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슬프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조용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죽음은 항상 어딘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이렇게 갑자기 일상 가까이에 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무게를 실감합니다. "나는 지금 충분히 소중한 사람들 곁에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그날 저녁 오랜만에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평소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뒀던 책이었습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제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다." 한 줄 읽고 나서 책을 잠시 덮었습니다. 그 문장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독서는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위로의 말을 직접 건네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문장으로 마음을 건드립니다.
책을 읽다 보니 무언가 쓰고 싶어졌습니다. 서랍에서 오래된 펜을 꺼냈습니다. 잉크가 남아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종이 위에 흐르듯 써졌습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기록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하루 느꼈던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슬플 것 같아서, 할머니의 따뜻한 손이 그리울 거라서 그리고 저 역시 언젠가 소중한 사람을 잃을 것이기에. 펜은 그런 감정들을 붙잡아두지 않고 종이 위에 흘려보내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려는데 스트레스가 밀려왔습니다. 내일 마감인 업무, 답장하지 못한 메시지 그리고 아까의 죽음에 대한 생각이 뒤섞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스트레스는 영리합니다. 우리가 잠시 방심하는 순간 조용히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이불 속에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습니다. 들숨에 긴장을 모으고, 날숨에 그것을 천천히 내보냈습니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지금이 소중해진다는 역설이 그날 밤 스트레스를 조금 내려놓게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