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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강스백 Nov 03. 2019

집 자랑 좀 해보려고요.

엄마가 보고 싶은 밤


엄마가 보고 싶은 밤 1-집 자랑


우리 집은 전망 확 트인 새 아파트다. 커피 한 잔 내려서 마시고 있으면 근심이 사라지는 느낌이다. 임신 7개월에 남편의 갑작스러운 퇴사. 광주, 순천, 목포 여러 군데 집을 알아보다 지쳐버렸다. 남편이 알아서 하기로 하고 나는 더 이상 집 알아보는 것에 관여하지 않았다. 나는 집 구경도 안 해보고 계약하고 이사했다.

그런데 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문득문득 슬픈 감정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너무 기뻐서 불안한 마음인가 했다. 집값 상환 걱정 때문인지, 재개발 주택단지에 우뚝 솟은 아파트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우월감인지, 아님 그냥 감성 떨고 있는 건지. 암튼 뭔가 슬프고 가슴이 아팠다.





다음 달에 식기세척기를 사기로 했다. 너무 갖고 싶어서 이빨 치료를 미루고 사기로 한 거다.

"엄마, 나는 집에 로봇청소기,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다 놔두고 살 거야. 그래도 하기 싫은 건 도우미 부를 거야."

"에잇, 못써. 식기세척기는 하나도 안 닦인대. 빨래건조기는 옷감 다 상한데. 로봇청소기는 있으나 마나래. 그리고 집에 다른 사람 들이면 못써. 내 집은 내가 가꿔야지."

엄마는 다 필요 없다고 툴툴거렸지만 못 가진 것에 대한 질투가 아니었나 싶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의 포도처럼.

엄마는 수술을 받고 5일 정도 지나면 퇴원하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엄마는 한 달 이상을 병원에 있었다. 엄마가 집에 안 내려가고 병원에 더 있으려고 했다.

엄마의 나무토막 같은 몸을 닦다. 뜨거운 수건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닦아내는데 다 닦고 수건을 빨면 기름이 둥둥 떴다. 뼈다구 같은 몸에서도 나올 기름은 있나 보다.

"엄마, 이 작은 구멍으로 어떻게 셋을 낳았어?"

"....."

엄마는 기도삽관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웃기만 했다. 엄마는 계속 고맙다고 했고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가 작별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수술도 잘 되었고 완치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나는 엄마가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에라이.... 죽을 때 다 되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평소에 좀 해주지 그랬어?




병원에서는 창가 쪽이 명당이다. 창가 쪽 환자가 퇴원을 하면 남은 환자들은 먼저 온 순서대로 창가 쪽으로 옮긴다. 수술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들은 며칠 내로 퇴원하니 굳이 창가 쪽으로 옮기지 않고 퇴원했다. 엄마는 병원에 오래 있어 창가 쪽으로 옮기고는 퇴원할 때까지 창가 자리에 있었다.

"이야~ 엄마 전망 진짜 좋다. 이 정도 집이면 집값 얼마 정도 할까? 이런 데서도 살아봐야지. 그치? 그치?"

엄마는 웃기만 했다.

아..... 우리 집....
우리 집 전망이 그때 그 서울 병원 전망하고 비슷하구나.....

병원이 서울이긴 하지만 외곽에 있어 주변에 고층건물 없이 전망이 확 트여 있었다. 주택단지만 있는 것도 비슷했다.

엄마는 혹시나 내가 엄마 까먹고 살까 봐 걱정되었을까? 아.... 진짜...... 나는 엎드려 그냥 엉엉 울어버렸다.





엄마가 보고 싶은 밤 2 - 엄마의 바람


시댁에 갔다. 단감, 대봉 가져가라는 시어머니 호출이었다. 나는 감을 별로 안 좋아해서 감 가져가라는 전화가 그리 반갑지 않았다.

'오늘도 싫은 소리 하면 나도 가만 안 있을 거야.'

다짐하며 차에 탔다. 막내 시누도 감 따러 왔다. 이모님도 사촌 아주버님과 감 따러 오셨다. 먼저 가져간 사람이 임자라며 다들 감 따러 밭에 나갔다. 나야 뭐 감을 별로 안 좋아하니 욕심 없이 부엌에서 내 할 일 하고 있는데 어머님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네 건 다 따서 숨겨놨으니까 암말 말고 있어라잉."

큰 형님이 양파가 너무 잘아서 장아찌 담가버렸다고 했다. 어머님이 당황하면서 내 눈치를 봤다. 우리 집에는 크고 실한 양파를 줬는데 큰 형님에게는 잘잘한 양파만 줬나 보다. 무딘 나는 그걸 한참 후에 알았다.

엄마는 제일 큰 외삼촌과 나이가 스무 살 이상 차이 났다. 엄마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언니도 있다. 아빠 엄만 둘 다 막내라 부모한테 얻을 게 없다고 한탄을 많이 했다.

"막내는 부모한테 의지하려 해도 의지할 수가 없어. 부모는 이미 늙어버렸거든. 꼭 돈이나 재산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막내는 불쌍해. 받아먹을 게 없어. 나는 너희들 모두 장남에게 시집보낼 거야."

아빠는 상견례 자리에서 큰아들에게 시집보내고 싶었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비웃듯이 막내아들하고 결혼했다. 장남 하고는 절대로 결혼 안 한다고 다짐했었다. 간섭이 전혀 없고 돈 많은 시댁이라도 맏며느리는 절대로 절대로 안 한다고 다짐 또 다짐했다. 맏이 콤플렉스가 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징그럽게 엄마 말을 안 듣는 딸이었다. 부모의 바람을 무시하며 막내아들하고 결혼했다. 그런데 엄마가 요즘, 하늘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한테 도대체 왜 그러세요? 이러려고 엄마 없는 며느리 구했어?"

추석 때 우린 울면서 싸웠다.

"니가 아픈 손가락이다. 하루라도 연락이 안 되면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걱정이 돼. 나는 정말 네가 아파. 딸보다 더 챙겨주고 싶어. 애기가 너보다 예쁜 건 맞아. 그래서 말이 헛 나오는 것도 알아. 늙으니까 더 그래. 그래도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시어머니는 몰래몰래 좋은 것으로 내 것을 다 챙겨놓으신다. 당신의 딸에게보다도 더. 엄마가 엄마의 시댁에 바랬던 것도 이런 거였을 것이다. 돈으로 따져지는 것들이 아닌 몰래 챙겨주는 사랑말이다. 엄마의 시댁에서는 몰래몰래 엄마 몫만 뺐다고 했다. 하다못해 아빠가 직접 심어놓은 더덕도 수확해서 주지 않았다고 했다. 큰집에 다녀오면 엄마는 냉장고 앞에서 울었다.

혼자 부엌에서 생강을 까고 있는데 아버님이 봉투를 던져주고 가셨다.

"애기 키우느라 힘들지?"

남편이 단감을 하나 따서 옷에 쓱쓱 문질러줬다. 정말 달다. 껍질째 다 먹었다. 앞으로 감을 많이 좋아할 것 같다.

곧 엄마 제사가 닥친다. 가을의 시작엔 아빠가 떠나고, 가을의 끝자락엔 엄마가 떠났다. 트렁크에는 몰래 받은 사랑이 한가득인데 나의 가을은 풍요로우면서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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