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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희 Oct 22. 2020

10. 나만 미워해

미쎄스 슈왈츠만

미국에서 어느덧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친구들과도 잘 지냈고 수업 시간에도 열심히 참여했지만 담임선생님에게는 좀처럼 정이 들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이름부터 어려웠다. 미쎄스 슈왈츠만. Sch로 시작하는 독일식 성을 가진 선생님의 이름은 쓰고 읽는 것부터 생소했다. 이름에서부터 느껴지는 포스와 같이 선생님은 생김새도 무섭게 생겼었다. 흰머리 쇼트커트에 크고 움푹 파인 눈을 가지신 선생님은 한번 정색을 하며 눈으로 레이저를 쏘실 때면 모든 아이들은 기가 죽었다. 특별히 혼날 짓을 하지 않아 누군가에게 혼난 적이 거의 없는 아이는 유독 슈왈츠만 선생님과는 부딪히게 된다.

점심시간 이후 테니스 수업이 있던 날이었다. 미리 연습을 해보고 싶었던 아이는 점심을 먹으며 친구들과 둘러앉은 자리에서 하나의 제의를 한다. 점심 쉬는 시간 동안 교실에서 테니스 채를 가지고 나가서 자세 연습도 하고 미리 줄을 서 있자고. 아이는 잠시 후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꿈에도 모른 채 연습도 하고 미리 줄도 서있으면 선생님도 좋아하시겠거니 생각하며 대여섯 명의 친구들을 선동하여 놀이터 대신 불이 꺼진 교실로 향한다.

불 꺼진 교실 앞에서 몇몇 친구들은 망설이기 시작한다. '불이 꺼져있으니 들어가면 안 되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이 피어났던 것. 이미 행동대장을 맡은 아이는 우리 교실인데 어떠냐며 자신이 들어가서 테니스 채를 가져오겠다고 나선다. 그렇게 테니스 채를 가지고 다시 불 꺼진 교실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들려오는 등골이 오싹한 슈왈츠만 선생님의 고함소리. 'What are you doing!(지금 뭐 하는 게야!)'

친구들은 이미 혼비백산 도망을 쳤고 범죄 현장을 검거한 것처럼 선생님은 크고 무서운 눈으로 아이를 심문했다. 불이 꺼져있는 교실에는 왜 들어갔는지. 쉬는 시간에는 놀이터에 있어야 하는 건데 왜 교실로 왔는지. 왜 친구들까지 끌고 왔는지. 좋은 의도에서 벌인 일이었지만 선생님은 아이를 용서하지 않았고 오후 쉬는 시간 놀이터 금지령을 내리셨다. 선생님과 함께 있는 시간 외에는 교실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말만 남긴 채.

아이는 솔직히 억울했다. 이유를 설명해도 소용이 없었고 하려던 테니스 예습도 못하고 괜히 도둑 취급을 받는 찝찝한 느낌이었다. 현장에 아이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혼자 옴팡 친구들 몫까지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날 오후는 그렇게 교실 앞 벤치에 앉아 친구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만 구경하다가 풀이 죽은 채 하교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벤치로 돌아오게 된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등교 시간, 교실 앞에 줄을 서있을 때였다. 아이의 앞에는 멕시칸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평소 친구들에게 장난기가 심하기로 이미 유명한 친구라 짧은 인사 후 조용히 있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먹잇감을 포착한 멕시칸 말괄량이는 아이의 심기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오늘 옷이 어떻네. 신발이 어떻네. 머리는 왜 그렇게 묶었니 하더니 건드리지 말아야 할 걸 건드렸다. '얼굴이 참 크고 둥그네.' 하면서 혼자 웃는 것이다. 얼굴 사이즈는 유전적인 거라 아이에겐 약간의 콤플렉스가 있는 부분이다. 어디까지 하나 보자 하고 참고 듣고 있던 아이는 눈을 흘기며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You're Mean.(너는 못돼 처먹었어.)'

아이는 그렇게 그날 두 번째 놀이터 금지령을 받았다. 'Mean'이라는 초등학생에게는 수위가 센 욕을 듣는 순간 그 말괄량이는 '선생님, 얘가 저보고 못됐데요!'라며 도리어 적반하장으로 일러바치기 시작했다. 자초지종은 듣지도 않은 채 선생님의 현장 심문은 다시 시작됐다. 정말 그 단어를 썼냐며. 그 단어를 쓰는 건 나쁜 거라며. 너는 오늘 뤼쎄쓰(recess) 없다며. ' 예쓰, 미쎄스 쓔왈쯔만.'

이번에도 억울했지만 속은 후련했던 아이는 겸허히 놀이터 금지령을 받아들였다. 다만 한동안은 그 멕시칸 말괄량이를 상대도 안 해줬다. 이미 두 번이나 선생님한테 찍힌 상황에서 더 이상의 나 홀로 벤치 생활은 없어야 하니까. 나중에 엄마가 학부모 상담을 다녀온 후 알려준 얘기지만 선생님도 아이를 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자존감이 있고, 조용히 사색하며 공부도 곧 잘하고, 나이에 비해 성숙한 면이 있어서 다른 친구들에게 모범이 되어 보이는 아이였기에 더 엄중한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30살이 된 아이는 사실 나만 미워하는 것 같았던 미쎄스 슈왈츠만의 안부가 궁금하다. 미운 정도 정이랄까. 20대 초반에 기회가 되어 미국의 초등학교를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은퇴를 하셨다는 소식만 들었다. 억울한 추억을 많이 남겨주신 선생님이지만 선생님 나름의 고충이 있으셨을 거라 생각하며... 사고뭉치 초등학생들에서 벗어나 행복한 노후를 즐기고 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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