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양 Apr 15. 2024

고양이 돌잔치

어느 날 갑자기 집사가 되었습니다.


2022년 9월 17일 밤 12시가 넘은 시각 우리 집에 온 가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1년이 다 돼가는 날이었다. 우리 집에 왔을 때 2~3개월 아깽이였으니까 아마 여름이 생일인 우리 가을이를 위해 나는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생일파티를 꾸며줄 것 들을 구매했다. 이런 거 참 많이 쑥스러워하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사진은 남겨줘야겠다는 생각에 첫 번째 생일파티를 열었다.


"아이를 낳으면 난 돌잔치 같은 거 안 할 거야."라고 했던 나는 또 말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기쁜 일만 가득하면 세상을 아름답게만 보지만, 일이 잘 풀리지 않던 나의 난임시절은 삐뚤어질 대로 삐뚤어진 마음뿐이었다. 마음에도 없던 소리를 하며 극성맞은 엄마들을 속으로 욕하던 나였지만, 정작 내가 이쁜 가을이를 만나고는 극성맞은 엄마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간식과 장난감, 생일축하 가랜드에 이쁜 리본목걸이도 샀다. 손님은 없지만 우리들만의 성대한 파티를 열었다. 참 이상한 건 이런 거 정말 이해 못 하는 신랑은 내가 하는 일에 전혀 태클을 걸지 않았다. '고양이한테 생일 파티라니'한 심한 듯 쳐다볼 만도 한데 아무 말 없이 꼼꼼하게 세팅을 도와주었다.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에 부러움을 부럽다 하지 못했던 나는 가을이가 오고서야 다른 사람들이 부모로서 해보는 것들을 해보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하고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내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노심초사하며 돌보다 보니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고 해도 나에게는 가을이가 첫째 딸일 것이다.



가을이를 만나고 세상을 어둡게만 바라보던 나의 눈이 이제는 세상을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가을이는 무슨 복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보호자를 만났냐며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물론 춥고 힘든 바깥세상보다야 등 따시고 배부른 집안이 좋겠지. 게다가 아이도 없으니 경쟁자도 없어 외동묘로써의 무한한 사랑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가을이가 오고서 내가 얼마나 어둡고 침울했었는지 깨달았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약해서 동물한테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 아냐"라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키워보니 그 마음을 알겠다. 가족이나 친구, 배우자보다도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존재라는 것을.. 작디작은 몸으로 우리 집에 와서 벌써 2년째가 되어가는 우리 가을이는 엄마아빠가 싸울 때면 누구보다 빨리 눈치를 채고 다리 사이로 와서 싸우지 말라며 말리는 애교쟁이 딸이다. 가끔 눈물 흘리는 나를 보면 아무 말 없이 안쓰럽게 바라봐주는 고마운 존재다. 힘이 들 때는 백 마디 위로보다 따뜻한 시선만 있으면 위안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잊고 있다 보면 언젠가 찾아올 거야"라며 위로를 건넸지만, 그저 빈말로만 느껴지고 나의 헛헛함을 달래기엔 부족했다. 가진 자의 여유라며 비꼬아 생각하기도 했다. 아무도 내 마음을 모른다며 동굴 파고 깊이깊이 들어갔다. 


삐뚤어진 나의 마음을 존재 자체만으로 따뜻하게 채워주는 가을이는 좋은 부모를 만난 게 아니라 많이 부족한 부모에게 와서 좋은 딸이 되어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아 동생 어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