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불만에서, 진실의 검증으로
2010년 무렵,
고객센터로 걸려오는 전화의 온도는 대체로 이 정도였습니다.
“맛이 좀 안 맞네요.”
“생각보다 별로예요.”
대부분은 환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설명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말들은
취향의 영역에 머물렀고,
그 안에는 날 선 분노가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나랑 안 맞았나 보다.”
그 정도의 거리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불만의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걸 그렇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광고에서 말한 내용이랑 다르네요.”
“과거 인터뷰랑 말이 다른데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말보다,
‘말이 맞느냐’를 묻는 질문이
훨씬 더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직감했습니다.
이건 더 이상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진실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요.
이 변화는
소비자가 갑자기 까다로워져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너무 많은 말들이
책임을 생각하지 않은 채
너무 쉽게 쓰였습니다.
“혁신적이다.”
“최고다.”
“유일무이하다.”
그 말들 중 상당수는
시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소비자는
무언가를 사기 전에
유난히 많은 것을 확인합니다.
리뷰를 보고,
댓글을 보고,
과거 기사와 인터뷰를 찾아보고,
심지어 브랜드가 예전에 했던 말까지 되짚어봅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 과하다” 싶었을 행동이,
지금은 오히려
현명한 소비의 기본값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 소비자는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감정의 정체가
정말 분노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들은
화가 난 게 아니라,
다시 다치고 싶지 않은 상태에
더 가까운 건 아닐까요.
너무 많은 과장,
너무 많은 기만,
너무 많은 실패 사례 속에서,
한 번의 선택이
생각보다 큰 손실로 남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소비자는
기대보다 먼저
의심을 장착합니다.
이건 공격이라기보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방어가 시작됐다는 건,
한번쯤은
다쳤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지점에서
마케팅의 역할도
조용히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를 믿어달라”는 말이
설득의 중심이었습니다.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이느냐가
승부처였죠.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이제는
“우리는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상태를
증명해야 하는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설득이 아니라,
입증에 대한 요구.
소비자는
브랜드를
호의적인 연인처럼 대하지 않습니다.
조금 거리를 두고,
차분하게
검증의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광고 문구나
제품 패키지 문구를 볼 때,
이런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이 말이 틀렸다고 밝혀졌을 때,
우리는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침묵하게 될까.”
예전에는
얼마나 멋진지가 먼저였다면,
지금은
얼마나 문제 되지 않을지가
먼저 계산됩니다.
요즘 소비자는,
무작정 사지 않습니다.
무작정 믿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구매 전에,
조용히
확인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것을
‘불신의 시대’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보면,
이것은
말이 다시 무게를 갖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한 번 한 말이
사라지지 않는 세계에서,
소비자는
그 말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말은,
앞으로도 살아남아도 되는 말입니까?”
이 질문 앞에서
멈칫하는 브랜드와,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브랜드 사이의 간극은,
앞으로
점점 더 크게 벌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브랜드를 바라보는 소비자는 지금,
화가 나 있습니까,
아니면
조심스러워하고 있습니까?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는 순간,
다음 메시지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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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가 이렇게 ‘검증자’로 변했다면,
마케터인 우리는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요.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요즘 회의실에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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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은 왜 자동화되면 안 되는가
AI는 멈추지 않는다. 사람만이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