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0년 12월 24일 옥스퍼드 노스무어 로드 20번지. 우편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한 집으로 달려갔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려 우편함에 편지를 넣었다.
“톨킨 부인, 편지가 왔습니다.”
우체부는 집 주인을 향해 소리를 지른 뒤 윗동네를 향해 다시 자전거를 몰았다. 겨울인데도 얼마나 자전거를 힘들게 몰았던지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집에서 한 부인이 나왔다. 에디스 메리 톨킨 부인이었다. 그는 설거지를 하다 편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손을 닦은 뒤 서둘러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고마워요! 에디~~”
톨킨 부인은 우편함을 열어 편지를 꺼냈다. 거기에는 두툼한 분량의 편지 네 통이 들어 있었다. 수신인은 그녀의 네 아이들이었다. 존 루엘 톨킨, 마이클 루엘 톨킨, 크리스토퍼 루엘 톨킨, 프리실라 루엘 톨킨.
발신인 이름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바로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이었다. 편지를 보낸 주소는 옥스퍼드대학교 펨브로크 컬리지로 돼 있었다. 교수로 근무하는 남편이 보낸 편지였다. 톨킨 부인은 빙그레 웃으며 편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얘들아! 기다리던 편지가 왔네. 아빠가 크리스마스 편지를 보내셨단다.”
2층에서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 내려왔다. 모두 환하게 웃는 걸 보니 편지가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13세로 장남인 존은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 그의 동생인 마이클, 크리스토퍼는 서로 먼저 편지를 받으려고 앞 다퉈 달렸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막내 프리실라는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톨킨 부인은 세 아이에게 편지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각자 편지를 받아 거실의 편한 자리에 앉아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는 흥분된 표정으로 편지를 찬찬히 읽어나갔다. 그동안 톨킨 부인은 막내의 편지를 손에 들고 울음을 달래 주었다.
“형, 편지는 무슨 내용이야?”
“마이클, 너는 어때?”
“크리스토퍼, 네 편지는 어때?”
“엄마, 프리실라 편지도 읽어주세요!”
세 아이는 자신의 편지를 다 읽은 뒤 서로 바꿔 읽었다. 톨킨 부인은 프리실라를 토닥거리면서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톨킨은 매년 성탄절에 네 아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성탄절에 몸 건강하고, 새해에도 행복하게 지내자는 그저 그런 내용의 안부편지가 아니었다. 그런 편지였다면 아이들이 난리를 치면서 2층 계단에서 뛰어내려 올 이유가 없었을 겁니다.
톨킨은 가족과 떨어져 살지 않았다. 그가 다니는 옥스퍼드대학교는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면 가는 곳이었기 때문에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할 이유가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성탄절이라고 안부편지를 보낼 이유도 없었다.
톨킨의 편지는 사실 편지가 아니라 단편 동화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성탄절 선물로 옷, 장난감을 주는 대신 편지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적어 보낸 것이었다. 그가 성탄절 편지 선물을 쓰기 시작한 건 1920년이었다. 큰 아들 존이 세 살 때였다. 그랬던 아들이 열세 살이 됐으니 편지의 역사도 10년이나 됐다.
톨킨이 쓴 편지의 소재는 ‘파더 크리스마스’였다. 파더 크리스마스는 한마디로 산타클로스였다. 큰아들 존이 엄마에게 아빠가 보낸 편지 내용을 설명했다.
“이번에는 북극곰 이야기예요. 고블린이 사람들을 괴롭혔대요. 그런데 파더 크리스마스가 북극곰에게 좋은 방법을 일러줘서 고블린을 쫓아냈다는 이야기예요."
“대충 듣기에도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구나. 아빠가 매년 성탄절에 이렇게 재미있는 동화 선물을 주셔서 너희들은 정말 행복하겠구나.”
“저도 어른이 되면 아이들에게 동화 선물을 줄 거예요.”
톨킨 부인은 밝은 표정으로 웃으며 아들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아빠의 편지 네 통을 꼼꼼히 읽던 크리스토퍼가 엄마 곁에 왔다.
“엄마,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아빠가 주신 편지 동화를 책으로 엮을 거예요. 그래서 다른 아이들도 아빠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할래요.”
“참 좋은 아이디어로구나. 편지를 상자에 잘 넣어둬서 잃어버리지 않아야겠구나.”
"네, 그렇게 할 거예요. 아무도 훔쳐가지 못하게 자물쇠로 잠가둬야 하겠어요.“
“크리스토퍼, 내 편지랑 마이클 편지도 함께 넣어두도록 해. 그리고 우리 편지도 함께 책으로 출간하도록 하자.”
톨킨 부인은 그제야 잠든 막내 프리실라를 요람에 눕혔다. 그리고는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세 아들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2.
‘아이들이 편지를 다 읽었으려나? 올해 동화도 마음에 들어 할지 모르겠군.’
톨킨은 그 시간 옥스퍼드대학교 펨브로크 컬리지의 교수 연구실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제 막 학기를 마친 학생들의 성적평가서를 작성하던 중이었다. 아이들이 편지를 보면서 좋아할 생각에 그의 입가에는 빙긋이 미소가 떠올랐다.
톨킨은 아버지를 네 살 때 잃고, 열두 살 때에는 어머니마저 잃었다. 그는 부모 없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다. 외조부모 두 분이 부자여서 대학교까지 다니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은 그가 늘 아쉬워하던 부분이었다.
톨킨은 펨브로크 컬리지에서 언어학을 가르쳤다. 나중에는 머튼 컬리지 등에서도 일했다. 그는 전래동화, 전설, 신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결혼한 뒤 부모 없이 자란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동화를 쓰기로 했다. 다른 미사여구나 선물보다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로 아이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전달하기로 한 것이었다.
“땡~~~ 땡~~~!”
시계가 종을 울렸다. 벌써 오후 2시였다. 톨킨은 서둘러 일을 마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때 갑자기 그의 머리에 좋은 글감이 떠올랐다. 조금만 가다듬으면 아이들에게 새해 선물로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책상 서랍 아래 칸을 열어 새 공책 한 권을 꺼냈다. 첫 문장이 떠올랐다. 그는 잊어버릴까 서둘러 종이에 글을 적었다.
‘땅 속 깊은 구멍에 한 호빗이 살았다.’
톨킨의 머리에서는 재미있고 기발하고 멋진 문장이 연거푸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손은 마치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빠른 속도로 백지 위에서 흔들렸다. 그가 꺼낸 공책은 많은 글로 가득 찼다. 그는 새 공책을 꺼냈다. 그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신기한 글감을 펜으로 일일이 주워 공책에 옮겨 담느라 바빴다.
“땡~~ 땡~~!”
다시 시계가 종을 쳤다. 밤 8시를 알리는 소리였다. 톨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글을 그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다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방을 정리했다. 책상에서 꺼낸 공책은 네 권이나 됐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다시 새 공책 세 권을 더 꺼내 가방에 넣고는 연구실 문을 열고 나갔다.
늦은 밤 가족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톨킨의 얼굴에는 신나고 즐거운 미소가 흘렀다. 그의 발걸음은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달리는 산타클로스만큼 가벼웠다. 서둘러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방금 쓰기 시작한 책 이야기를 들려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톨킨이 쓴 책은 2년 뒤인 1932년에야 완성됐고, 5년 뒤에는 책으로 출간됐다. 책의 제목은 바로 ‘호빗’이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성탄절 선물로 써준 편지는 1976년 책으로 발간됐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아빠의 편지를 책으로 엮겠다던 크리스토퍼의 두 번째 아내가 편집을 맡았다. 출판은 ‘톨킨재단’이 담당했다. 톨킨의 무덤은 옥스퍼드의 울버코트 공동묘지에 있다.
한편 톨킨 가족이 살았던 옥스퍼드 노스무어 로드 20번지의 집은 세인트 앤드류스 교회 바로 인근에 아직 그대로 남아 있다. 세인트 옥스퍼드 여행을 간 김에 일부러 가보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