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과 트로이의 브루투스

by leo


1. 트로이의 브루투스


먼 옛날의 일입니다. 트로이가 멸망하고 이탈리아에 로마가 생기기 전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 ‘하얗고 긴 땅’이라는 뜻을 가진 알바롱가라는 도시가 있었습니다. 로마를 세운 로물루스와 그의 동생 레무스는 이곳의 왕 아물리우스의 손자였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알바롱가는 로마의 조상이었던 셈입니다.


알바롱가를 건국한 사람은 아스카니우스였습니다. 트로이가 멸망할 때 난민을 이끌고 이탈리아로 피신한 아이네아스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스카니우스는 도시를 만든 뒤 대를 이어 왕위를 지킬 아들을 낳기 위해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그의 기대대로 곧바로 아기를 가졌습니다.


아내의 출산을 앞두고 아스카니우스는 점쟁이를 불렀습니다. 아들이 태어날 것인지 딸이 태어날 것인지, 아기는 어떤 운명을 타고나는 것 것인지, 알바롱가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쟁이가 내놓은 점괘는 뜻밖에도 절망적이고 비극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알바롱가의 위대한 왕이시여! 당신은 아들을 얻을 것이오. 그는 이탈리아의 어느 젊은이보다 용감한 청년이 될 것이오. 안타깝군요. 왕이시여! 아들 때문에 당신과 왕비의 목숨을 잃게 될 거요. 아무리 조심해도 불행을 피할 수는 없소.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 세 자매가 이미 정한 운명이기 때문이오. 그렇다고 당신의 아들이 알바롱가의 왕이 되는 것은 아니오. 떠돌이 생활을 하다 머나먼 타지에 자리를 잡게 되는군요. 그것이 알바롱가의 운명이고, 당신 부자의 팔자요.”


출산을 앞두고 기쁨에 차 있던 아스카니우스는 화가 났습니다. 그는 점쟁이가 복채를 두둑이 챙기려고 협박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네놈은 내가 누군 줄 알고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요즘 혹세무민하는 자가 설치고 다닌다더니 바로 너였구나. 여봐라. 저 놈의 목을 당장 베어버려라.”


아스카니우스는 병사들을 시켜 점쟁이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했지만, 점쟁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게 만들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왕비는 남편이 고대하던 아들을 낳았습니다. 출산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왕비는 아기를 낳고 며칠간 고생하다 그만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점쟁이가 내놓은 여러 점괘 중에서 ‘아들 때문에 아내를 잃는다’는 첫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스카니우스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면서 무심히 넘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당시에는 의학기술이 떨어져 출산하다 죽은 여인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점쟁이의 점괘가 맞더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들에게 죽는다고 하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아.’


아내 대신 자식을 얻은 아스카니우스는 아들에게 브루투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다시 세월이 한참 흘렀습니다. 브루투스는 쑥쑥 자라 스무 살을 넘어 성인이 됐습니다. 그는 아버지만큼 미남이었고, 아버지 못지않게 용맹스럽고 무술에도 뛰어났습니다.


아스카니우스는 사냥을 즐겼습니다. 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사냥을 다녔습니다. 아내도 없는 궁에 있어 봐야 별 재미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사냥에 매달렸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흐렸던 어느 날 아스카니우스는 평소처럼 아들과 함께 사냥을 나갔습니다. 두 사람은 알바롱가에서 멀리 떨어진 숲에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날따라 사냥감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두 부자가 숲 입구에 들어섰을 때 눈앞에서 사슴 한 마리가 달아나는 게 보였습니다.


“브루투스, 너는 왼쪽으로 돌아가서 활을 겨누고 있거라. 나는 오른쪽에서 사슴을 몰고 가겠다.”


아스카니우스와 브루투스는 사슴을 양쪽에서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브루투스는 아버지 말씀대로 말을 타고 숲의 왼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나무 덤불에 숨어 있던 사슴이 갑자기 뛰어나왔습니다. 그는 말에 박차를 가해 서둘러 쫓아갔습니다. 한동안 달아나던 사슴은 지쳤는지 멀찍이 거리를 유지한 채 짙은 덤불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쉬었습니다.


알바롱가에서 명궁으로 소문났던 브루투스는 굳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숨소리를 죽인 채 멀리서 힘차게 화살을 재었습니다. 호흡을 참으면서 거리를 잰 뒤 조심스럽게 줄을 놓았습니다.


브루투스의 활에서 떠난 화살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지쳐 쓰러질 것 같던 사슴은 숲속으로 달아나버렸습니다. 마치 숨을 고르며 화살이 날아올 때까지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목표물을 놓친 화살은 엉뚱하게 덤불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으악!”


브루투스의 화살이 떨어진 곳에서 난 데 없이 비명이 들렸습니다. 그가 날린 화살은 사슴이 아니라 덤불 뒤에 있던 사람을 맞힌 것이었습니다.


놀랍게도 화살에 맞은 이는 아스카니우스였습니다. 절대 운명을 피할 수 없다고 했던 점쟁이의 두 번째 점괘가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브루투스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품에 안고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시신을 알바롱가로 옮기고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른 그는 신하들을 모아놓고 뜻밖의 내용을 밝혔습니다.


“뜻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아버지를 살해한 무도한 자입니다. 부친을 죽인 자가 어찌 부친이 세운 나라의 땅을 밟고 서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브루투스는 왕 자리를 버리고 알바롱가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능력이 출중하고 그릇이 크다는 점을 잘 알던 신하들은 극구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원래 알바롱가의 법률에도 아버지를 살해한 자는 사형시키거나 추방하게 돼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점쟁이의 마지막 예언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알바롱가의 국경 끄트머리에서 어디로 갈지 한참 고민하던 브루투스에게 함께 고향을 떠난 장수가 조언을 건넸습니다. 오래 전부터 아버지를 모신 충신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인 트로이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곳에서 신들의 뜻을 물어 운명을 찾아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브루투스는 조상의 고향인 트로이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는 도중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트로이 유민들을 만났습니다. 아이네아스를 잘 알던 유민들은 그의 손자를 따라가기로 했습니다.


여전히 그리스 군대가 머물러 있던 트로이에는 브루투스가 머물 곳이 없었습니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에게 목숨까지 잃을 판이었습니다. 그는 추종자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헤매던 브루투스는 어딘지 알 수 없는 황량한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폐허가 된 신전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던 신전이었습니다. 마을이 버려진 탓에 오랫동안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브루투스는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날 밤은 신전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신전의 주인인 여신에게 용서를 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사를 마친 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며칠간 먼 길을 걸은 탓에 매우 피곤해서 금세 깊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다른 일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이 터 올 무렵 브루투스는 희한한 꿈을 꿨습니다. 마치 현실인 것처럼 생생한 꿈이었습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꿈에 나타났습니다.


“트로이의 브루투스야, 너의 운명은 이곳에 머물도록 정해져 있지 않단다. 내일 일어나거든 바다로 나가서 배를 타도록 해라. 그리스 올림포스의 신들은 이미 네가 가야 할 곳을 정해놓았어. 바로 이곳이 네가 가야 할 곳이지.”


아르테미스는 꿈속에서 브루투스를 아주 낯선 땅으로 데려갔습니다. 배를 타고 서쪽으로 한참이나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거인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브루투스는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벌써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면서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다 부서진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빙긋이 웃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는 다른 곳으로 떠날 준비를 마친 일행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이 꿈에 나타나셨소. 그분은 나를 ‘트로이의 브루투스’라고 부르셨소. 여러분도 앞으로는 나를 그렇게 부르도록 하시오. 이제 우리는 먼 길을 떠날 것이오. 여신이 나에게 일러주신 길로 갈 것이오.”


브루투스는 트로이 인근 바다로 나가 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크지 않은 배였지만 아르테미스 여신이 지켜주는 만큼 어지간한 파도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앤서니 아돌포의 『트로이의 브루투스』


그는 서쪽으로 가던 도중에 코리네우스가 이끄는 다른 트로이 유민들을 만났습니다.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 못하고 지중해를 떠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브루투스를 따르기로 한 코리네우스의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브루투스는 아르테미스 여신의 인도에 따라 오늘날 프랑스인 갈리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여신이 일러준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긴 여행에 너무 지쳤기 때문에 한동안 머물 작정으로 마을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그곳을 투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낯선 트로이 유민들이 몰려와 마을을 만들어 눌러 앉았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인근 지역에 퍼져 나갔습니다. 소식을 들은 갈리아 왕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갈리아 왕은 브루투스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챘습니다. 그가 정착하게 내버려둔다면 왕 자리가 위험하다는 사실도 바로 이해했습니다. 그는 브루투스 일행을 내쫓기로 했습니다.


“낯선 이방인들이여, 너희들은 나의 나라에 발을 들일 수 없다. 지금 당장 떠날 기회를 주겠다.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원래 용감했던 브루투스는 빼어난 장수였던 코리네우스의 도움을 받아 갈리아와 생사를 건 전투를 벌였습니다. 처음에는 싸울 때마다 이겼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기더라도 희생자가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전투를 할 때마다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쓰러졌습니다. 갈리아 병사들은 너무 많았습니다.


병력에서 절대 열세였던 브루투스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지경이 됐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바다로 달아났습니다. 그가 일행과 함께 도망간 곳은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도버해협을 마주보는 곳이었습니다.




브루투스는 머리 희미하게 보이는 바다 너머 육지가 아르테미스 신으로부터 점지받은 최종 목적지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행에게 배를 만들어 바다를 건너자고 했습니다.


“바다를 보시오. 높은 파도가 치고 있군요. 하지만 우리를 방해하는 파도는 아닙니다. 바다를 건너가라고 하는 신의 손짓이랍니다. 누구도 아르테미스 여신의 보호를 받는 우리를 해칠 수는 없지요. 우리의 미래는 이 바다 너머에 있습니다.”


브루투스 일행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며칠 동안 밤낮 없이 거센 파도가 쳤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의 배는 뒤집히지 않았고, 다치거나 죽은 사람도 없었습니다. 파도는 배를 뒤집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요람의 아기처럼 잘 감싸 바다 너머로 보내려는 것 같았습니다.


브루투스 일행이 도착한 곳은 알비온이라는 큰 섬이었습니다. 먼 옛날 그리스 사람들은 영국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가 배에서 내려 육지에 발을 딛고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커다란 몽둥이를 든 거인들이 무더기로 나타났습니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꿈에 거인족을 만나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소.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우리가 정착할 땅이 틀림없군요. 모두 활과 칼을 들도록 하시오.”


거인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브루투스는 활을 활용해 무기라고는 몽둥이뿐이던 거인들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도버


브루투스는 해안가에 머물지 않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아주 큰 강이 흐르는 게 보였습니다. 오늘날 템스 강이라고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강 주변에 정착하기로 하고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트로야 노바’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글자 그대로 ‘새로운 트로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브루투스가 도시를 세운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거치는 동안 도시의 이름은 조금씩 변해 나중에는 트리노반툼이 됐습니다. 더 나중에는 런던으로 바뀌었습니다.


브루투스는 왕이 됐습니다. 새 나라에는 그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영어로 영국을 브리튼(Britain), 영국인을 브리티시(British)라고 부릅니다. 영국 사람들은 브리티시라는 이름은 브루투스(Brutus)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리네우스는 콘월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콘월은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이름입니다.


브루투스는 24년간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나라를 세 개로 쪼개 세 아들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코르니우스는 오늘날 잉글랜드를, 알바낙투스는 스코틀랜드를, 캄버는 웨일스를 다스렸습니다.



2. 브리튼과 런던의 진실


먼 옛날 영국해협의 해수면은 매우 낮았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대륙은 서로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다를 건널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에는 항상 사람이 상주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섬으로 건너갔다가 나중에 대륙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중석기 시대인 BC 9천 년 무렵부터 비로소 영국에 사람이 상주한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BC 6500년 무렵에는 해수면이 상승해 영국과 유럽대륙은 사실상 단절돼 버렸습니다. 영국으로 건너가기도, 대륙으로 돌아가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영국에 살던 사람은 갇혀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BC 350~150년 무렵 대륙에서 두 차례에 걸쳐 켈트 족이 영국으로 대규모 이주해 원주민을 다스리며 살았습니다. 처음에 건너간 부족은 파리시 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영국 중동부에 위치한 이스트 요크셔에 정착해 이른바 아라스 문명을 일궜습니다.


두 번째는 벨기에 일대에서 활동하던 벨가이 족이었습니다. 파리시 족보다 더 큰 규모로 바다를 건넌 그들은 영국 남쪽에 머물렀습니다. 벨가이 족은 싸움에 특화된 전사들이었습니다.


벨가이 족이 영국에 정착하고 100년 뒤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영국에 쳐들어갔습니다. 다시 50년 뒤 로마는 마침내 영국을 지배하게 됐습니다.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이 이때 영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다면 로마인들도 그 이야기를 듣게 됐을 것입니다. 사실이든 단순히 전설이든 고대 로마의 조상이라는 아이네아스의 후손이 영국에까지 왔다는 내용이라면 로마인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로마인은 유럽 대륙 곳곳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부족의 풍습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민족이 트로이의 브루투스 이야기를 상술하지 않을 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인 중에서 트로이의 브루투스 이야기를 책에 남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9세기입니다. 웨일스의 수도사 네니우스가 쓴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 비로소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책은 영국에서 살았던 원주민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정확한 근거를 바탕으로 썼다기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저자의 해설을 덧붙인 것입니다. 아서 왕을 역사적 인물로 부각시킨 첫 책이라는 점에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은 7세기 스페인 세비야의 대주교였던 이시도르가 쓴 『어원학(또는 기원론)』이라는 책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브리타니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이시도르는 이에 대해 ‘브루티(bruti)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적었습니다. 브루티는 야만인이라는 뜻입니다.


네니우스는 『어원학』을 읽었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는 ‘브루티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문장에서 착안해 ‘브루투스에게서 나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서 네니우스는 브루투스 이야기를 세 가지 ‘버전’으로 소개합니다.


먼저 브리튼이라는 이름을 남긴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먼 후손인 로마의 귀족이라는 겁니다. 그는 집정관으로 전쟁에 나서 스페인을 정복했습니다. 이후 영국까지 장악한 다음 새 로마 영토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에서 브루투스는 아이네아스의 손자인 실비우스의 아들로 나옵니다. 실비우스는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하나는 알바롱가의 왕이 되는 포스투무스였고, 다른 하나는 알바롱가를 떠나 영국으로 건너간 브루투스였다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이 글의 처음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버지를 살해한 브루투스입니다.


12세기 몬머스의 지오프리라는 성직자가 있었습니다. 네니우스처럼 웨일스 출신이었습니다. 박물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영국 왕의 역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기에 트로이의 브루투스와 관련한 전설이 담겨있습니다. 네니우스의 책에 든 내용 중에서 세 번째 부분을 일부 각색하고 부풀린 것이었습니다. 지오프리 덕분에 트로이의 브루투스 이야기는 잊히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됐습니다.

『영국 왕의 역사』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은 9세기에 처음 나오지만 그 이전에 비슷한 전설이 영국에 퍼져 있었습니다. 아이드 마우르(Aedd Mawr) 왕의 아들 프라이데인(Prydein)입니다.


중세 웨일스 서적 『영국 섬의 이름』에 프라이데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브리튼은 원래 클라스 미르딘(Clas Myrddin)이었습니다. ‘미르딘의 영토’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나중에 아이드 왕의 아들 프라이데인이 점령한 뒤에 ‘프라이데인의 섬’이라는 ‘잉스 브라이데인(Ynys Brydein)’으로 바뀌었습니다. 브라이데인이라는 이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브리튼과 발음이 매우 흡사합니다.


추정하자면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은 프라이데인의 이야기에 브루투스라는 이름을 결합시켜 누군가, 또는 여러 사람이 긴 세월에 걸쳐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트로이의 브루투스 전설을 로마 제국 시대 속주였던 영국인들의 소망을 담은 이야기라고 분석합니다. 로마와 영국의 조상이 같으니 두 나라의 유대 관계는 매우 오래됐고 뿌리 깊다는 걸 나타내려는 속셈이었다는 겁니다. 전 세계 모든 나라 중에서 로마 연구가 가장 발달한 나라가 영국이라는 점은 이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부터는 전설이나 믿을 수 없는 책을 제쳐놓고 객관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브리튼의 기원을 찾아가보겠습니다.


기록만 놓고 보면 브리튼이라는 이름은 BC 325년 지리학자 겸 탐험가인 메살리아의 피테아스가 남긴 항해 기록에 처음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 식민도시였던 메살리아는 지금 프랑스의 남부 항구도시 마르세유입니다.


피테아스의 책은 지금 원본은 물론 사본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후대인들이 그 내용을 일부 기록한 덕분에 브리튼이라는 이름이 그 책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칠리아의 디오도루스가 쓴 『역사』, 스트라보의 『지리』, 플리니우스의 『자연사』 등이 그런 책들입니다.


스트라보에 따르면 피테아스는 브리튼을 하이 브레타니아이(hai Brettaniai)라고 불렀습니다. 프레타니케(Pretannikē)라고도 했습니다. 영국을 일컫던 고대 켈트어 프리타니(Pritanī)를 그리스 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프레타노이, 프리테니, 프리타니, 프레타니 등으로 불렀습니다.


4세기 무렵 영국에서 살던 프레타노이 가운데 일부가 대륙으로 돌아갔습니다. 영국에 쳐들어온 앵글로-색슨족을 피해 달아난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오늘날 영국을 바라보는 프랑스 서쪽 끝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브레타니아이에서 온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이 지역을 브리타니(Britanny)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어로는 브르타뉴(Bretagne)가 됐습니다. 오늘날 프랑스 브르타뉴 지역의 이름은 영국에서 건너온 셈입니다.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은 12세기에 처음 나옵니다. 이것 또한 트로이의 브루투스 이야기를 소개한 지오프리의 『영국 왕의 역사』에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영국 본토를 ‘큰 브리타니아’라는 뜻인 ‘브리타니아 메이저’라고 불렀습니다. 프랑스에 있는 브리타니아 지역인 ‘브리타니아 마이너(작은 브리타니아)’와 구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이름이 국가 문서에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것은 1474년입니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5세의 딸 세실리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3세의 아들 제임스의 결혼을 제안하는 문서에 나옵니다. 이 문서에는 ‘그레이트 브리튼이라고 불리는 고귀한 섬’이라는 표현이 담겨 있습니다.


그레이트 브리튼이 영국의 공식 국명이 된 것은 18세기 초입니다.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정치적으로 통합했을 때였습니다. 두 나라를 합칠 때 맺은 조약에 그런 이름이 담겼습니다. 정확한 표현을 보면 ‘대영국이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왕국으로 합쳐진다(United into One Kingdom by the Name of Great Britain)’라고 돼 있습니다.




이제 런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런던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아쉽게도 그 어원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주장만 난무합니다.

템스강과 런던


지오프리는 『영국 왕의 역사』에서 ‘런던은 로마 시대 이전에 이곳을 다스렸던 루드 왕의 이름에서 딴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루드는 트로이의 브루투스가 세운 트리노반툼을 점령해 성채를 재건했습니다. 런던이라는 명칭은 ‘루드의 성채’를 의미하는 ‘CaerLud’ 또는 ‘Kaerlud’에서 나왔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이 단어가 나중에 ‘Karelundein’으로 변했고 결국 런던이 됐다는 것입니다.


영국 언어학자 리처드 코츠 교수는 1998년 논문에서 다른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런던이라는 이름은 켈트족 도래 이전 유럽어 ‘lowonida’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건너기에 너무 넓은 강’이라는 뜻입니다. 나중에 켈트족이 도래한 뒤 ‘Londonjon’이라는 켈트어로 바뀌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다른 가설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BC 150년 무렵 영국에 건너간 벨가이 족 일부가 런던 일대에서 살았습니다. 이 부족이 옛날 대륙에서 살던 마을 이름을 붙인 데에서 런던이라는 명칭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또 런던이 웨일스어 ‘린 딘(Llyn din)’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호수의 부두’라는 뜻입니다.



3. 트로이의 브루투스는 불가능?


전설, 신화는 아무 근거도 없이 지어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뿌리를 잘 찾아 들어가면 각 스토리가 나오게 된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다만 현대의 우리는 그 근원을 모를 뿐입니다. 트로이의 브루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생각부터 해보겠습니다. 과연 브루투스가 배를 타고 영국까지 가는 게 불가능한 일이었을까요?


BC 10세기 무렵 페니키아는 포르투갈의 카디즈에 식민지 도시를 만들었고 리스본에까지 진출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에도 오갔다고 전해집니다.


페니키아에 앞서 그리스인들이 리스본 일대에서 무역을 했습니다. 페니키아가 영국을 왕래했다는 것은 이미 그 이전에 길이 열려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인들이 길을 연 사람이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어떻게 열렸을까요?


누구나 잘 아는 헤라클레스 신화가 있습니다. 그는 아내와 자식들을 죽인 벌로 12가지 과업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중 열 번째는 게리오네우스(또는 게리온)가 세상의 서쪽 끝에 있는 전설의 섬 에리테리아에서 키우는 소떼를 가져다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무도 가보지 못했던 에리테이라는 오늘날 대서양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헤라클레스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배를 빌려 타고 에리테리아에 가서 게리오네우스는 물론 머리 두 개를 가진 개 오르토스, 거인 목동 에우리티온을 모두 죽이고 무사히 소를 훔칠 수 있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헤라클레스 12가지 과업 신화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엄청나게 힘든 12가지 모험을 겪은 여러 주인공의 이야기를 헤라클레스라는 이름 아래 묶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 에리테리아에 갔다는 헤라클레스는 무역에 종사했거나 모험을 즐겼던 그리스의 선원이나 선장이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로운 무역도시, 식민지를 찾아다니다 그리스인으로서는 최초로 지중해를 지나 대서양까지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베리아 반도와 아프리카 사이의 지브롤터 해협에 있는 ‘헤라클레스의 기둥’은 그가 해안선을 따라 지나간 곳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역사학자들은 ‘헤라클레스가 에리테리아에 갔다는 신화는 새로운 무역 경로를 개척하려고 낯선 바다에 갔던 선원 이야기를 영웅적으로 각색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뱃길을 따라 이베리아 반도까지 간 그리스 배는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대서양으로 바로 나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대신 해안선을 따라 더 북쪽으로 올라갔을 수는 있습니다. 헤라클레스의 신화가 남아 있는 지역을 따라가 보면 어디로 갔을지 답이 나옵니다.


모나코~피레네 산맥~바르셀로나~세비야~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이베리아 반도 북서쪽 갈리시아의 도시인 라코루나에 헤라클레스의 신화가 전해집니다. 점을 찍어보면 이베리아 반도의 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선이 그어집니다.

도버 해협

여기서 영국 남쪽에 있는 라코루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지 전설에 따르면 헤라클레스가 게리오네우스의 머리를 잘라 묻은 곳이 라코루나였다고 합니다. 그곳에 ‘헤라클레스의 탑’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과거에는 게리오네우스의 무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왜 헤라클레스와 게리오네우스 전설이 나오는 것일까요?


라코루나의 전설에 따르면 게리오네우스는 갈리시아에 있던 나라인 브리간티움의 왕이었다고 합니다. 폭군인 게리오네우스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그리스인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한 덕분에 헤라클레스가 먼 그리스에서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이 이어집니다. 게리오네우스에 앞서 브리간티움을 건국한 사람들은 유럽대륙 중부에서 내려온 켈트족이었습니다. 이들 중 일부가 바다를 건너가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고 합니다. 오늘날 아일랜드였습니다. 바다를 건너간 사람들이 아일랜드에만 갔을 리는 없습니다. 영국에 간 무리도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겠습니다. 놀라운 점은 트로이 유민을 조상으로 삼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은 영국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세기 로마 시인 마르쿠스 아나이우스 루카누스에 따르면 오늘날 프랑스의 오베르뉴 지역에 살았던 갈리아 부족 아르베르니 족과 벨기에 지역에 살았던 다른 부족들도 조상이 트로이에서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앞으로 다른 편에서 소개하겠지만 프랑스 파리, 스페인 마드리드도 트로이 유민이 세운 도시라는 전설이 전합니다.


BC 13세기에 멸망한 트로이의 유민들은 소아시아나 그리스에 정착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일부는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가고, 나머지는 배를 타고 바다를 떠돌다 이베리아 반도, 그리고 나중에는 유럽대륙이나 영국에까지 갔을 가능성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멸망한 조국이나 조국을 멸망시킨 그리스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난 곳에서 사는 게 악몽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조금 당혹스러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길었던 트로이의 브루투스 편을 끝내고자 합니다.


1~2세기 로마 역사학자 타키투스가 쓴 『게르마니아의 기원과 상황』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게르마니아 족의 기원을 다룬 민족지학 서적입니다. 2장에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게르마니아의 서사시를 보면 그들은 땅에서 솟아난 신 투이스토와 그의 아들 마누스를 부족을 탄생시킨 아버지로 경배한다. 그들은 마니우스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름을 따서 여러 민족의 이름이 생겼다. 대양 근처에 사는 잉가이보네스 족, 대륙 한가운데에 사는 헤르미노네스(또는 이르미노네스) 족, 나머지 지역에 사는 이스타이보네스 족이다. 일부는 역사의 어둠을 틈타 ‘신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부족 이름이 생겼다. 마르시아 족, 감브리아 족, 수에비 족, 반달 족이다’라고 주장한다.’


네니우스가 쓴 『히스토리아 브리토눔』에 타키쿠스의 책에 나온 내용이 등장합니다. 물론 원본과 약간 내용이 다릅니다. 기독교를 믿는 수도사답게 그는 브루투스와 브리튼의 관계를 새롭게 설명하기 위해 기독교적인 내용을 넣어 약간 각색했습니다. 자!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브루투스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알게 됐다. 고대인이 쓴 책에서 읽은 것이다. 대홍수가 일어난 뒤 노아의 세 아들은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셈은 아시아, 햄은 아프리카, 야벳은 유럽으로 갔다. 유럽에 정착한 첫 인간은 마누스였다. 그의 세 아들 이스타이보네, 헤르미노네, 잉가이보네도 따라갔다. 이들 중에서 이스타이보네는 네 아들을 낳았다. 프랑쿠스, 로마누스, 브루투스, 알레마누스였다. 네 아들에게서 프랑크 족, 라틴 족, 알레마니 족, 브리튼 족이 생겼다.’


트로이의 브루투스와 브리튼!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