿아 있는 질문이다. 경험하지 않았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계속 되돌아오는 ‘고향’이라는 개념.
프레드릭 제임슨은 모든 문화적 서사에는 말로 하지 못한 역사가 스며 있다고 했다. 그것이 ‘정치적 무의식’이다. 겉으로는 SF 영화처럼 보이지만, 그 이미지의 깊은 곳에는 말해지지 않은 역사, 억압된 감정, 사라져버린 장소와의 연결이 남아 있다. 산수르의 작업은 제임슨의 ‘정치적 무의식’ 개념과 거의 완벽하게 겹쳐진다.
그녀는 미래를 통해 현재를 말하는 팔레스타인 작가로 불린다. 디아스포라의 정체성, 기억과 후성유전적 트라우마(epigenetic trauma), 국가 없는 민족의 시간성, 식민주의, 검열, 그리고 허구와 가상공간. 산수르는 이 모든 것을 추상적이면서도 깊이 현실적인 서사로 풀어낸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감정도 유전처럼, DNA처럼 갖고 태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를 때마다 혼란과 우울이 몰려오는 것인지도. 내 얼굴이 바뀌지 않듯, 감정 역시 바꿔 쓸 수 없는 나의 일부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고치거나 부정할 수도 없다. 솔직한 감정의 표현은 인간의 본능인 것이다. 그 본능을 거스르지 않을 때, 우리는 조금 더 평온한 삶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 https://youtu.be/OqRJ_O01gt8?si=5O8ai0i4gVUR-35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