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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 Nov 10. 2020

길모어걸스: 한 해의 스케치(2016)

유년의 드라마


The Long Goodbyes




재작년 그러니까 2018년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날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일하고 퇴근했다. 공휴일인 다음날이 그나마 쉬는 날이라 마음엔 조금 여유가 있어서 미리 마트에 가서 술을 잔뜩 사왔다. 맥주 네 캔에 화이트 와인 한 병 그리고 막걸리 한 병도 샀다. 이 중에서 와인 한 병만 마셨다.


사실 작정하고 본 건 아니었다. 작정해야 할 줄 알았다. 내 유년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는 시리즈의 끝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의미부여는 하고 보게 될 줄 알았다. 외려 의미부여는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해줬다. 메인에 떠 있었거든. 그날 그 시간대 무드엔 나처럼 이 시리즈를 선택할 사용자들이 많을 걸로 분석됐던 걸까? 때로는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정확하게 안다.



90분 남짓한 에피소드 네 개로 이뤄진 고작 1년간을 다룬 시리즈였지만 막상 보고나니 헛헛한 마음이 컸다. 장장 시즌 7을 거치면서 줬던 여운보다 더 큰 여운을 줬다. 나는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말하자면 지금 내 직업을 택한 시점으로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곤 하는 15살 즈음부터 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당시 나의 애매모호한 선호를 '기자'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바꿔 놓은 덴 매우 큰 영향을 준 드라마라 할 수 있다.


내가 쉽게 이입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의 여러 상황도 그렇고, 닮고 싶은 주인공의 매력적인 캐릭터도 일조했다. 시종일관 지적이고 발랄한 유머가 오가고, 결국 곤란한 상황도 최선의 방식으로 수습해내는 극의 전개는 큰 위안이 되었고, 극중 주인공 로리가 대학 입시를 위해 노력한 모습들도 당시 비슷한 처지에서 입시를 치르고 있던 나에게 흔치 않은 동기부여형 휴식이 되어주었다.


볼 때는 정신없이 몰두하다가도, 극에서 나오면 정말 아무것도 남는 게 없는 드라마들이 있다. 가령 드라마와 유리된 내 삶을 더 차갑게 자각하게 하면서 쓸쓸함이 배가 되거나,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했다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들. 물론 킬링타임으로 제격이지만 보고 나면 더 맥이 빠진다.


반면 허구를 다루면서도 내 현실적인 삶에 좋은 영향을 주고, 나의 근미래에 간접적이나마 닿아있다는 느낌, 또는 나에게 새로운 자극과 교훈을 주는 작품들이 있는데 모티베이션이 끊임없이 필요했던 시절의 나에겐 길모어걸스나 웨스트윙, 뉴스룸 같은 드라마들이 그런 역할을 해줬던 것 같다.


특히 고전 영화를 몇 번씩이나 돌려보고,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주인공들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묘사되는 길모어걸스는 따따부따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그들의 대화만 듣고 있어도 미국 근현대 문화사의 계보가 꿰어맞춰지는 기분까지 들게 했다. 주인공들의 대화 90% 이상이 현존하는 작품들에 대한 비평이나 인용이다. CNN의 간판 앵커이자 기자인 크리스찬 아만푸어의 이름도 이 드라마에서 처음 들었다.


                                          * 종군 기자로 활약한 아만푸어는 인터뷰 전문 기자로 커리어를 쌓아 CNN 대표 앵커가 되었다. 스타기자로 발돋움하면서 본인 이름을 단 쇼를 여러 개 기획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에도 아만푸어가 직접 기획하고 취재한 '지구촌 성풍속도..' 라는 프로그램이 올라가 있다 :)


대학이 고민의 거의 전부이고, 대학 생활이 인생의 로망 대부분을 차지했던 수험생에게, 끝내 예일대에 합격해 선망하는 삶을 살아가는 로리의 캠퍼스 라이프는 말 그대로 '뽕'이었다. 학보 기자로 활약하며 연애며 학업이며를 이어가는 로리의 삶에 너무나 심취한 나머지 고등학생 때 내가 수없이 바라고 기대한 나의 대학시절도 학보사가 돼 버렸다. 이 로망은 궁극적으로 지금의 나를 있게 하는 데 매우 치명적인(?) 이유가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그것도 로리와 똑같은 철학을 전공했고, 학보사에 대학생활을 투신하고 결국 원하는 회사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 유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반복해 보고, 또 봤던 길모어걸스의 세계관은 내 정서의 놀이공간 같은 곳이었다. 쉽지 않은 수험 생활동안 흔들리고 약해진다고 느낄 때마다 공의에 대한 열정과 학습의 모티베이션은 <웨스트윙>으로 불을 붙였고 마음의 평화는 <길모어걸스>에서 찾았다. 이럴 정도이니, 감히 해리포터 시리즈와 쌍벽을 이루는 내 유년기 영혼의 동반자라 함직한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일찍이 접한 지인이 2016년 해당 시리즈의 리부트 사실에 대해 알려줬을 때 크게 반가웠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보기를 미뤄왔는데 내 생각엔 당시 정신없이 흘러갔던 현실의 삶도 삶이었거니와 큰 애정을 갖고 있는 이 시리즈가 오랜 공백 기간동안 나도 모르게 무너져버렸으면 어떡하나, 배우들의 표정에서 진정성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실제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화한 것도 일부 있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간에 내가 새해의 길목에서, 나의 20대와 작별을 고하는 시점에 이 마지막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는 건 끝내 어떤 의미인가를 획득한 게 사실이다.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다 보고서 느낀 먹먹하기도, 담담하기도 한, 그러나 단지 몇 가지 형용사로만 표현하긴 힘든 이 여운 때문에 여기 들어와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로리가 다시 스타스할로우에 돌아오는 첫 겨울 에피소드의 작위성을 참아내는 것이 관건이었다. 10년이 흘러버렸고 강산이 바뀌는 세월을 버틴 스타즈 할로우의 그대로와 변화를 이질감 없이 구현해내야 했으니까. 너무나 오랜만에 만난 배우들이 극중에선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을 '모녀' 관계를 재현하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그 어색함은 역시 있었다.


공백 기간동안 리처드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도 문제였다. 바짝 야윈 에밀리가 벽면을 가득 채운 리처드의 사진을 걸어두었을 때 시청자가 느끼는 감정과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반응의 시차가 꽤 컸으니까. 마치 울어버리고 싶은데 웃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첫 에피소드의 위기를 극복하자 점차 끝없이 매료될 수밖에 없었던 이 시리즈의 장점이 하나 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오래 참아낸 시청자에겐 결국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줄 장면도 준비돼 있었다.


더구나 에이미 셔먼펠러디노의 재기발랄함은 죽지 않았더라. 첫 에피소드 커크의 '우우버'도 그랬고. 고전 영화에 대한 주인공들의 대화에선 어느덧 <왕좌의 게임> 패러디가 등장했다. 극 말미 <소셜 네트워크>를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 대사("The Gilmore Girls"에서 "The"만 빼라는 로렐라이의 대사)와 새로운 일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며 긍정 마인드 세팅에 박차를 가하는 로리가 "마치 아론소킨 작품같아"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길모어걸스는 결코 '아론소킨 작품'이 아니었다. 내가 에피소드들을 보고 남은 헛헛한 마음의 대부분은 사실 로리 때문이다. 블랙 유머와 풍자가 섞인 대사들을 숱하게 접하며 위키피디아에선 '시트콤'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시리즈의 작가가 낙천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면모가 이렇게 10년이 지난 리부트 시리즈에서 극대화 할 것이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로리에게 닥친 위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어렵게 공부해 명문대를 졸업하고도 할 일이 없어 고향에 다시 돌아와 생활하고 있는 '30대 갱' 그룹이나, 그토록 원했던 저널리스트로서 커리어를 더 발전시키지 못해 면접을 전전하며 여기저기 짐을 싸갖고 옮겨 다녀야 하는 로리의 처지가 그렇다. 프랑스 상속녀와 결혼을 앞둔 로건과 부적절한 연인 관계를 지속하다 끝내 제대로 된 이별을 맞이하게 되는 장면에선 엉엉 울 뻔도 했다.(피곤해서 그렇게 울지는 못했다.)


무급으로 지역 신문 편집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던 로리에게 가장 빛났던 대학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친구들이 고릴라 탈을 쓰고 깜짝 나타났을 때(길모어걸스 시리즈의 팬이라면 누구나 소름이 돋았을 '인 옴니아 패러터스'!) 경쾌한 뮤지컬 연출 방식의 그 시퀀스가 나는 제일 슬펐다. 로리와 로건에겐 현실을 거스를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곁에 있어 좋고 서로가 잘 맞는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이미 인연을 돌이킬 수 있는 기회는 젊음 저 너머로 사라졌고 상황을 바꾸는 것보다 헤어짐을 택하는 게 편하다는 걸 알아버린 어른들의 모습이었다. 로리의 해피엔딩을 원하면서도, 그들의 마음이 이상하게 이해되기에 더 슬펐다.


기자로서 자신이 자질이 없다는 걸 끝내 인정하고, 작가로 전업하게 되는 로리의 선택도 내겐 많은 시사점을 줬다. 안정된 직업도, 애인도, 할아버지도 없는 로리는 앞으론 오롯이 혼자 힘으로 뚜벅뚜벅 자기 삶을 개척해가야만 한다.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하고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왔던 엄마도 차츰 나이가 든다. 로리 역할을 연기했던 알렉시스 블레델마저 실망했다는 마지막 네 단어의 대사, 로리의 임신 사실을 끝으로 에피소드가 끝나는데. 이런 결코 낙관할 수 없는 환경에서도 늘 그랬듯 웃음을 찾고 의미를 발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실망스럽고, 누군가에게는 속상한 결말이지만 나에겐 일말의 위안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로리가 수 년에 걸쳐 보여왔던 선한 노력과 사랑을 찾으려 했던 무수한 시도와 꿈을 좇아왔던 시간들.. 그런 것들이 무조건 모두의 머릿속에 전형적으로 박혀 있는 결혼, 이름 있는 직장에서의 탄탄한 커리어 같은 이른바 '행복한 결말'이라는 것으로만 귀결되진 않는다는 걸 길모어 걸스가 보여주고 있다.


로리는 자신의 암담한 상황에 대해 엄마에게 푸념하기도 하고, 친구에게 걱정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결코 주저앉아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며 울고 있지만 않는다. 내 유년기의 영웅, 롤모델에 유일하게 근접했던 로리는 시련을 온 몸으로 견뎌내는 중이다. 한 민족과 국민과 사회 다수의 구성원을 구원해내야 하는 그런 숙제가 아니라, 너무나 찌질한 자기 인생 한 그릇을 챙기는 과제. 그렇다고 삶이 거기서 끝나는 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 원한대로 일이 되지 않더라도 거기서 삶을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겪지 않았어도 될 여러 최악이라 이름할 것들을 갖가지로 겪은 나에게 로리의 이런 결말은 어떻게 보면 탄식을, 어떻게 보면 위로를 준다. 내 고민과 맞닿아 있는 여러 지점들에선(물론 내가 이 시리즈에 대해 느끼는 각별한 감정이 유독 쉽게 이입하려는 걸 돕는 측면도 있겠지만) 결국 내가 바라고 좇아왔던 삶은 이런 곳에서 멈춰설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의 시련과 고통을 삶의 일부로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특히 로건과의 결혼, 이라는 결말에 다다르지 않은 것에 대한 로리의 좌절이 크게 묘사되지 않았다는 점도 어떻게 보면 고무적이다. 로리는 극중에서 한번도 로건에게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적이 없다. 시즌 7의 졸업식에서 반지까지 내밀던 로건을 거절하고 돌아설 수 있었던 건 그와의 결혼이 행복을 담보하고 있지 않다는 걸 뚜렷하게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완전한 독립이라는 숙제가 주어졌지만, 로리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이 숙제를 떠안게 된 것이 아니라 (물론 여러 불운도 겹쳤지만) 기꺼이 삶의 일부로서, 자신이 정말 행복할 수 있기 위해 껴안고 통과해 내야 하는 숙제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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