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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양 Apr 04. 2024

고양이는 똑똑하다.

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고양이는 똑똑하다.




고양이의 지능이 강아지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훈련이 되는 고양이와 달리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게 고양이다. 본인이 원할 때는 다가와 헤드번팅을 하지만, 본인이 싫을 때는 만지면 도망가버리기 일쑤이다. 부르면 달려오던 가을이도 자기가 귀찮을 때는 오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한다. 하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똑똑하기 때문에 사람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빗질과 돌돌이를 매일 하는 가을이는 "반대! 돌아!"를 할 만큼 똑똑하다. 하지만 하기 싫을 때는 귀찮다는 소리를 내면서 거부 의사를 정확히 전달한다. 말대꾸도 꼬박꼬박 잘하는 걸 보면 영특하기 그지없다. 훈육이 안되던 시절에는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도 무시했지만, 이제는 "이놈"하면서 저음의 목소리를 내거나 화를 내면 정확하게 상황을 이해한다. "가을이랑 안 놀아""엄마 나가" 이 말은 가을이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드는 말이다. 표정부터가 달라진다.







고양이는 시계를 볼 줄 안다.




고양이를 키우기 적합한 사람은 매일 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고 정확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는 사람 그리고 집순이, 집돌이라면 고양이를 키워도 좋다. 하지만 모임이 많고 활동적인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키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모르는 사람들은 "고양이는 혼자 잘 있잖아?"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집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매일 똑같은 시간에 기상을 하고 집사를 깨우기 때문에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라면 상당히 피곤할 수 있다. 야행성인 고양이는 밤에 후다닥을 하면서 노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가을이는 어릴 때부터 나와 패턴이 같아서 그런지 매일 같은 시간에 잠들고 매일 같은 시간에 날 깨운다.


대부분 밤 10시에 자는 우리기 때문에 가을이는 저녁 9시 반쯤이면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갔다가 물을 마신뒤 자기 자리로 올라간다. 우리가 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아도 말이다. 가끔 보면 "쟤 사람아냐?" 할 정도로 루틴이 정확하다. 기상은 아침 7시 남편이 출근하는 시간이다. 그때쯤 나도 기상하기 때문에 이미 잠에서 깬 가을이는 5시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매일 눈을 뜨면 가을이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어 놀랄 때가 많다.

살을 붙이고 자는 타입은 아니라서 침대 맞은편 붙박이장에 가을이의 침실을 꾸며줬는데 내가 꼼지락 일어난 것 같으면 바로 점프해 침대로 날아온다. 그리고는 헤드헌팅을 하면서 자기를 만져달라며 애교를 피운다.

가끔은 나도 늦잠을 자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가을이가 오기 전에는 자유로운 기상과 취침을 했기 때문에 상당히 피곤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사실이다. 매일 아침 7시에 직장도 없는 내가 일어난다는 것은 꽤 힘든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주고 물을 새로 갈아주고 화장실 청소까지 하고 나면 식사를 마친 가을이는 내 곁으로와 잠을 청한다. 나를 그렇게 깨울 때는 언제고! 자기는 아침잠을 자버리는 가을이이다. 어디 가면 안 돼라는 듯이 궁둥이를 나의 다리에 붙이고 자는데 한 시간이 넘어가면 다리가 저리고 힘들 진다. 요즘은 요령이 생겨 '엄마도 밥 먹을 거야'하면서 가을이를 뿌리치지만 처음에는 마음이 약해 몇 시간을 부동자세로 지냈었다.


매일 같은 루틴이 지켜지지 않으면 고양이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행복해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침에는 습식을 반캔먹는 것이 루틴인 가을이기 때문에 집사는 오늘도 부지런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난임으로 고생하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직장 없이 한해한해가 임신이 목표가 되어 지냈었다. 셀 수 없는 실패와 좌절의 순간을 겪으며 어느 때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술에 의존하며 매일을 방탕한 삶으로 살았다. 언젠가 "나 이러다가 나 죽으면 나태지옥에 빠지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을 할 만큼 삶의 목표를 잃고 방황했었다.


지금도 가끔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술도 마시던 밤생활도 그립지만 숙취로 힘들어하는 나를 한심한 듯 쳐다보는 가을이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자식을 키운 다는 것은 책임감이 뒤따른다. 낳기만 했다고 자라는 것이 아니기에 관심과 사랑을 줘야 한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밥만 챙겨주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 같이 놀아주고 낮잠도 자면서 유대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고양이는 독립심이 많고 귀여우니까 한번 키워볼까"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반려견, 반려묘를 키우는 일은 바쁜 일상 속에 기쁨을 주는 작은 일부분이 아니라 내 삶 전체에서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해야 하는 일이다. 나의 생활의 대부분을 쏟아야 하는 아주 큰 일이기 때문에 제발 신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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