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사실 혼자 가보려고 했었다. 둘이서 간 적은 많았지만 혼자는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곳. 일주일에 두 번 필라테스 학원에 갈 때마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코인노래방이 눈에 들어왔다. 매번 오늘 운동이 끝나면 한 두곡 부르고 가야지 했었다. 하지만 매번 땀범벅으로 학원을 나섰던 탓에 코노 생각은 하얗게 잊곤 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일을 하고 글을 쓰라는 글쓰기 수업의 과제를 보고 별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동안 한 번 가봐야지 가봐야지 생각했던 코인노래방의 문턱을 한 번 혼자 넘어보자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나의 이 원대한 계획을 얘기했다. 너무 쉽다고 했다. 쉽기는 한 것 같았다. 그러면 뭘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남편은 내가 평소에 못하게 하는 것, 예를 들어 밖에서 들어온 상태 그대로 침대에 파고들기나 식사 후 식탁 치우지 않고 설거지 거리 쌓아두기 같은 이상한 미션을 해 보라고 했다. 이 때다 싶어 사심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절대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리 없다.
그러던 즈음 지난주 한국으로 놀러 온 대만 친구의 귀국 일정이 늦어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목요일 하루는 하늘이 맑을 예정이었다. 소풍 가기 좋은 계절. 집 앞 공원 잔디밭에 캠핑의자를 펴고 앉아있다 오자고 언니를 불러 냈다. 캠핑의자에 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노라니 갑자기 코인노래방이 떠올랐다. 언니에게 코인노래방에 가봤냐고 물으니 안 가봤다고 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사에서 일하면서 한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언니는 한국어 패치가 거의 완벽하게 장착되어 있는 상태다. 한국 노래 중에 무슨 노래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언니의 첫 대답은 테이의 모놀로그였다. 원래 버즈의 모놀로그인데 테이가 부른 버전이 더 좋다고. 언니에게 사실 한국인이라면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그렇게 언니와 급 코인노래방을 가게 되었다.
야심 차게 노래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하게 마이크 커버를 두 개 챙기고 조금 평 수가 넓어 보이는 방을 골라 들어갔다. 지갑에 현금이 없었지만 요즘은 신용카드도 되니 괜찮았다. 5천 원, 30분을 결제했다. 언니가 코인노래방인데 코인을 안 넣으니 코인노래방이 아니지 않냐고 했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가득 바꿔올 걸 그랬다.
리모컨으로 노래를 예약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노래 제목이나 가수를 검색하고 노래를 찾아 예약 버튼을 누르거나 시작 버튼을 누르면 된다고 했다. 언니가 처음으로 부른 노래는 울랄라세션의 서쪽하늘. 사실 언니는 이홍기의 서쪽하늘을 들어봤다고 했다. 언니는 이승철도, 이홍기도, 슈퍼스타 K의 울랄라세션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두 번째로 언니가 고른 노래는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나는 읽기 쉬운 마음이야. 당신도 쓱 훑고 가셔요. 너무 감미롭다. 한국어가 이렇게 아름다웠다니. 잔나비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 언니는 잔나비의 목소리는 정말 몽환적이라고 했다.
다음 노래는 무려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 언니에게는 80년대생 노래방 18번 곡 패치가 붙은 게 틀림없었다. 감미로운 노래가 끝나고 점수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니, 100점이 나와버렸다. 서비스 5분 추가. 100점을 받으면 5분이 추가되는구나. 언니의 백점 덕에 처음 알았다.
언니는 남편의 일이 조금 한가해지는 11월이 되면 대만으로 놀러 오라고 했다. 대만에 가게 된다면 언니 또래의 누구나 다 알고 있을 법한 18번 노래를 하나 연습해 가야겠다. 언니가 깜짝 놀라겠지? 아니, 그전에 그 노래를 연습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먼저 놀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