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不惑 :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불혹, 40세를 이르는 말. 공자님 가라사대 그렇다고 한다. 세상일에 정신 아니, 영혼까지 빼앗긴 내게 마흔은 불의의 일격으로 기습했다. 내가, 내가 마흔이라니. 마흔은 교통사고 같은 건가. 웹의 밈과 드라마 명대사가 느낌표와 물음표를 달고 귓전에 마구 부딪혀왔다. 어쩌다 이렇게 나이만 먹은 것인가. 나이가 타격감을 준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비틀거리던 무릎이 훅 꺾이는 기분.
불혹이라는 말이 풍기는 어감도 달갑지 않지만 이것은 분명 패배감 때문이다. 유혹이 있든 없든 마흔이면 뭐라도 되어있을 줄 알았다. 기고만장 어린 시절 내가 그린 인생의 큰 줄기는 그랬다. 삶에서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일과 사랑 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원하는 일에서 나름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사랑 역시 견고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었고 사랑한 누군가와 가족을 일궈 잘 살 것이란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게는 마흔에 걸맞은 사회적 지위도 재정적 안정도 먼 얘기다. 마흔 생일을 보내고 일주일 되던 날 생각지도 못하게 직장을 잃었다. 유동성 과잉으로 집값이 천정부지 오른 시점에 레버리지를 영끌, 아니 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샀는데 말이다. 이런 상황에 한동안 안전망이 되어 줄 배우자도, 구직 시장에 내다 팔 대단한 기술도 내겐 없다. 나를 먹여 살릴 사람은 나뿐이고 1인2묘 가정의 가장 역할도 가볍지 않다. 치명적으로 귀여운 고양이 둘의 집사라는 것 빼고 무엇도 이룬 것이 없구나 나는. 세상이 성취라 인정할만한 어떤 것도 손에 쥐지 못한 채로 불청객 마흔이 그렇게 습격했다.
내가 잘못 산 걸까. 열심히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략이 부재했고, 오래 이어질 삶에 대한 안목이 부족했다. 나는 결정적 순간에 인내하지 못했으며 내 선택에 충분히 책임지지 않았다. 머지 않아 불쑥 들이닥칠 마흔을 도모하지 못한 것이다. 회사에서 후배들에게 하던 말이 뼈아프게 나를 향한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싹싹하게 외치는 어린 친구들에게 나는 "열심히 안해도 돼. 그냥 잘 해, 잘" 그랬다. 그걸 꼭 그렇게 재수없게 말했어야 했니. 더럽게 잘난 척 하던 내가 부끄럽다. 잘못 살았다.
나의 열심이란 그런 것이었다. 하고 싶은 일에 열중했다. 그런데 하나에 머무르지 못하고 새로운 것, 기회라 보이는 것을 마다 않고 시도했다. 좋게 말하면 도전을 즐겼고, 냉정하게는 도망이다. 인생의 파도타기로 젊음을 탕진했다. 그때 그때 다가오는 파도에 올라타는 것을 즐긴 덕분에 다양한 분야에서 잡다한 지식과 약간의 쓰는 재주를 갖췄지만 스페셜리스트가 되지 못했다. 이거 하나는 정말 끝내주게 잘해요, 할만한 게 없다 나는. 열심히는 기본이다. 그리고 열심히든 아니든 결과는 '잘'이 나와야 한다.
이렇게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될 수는 없어. 지금보다 더 초라한 노년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약간의 젊음이 남은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나는 자격증을 갖기로 했다. 불혹의 자격 따위 갖추지 못한 마흔에 자격증이라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