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5월의 지속가능한 도서]
알베르 카뮈 <페스트>

La Peste


[LET.S SERIES: 이달의 지속가능한 도서]

<이달의 지속가능한 도서>는 매거진 LET.S의 시리즈 콘텐츠로, 매월 LET.S의 슬로우패션팀, 피플팀, 아트팀이 번갈아가며 지속가능성의 의미를 건네는 책을 리뷰합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

20년대에 들어와 다시 인기가 부상한 책 중 하나로 단연 <페스트>를 꼽을 수 있다. 바이러스의 창궐이라는 주제로 오늘날과 연결되는 <페스트>에서, 역병 페스트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역병 코로나로 치환되어 읽힌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에는 시체가 뒷동산에 매장되지는 않는데, <페스트>에 담긴 형국은 역병보다는 전쟁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보건의료적 자원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역병과 전쟁을 벌이는 등장인물을 보고, 독자들은 오늘을 살아갈 현실적인 힘을 얻는다.




<페스트>는 프랑스의 작가 알베르 카뮈가 7년 동안 집필한 그의 대표적인 소설로,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번져 폐쇄된 도시 내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급인 오랑의 의사 리유가 서술자가 되어 페스트의 유행부터 종식까지의 연대기를 서술해 나가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리유는 페스트가 도시에 들러붙은 모습과 함께 그의 친구들(타루, 랑베르, 파늘루, 코타르, 그랑)의 이야기 또한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 이들은 모두 다른 배경, 성격과 사상을 가진 인물들로 페스트가 닥친 상황을 대처하는 방식들이 상이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간들의 군상을 관찰하고, 정을 붙이고, 또 웃고 울게 된다.


<페스트>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유에 대해서는, 작품을 꿰뚫고 계속 등장하는 '반복성'의 이미지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반복’의 소재는 초장부터 인상적으로 등장하는데, 본격적인 연대기 서술에 앞서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도시 오랑이 다음처럼 묘사된다.

어떤 한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의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기후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든 것이 다 함께, 열광적이면서도 무심하게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는 사람들이 권태에 절어 있으며 여러 가지 습관을 붙여 보려고 기를 쓰고 있는 것이다. (민음사, 12p)

오랑의 시민들은 유별날 것 없는 일과 취미로 일상생활의 질서를 세우고, 그 질서는 반복되어 평범한 습관을 만든다. 그러한 습관 속에 권태가 가라앉은, 지독하게 평범한 도시가 바로 리유가 서술하는 오랑의 이미지이자 우리에게 각인되는 반복의 첫 이미지다. 이런 반복의 심상은 작품 내내 등장하여 부정적인 쪽으로, 또는 긍정적인 쪽으로 리유와 친구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인식된다.


먼저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의사 리유와 친구들에게 '반복'은 잔인한 심상으로 작용한다. 페스트의 여러 속성 중에서도, 끊이지 않는 페스트의 반복성은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무력감을 주는 요인이다. 끊임없이 환자의 신고를 받고, 진단을 내리고, 새로운 혈청을 실험하며, 결국 끊임없는 비명 속에서 끊임없는 죽음을 매일같이 지켜봐야 하는 날들의 반복은 그들에게서 생기를 빼앗아 간다. 사람들은 급기야 반복되는 절망에 순응하고 절망은 습관으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끝없는 절망, 끝없는 죽음, 끝없는 패배의 반복은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묘사되면서 희망도 생명도 증발해 가는 지긋함을 보여주고 있다.


반복은 그들에게 끝없는 불행을 안겨 주지만, 그들이 페스트에 대한 투쟁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던 이유 또한 반복의 이미지로 설명된다. 바로 이 점에서 오늘날의 독자들은 현실적인 위안과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예컨대 주인공 리유는 무의미해 보이는 듯한 반복 속에서 페스트에 맞서 자신이 취할 바람직한 태도를 설정한다.

리유는 머리를 흠칫하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이었다. (민음사, 60p)

오랑이 본디 가지고 있던 특성, 반복성에서 발견되는 꾸준함에서 그는 의사로서의 직책을 수행하는 성실성에 대한 확신, 사람이 죽어가면 살려야 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리유의 이러한 태도는 페스트가 절정을 찍을 때 자신이 하는 일이 과연 올바른 방향에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을 품을 정도로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스로가 해온 일이 상황의 완화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가늠하는 불확실한 일보다, 의사로서 누군가 죽어가면 살려야 한다는 단순하고 확실한 명제를 믿으려는 모습을 보이며 그 꾸준함을 잃지 않는다.


반복의 긍정값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리유의 주변인 중 하나인 그랑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아마도 책을 한 권, 아니면 적어도 그와 비슷한 것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중략) 리유와 타루는 그 페스트의 와중에서 그랑이 꾸준히 계속하는 그 작업을 흥미 있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 역시 결국에는 거기에서 일종의 휴식을 얻었다. (민음사, 180p)

시청 서기로 일하는 그랑은 매일 저녁 6-8시에 자신만의 일을 하기 위한 시간을 갖는 인물인데, 바로 어떤 글의 초고를 쓰는 일이었다. 포인트는 그 원고를 쓰는 작업이 날마다 유의미한 진척과 발전을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있는데, 그랑이 매일 고민하는 것은 원고의 첫 문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관한 일이다. 그랑이 페스트에 걸려 죽음에 가까워졌던 작품의 후반부까지도 그는 첫 문장을 구성하는 어휘들을 고치고 빼고 더하는 작업만을 매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무의미하고 비효율적이기까지 해 보이는 작업의 반복에서 리유와 타루는 일종의 안정감을 얻는다. 페스트가 기승을 부리는 속에서도 어떤 일상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 자체로 위로가 되며, 그러한 일상의 소중함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동력이 되기도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런 그랑이 페스트에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페스트에 걸려 죽을 지경까지 가지만 기적적으로 회생한 그는 페스트의 종식을 알리는 첫 케이스로 등장하며 작품의 분위기를 뒤집는 역할을 한다.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의 반복’을 상징하는 그가 끝내 살아남았다는 점은 그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행위의 반복이 무용하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페스트가 안겨주는 끝없는 절망 속에 치료와 봉사, 연대의 행위가 끝없이 무의미해 보일지라도 기실 그렇지 않음을 확정짓는 것이 그랑의 회생이었다. 페스트가 종식되고 도시가 안정되어 가는 마지막 장에서 그랑은 자신의 문장에서 고민하던 어휘들을 전부 없애고, 그 문장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고 후련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반복의 이미지가 가장 강조되었던 둘이 바로 페스트와 그랑의 작업이었으나, 전자는 완전히 마침표가 찍힌 반면 후자는 페스트가 끝난 기점에서 쉼표를 찍고 다시 이어진다. <페스트>는 분명 역병에 대한 인간의 승리보다는 패배의 끝에 가까운 이야기다. 하지만 그 패배에는 분명히 끝이 있었고 그 끝을 만드는 데에는 인간들의 무수한 노력들이 유의미하게 작용했으며, 소중한 일상은 살아남아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점을 그랑의 서사가 입증하고 있다.




22년 5월 2일 월요일, 대한민국도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완화조치가 시행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시행 후 약 2년 1개월만의 일이다. 오랜만에 바깥의 낯선 공기를 어색하고도 자유롭게 들이마시게 된 사람들은 너도나도 봄기운과 함께 기뻐했다. 그런 모습은 역병으로 폐쇄되었던 도시에 다시 기차가 운행되고 사람들이 축제를 벌이는 <페스트>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실외마스크의 해제가 코로나의 완전한 종식을 뜻하진 않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염 추세는 하락을 모르는 듯 치솟을 뿐이었다. 전국적으로 백신을 맞고 마스크를 매일같이 착용해도 줄지 않는 확진자 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의 완화와 강화의 반복, 돌파감염과 신종 변이가 뉴스에 끊임없이 보도되던 일상은 정말로 일상 자체가 되어버렸고 이미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에 들러붙었다. 특히 의료인들이 매일같이 반복하는 작업 속에서 느낄 무력감과 피로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반복하는 모든 것들이 무용해 보이는, 그 회의적인 생각을 이겨낼 힘을 <페스트>가 줄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된 오늘의 5월까지 우리가 버텨올 힘이 있었던 이유 또한 <페스트>에서 찾을 수 있다. 반복되고 지켜지는 일상이 있다는 것 자체로 누군가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고, 무의미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누군가에게는 결심과 확신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죽음을 거부하고 삶을 지향한다는 행위 속에서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애정을 재확인할 수도 있어, 자신이 수행하는 일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수도 있다.


<페스트>는 ‘머지않아 코로나가 종식되고 인간이 승리하는 그날이 올 거야’와 같은 행복한 결과를 보장해 주는 낙관적인 메시지가 아니라, ‘지금의 행동은 무의미하지 않으니 확신을 갖고 행동하자’라는 현재에 충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지속되는 코로나와 그에 대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에 전 국민이 피로감과 지긋함을 느껴도, 그 지긋한 대응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소극적인 긍정이라도 오늘을 싸워가는 누군가에게는 변변한 위로를 줄 수 있다. 그러한 부분에 집중해서 <페스트>를 읽을 때, 오늘의 독자는 1947년의 소설에서 2022년의 희망적인 미래를 볼 수 있다.



<MAGAZINE LET.S>

instagram ▶ @magazine.let.s

뉴스레터 Have a Let.s Day! ▶ https://maily.so/magazinelets

블로그 ▶ magazine LET.S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작가의 이전글 쓰레기 속에 묻혀 있던 삶의 가치를 넘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