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 03 · 물오름달편 · Rea Dal Ot 리달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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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날씨에도 나비가 있다면 그 날갯짓이 공기 속에서 얼어붙을 듯한 날이었다. 길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곳을 여러 번 지나친다. 도착을 재촉하는 마음도 여러 번 지나치고 나서야 그곳에 닿는다. 외할머니가 계시는 곳, 요양원이다.
이야기 들려주는 것을 좋아하시는 외할머니는 그날도 눈을 감고 물건을 더듬어 찾듯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옛날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이 깜빡하여 같이 데려가지 못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깊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상상력으로 켜켜이 쌓인 기억을 다시 꺼내어 엮는 것이 유일한 유희인가 생각했다.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 신기하게도 얼마 전에 읽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있는 이 현실 위에 책 속의 한 장면이 눈처럼 투명하게 씌워진다. [레이어 0. 요양원에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 위에 [레이어 1. 깊은 밤, 할머니의 신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손자]가 올라오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밤과 낮을 빼면 무엇이 남아있을까. 생각해 보니 도시에는 옛날이야기가 없다. 옛날이야기는 어둠을 태워 그 온기로 주변을 따뜻하게 한다. 도시에는 그 어둠이 없는 것 같다. 도시는 밤은 있는데 어둠은 없다.
외할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기 전에 엄마와 나, 외할머니 셋이 함께 딸기밭에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밭에는 이상한 향수가 있어서 그곳에만 가면 엄마한테 칭얼대게 된다. 딸기꽃을 닮은 나비가 외할머니를 따라다녔다. 손바닥을 활짝 핀 나의 손은 나비를 따라다녔다. 그때 갑자기 “떡!”하는 소리가 들려 나비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외할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중간 떡 먹으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외할머니가 떡을 먹으라고 줄 때마다 입이 짧은 나는 웃으면서 왜 그 떡을 다 받아먹지 못하는지 괜히 자책하는 마음이 들었다. 먹지 못한 떡은 자책하는 마음처럼 내 손 위에 쌓이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고 같은 질문도 계속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이건 가지 말라는 말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이어 1]이 나에게 준 선물인가 숙제인가.
왜 그렇게 들렸을까. 그 생각을 하면서 들어보니 외할머니는 가지 말라는 말을 모두 돌려 말하고 있었다. 외할머니의 같은 질문에 엄마는 대답했다가 말을 줄였다가 또는 소리를 높였다가 소리를 꺼버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외할머니를 보고 새삼 놀랐다. 원래 이렇게 듣고 계셨는지 떠올려 보았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똑같이 보고 계셨다. 엄마가 말하지 않아도 말하는 것처럼, 입이 움직일 때는 말하는 단어의 수를 세는 것처럼 듣고 계셨다.
외할머니와 엄마의 대화에서 나와 엄마가 대화하는 모습이 새어 나온다.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장면은 내가 그것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도록 만들었다. 외할머니와 엄마를 보면서 [레이어 2. 엄마와 나의 일상대화]가 씌워졌다. 이번에 내려온 레이어는 그 상황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불편함은 나를 바늘 끝에 세웠다.
외할머니는 당신의 정신을 첫째 아들한테 주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정신을 다른 사람한테 줄 수 있는지 궁금하기보다는 겁이 먼저 났다. 외할머니는 지금 어디에 계신 것일까. 정신을 첫째 아들한테 줘버리면 당신은 어디 계신가요.
나의 양손이 떡으로 가득 찰 때쯤 우리는 자리를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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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만 외할머니의 말을 다르게 들은 것인가, 나는 왜 가지 말라는 이야기로 들렸는지 계속 생각했다. 그때 오랜만에 외할머니를 본 아빠가 뒤에서 운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엄마가 나에게 전했다. 외할머니의 귀가 강에 잠기고 눈이 구름에 가리는 동안, 아빠도 무심했던 시간을 탓하며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물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혹시나 어른들끼리 공유되고 있는 암묵적인 속마음의 경계를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괜한 것을 묻는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자란 사람은 그 ‘괜한’ 것이 내는 전주 소리를 알아듣는다.
운전하며 옆을 빠르게 스치는 나무들이 보인다. 외할머니의 시간은 이 나무들보다 더 빠르게 스쳐 갈까. 아니면 시간이 외할머니를 깜빡한 순간부터 외할머니도 시간을 놓아주기로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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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당사자들을 굳이 강자와 약자로 나누자면 에둘러 말하는 사람이 약자이다. 위에 앉아 있는 자가 돌려 말하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나는 바늘 끝에 세워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와의 대화에서 약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약자라기보다 직선으로 잇는 대화가 아니라 곡선을 지닌 대화일 것이다. 직선으로 이어진 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정돈되어 보이지만 무언가를 담을 공간이 없다. 하지만 구불구불한 대화는 그 곡이 진 곳에 생각보다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엄마와 약속 시간을 정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엄마가 그 시간을 착각하여 먼저 도착한 내가 집에서 기다렸던 날이었다.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레이어 3.]의 제목이 지어질 것이다. 약속 시간을 왜 잊었는지, 이 말을 어떻게 에둘러 말한다는 말인가. 생각하고 고치고 다시 지웠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니 '약속 시간 잊은 게 뭐 그리 큰 일이라고'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 생각 저 생각 사이로 집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 옆에서 봤던 붕어빵이 떠오른다. 마침 찬 바람의 환기도 필요하여 붕어빵을 사놓고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나를 제때 맞추어 세상의 빛을 보여주었다. 그 한 번의 때를 맞춘 것으로 엄마는 나에게 지킬 약속을 다 지킨 셈이라고-엄마한테 이야기하지는 못하고-붕어빵에다 대고 혼자 말했다.
약속보다 1시간 늦은 것으로 화를 냈더라면 그 순간의 기억이 엄마에게는 1개월, 1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엄마 마음에 남을지도 모른다. 딸기밭에서 칭얼대는 아이가 그 시간의 길이를 어떻게 헤아리겠나.
예전에 상대방의 말을 듣고 3초 후에 말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족들한테는 그것이 어려웠다. 그날 엄마에게 곡선으로 말하려 보니 모든 말을 시작하기 전에 멈추어야 했고, 자연스럽게 3초의 기다림을 만날 수 있었다. 항상 나는 강자의 언어로 이야기해 왔을까. 엄마의 손길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것도 못 했을 때가 있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화법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가짜 강자는 뒤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어렸을 때는 자신의 모든 의사를 표현해야 의미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말하지 못한 만큼 내가 부족해 보였다. 커가면서 다행스럽게 직설적인 것과 솔직한 것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더 하면서 조용한 사람과 소극적인 사람을 구별하게 되었다. 지금은 목소리가 큰 사람도 소극적일 수 있고, 모든 의사 표시를 소리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 속에서만 정리된 것들은 먼지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이 행동으로 나올 때는 가라앉아 있어서 몰랐던 먼지들이 같이 일어난다. 처음에 약자의 언어로 곡선을 그리는 대화를 시작했을 때 그렇게 먼지가 났다. 먼지가 날아가면 나의 생각을 입은 행동이 남아있다.
내가 아주 차갑고, 아주 뜨겁게 이야기할 때 상대방은 행복했을까. 이제는 조금 미지근해져 보면 어떨까. 뜨거운 붕어빵은 맛있게 먹을 수 없다. 입천장을 데이며 삼키는 열기보다, 적당히 식어 온기를 고르게 전해줄 수 있는 미지근함이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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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고 나면 일상 위에 다른 렌즈 하나가 얹힌다. 오에 겐자부로의 책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에서 만난 할머니와 손자, <새로운 문학을 위하여>에서 읽은 상상력의 역할이 없었더라면 다른 일상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요양원에서 외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다른 렌즈를 씌워서 볼 수 있었을까.
내가 마주한 일상 위에 소설 속에서 본 장면을 겹쳐본다. 나와 상대방이 소설 속 인물들과 교차하는 시간은 나를 멈추게 만든다. 핸드폰 업데이트할 때 기능을 쓸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잠깐 멈춘 시간 동안 나는 객체화되어, 내가 어떤 행동과 말을 할지 한 번 더 다듬고, 상대방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레이어 4.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