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나는 여름부터 취업전선에 뛰어 들었다. 하루는 늘 취업사이트 확인으로 끝났다. 서류전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아깝게 예비 합격자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낙방의 경험이 거듭될수록 마음의 상처도 커졌다.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 하는 구직자의 입장에서, 낙방의 원인은 나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부족할까. 나는 무엇을 더 채우고 준비해야 할까. 나의 경력단절이 문제일까. 내 나이가 너무 많나.
하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낙방의 상처가 아니었다. 원서를 낼 곳이 없다는 거였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눈높이를 낮춰야 하나’ 생각했지만, 문제는 눈높이가 아니었다.
월급이 많은 곳에 지원할 땐 ‘생활비에 학비까지 충당하려면 이 정도는 필요하지’라는 이유를 댔고, 월급이 적은 곳에 지원할 땐 ‘경력 단절도 있고, 저녁엔 학교 문제로 야근이 불가하니 이 정도도 괜찮지 뭐’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남편은 “아직 실망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선택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느 날 친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에서 구인공고가 올라왔어요. 언니가 내보면 괜찮을 것 같아요.”
내키지 않았다. 또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다. 잠시 쉼이 필요하다고 내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보내버릴 수 없는 기회였다. 이력서를 내볼 수 있는 곳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력서를 냈고, 나는 오늘 그곳에 면접을 봤다. ‘왠지 안 될 것 같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나의 발길을 마구 잡아끌었지만 ‘면접 경험이라도 한 번 더 쌓자’는 생각에 그곳으로 향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내게 일어날 엄청난 일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좌절감에 빠져있던 나는 긴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묻는 말에 나의 생각만 잘 말하고 오자’는 생각이었다.
면접은 지원자 3명이 함께 그룹인터뷰로 진행됐다. 첫 질문은 자기소개와 지원동기였다. 첫 번째 지원자의 대답이 끝난 뒤 나는 입을 떼기 시작했다. 자기소개까지는 별문제 없었다. 헌데 지원동기를 말하며… 아뿔싸.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미쳤나. 정신 차려. 주책맞게 왜 이래.’ 헌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 죄송해요. 제가 요즘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경력단절이…”
‘무슨 말을 해대는 거야!!!’ 나도 여배우처럼 예쁘게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나, 나는 어느 샌가 꺼억~ 꺼억~ 거리고 있었다. (젠장) 이미 아이라인은 번졌고, 립스틱은 다 빨아먹었다.
모두가 당황했지만 내가 제일 당황했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건지. 심사위원들은 “요즘 취업난이 심해서 이런 경우 종종 있다”며 나를 위로하였지만, 주책맞게도 나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함께 면접을 보는 지원자가 “힘내라”며 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깽판도 이런 깽판이 없었다. “왜 하필 이곳에 지원했냐”는 질문엔 “일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며 너무나 명확하지만 단순한 이유를 댔다. ‘어차피 망한 거 그냥 있는 그대로 하자’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두 지원자는 열심히 자신들을 어필했다. 나는 너무 울어서인지 머리가 멍했다. 조금 진정되는 가싶다가도 혼자 울컥하고, 울컥하다가도 질문을 하면 대답은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지.
면접은 1시간 20분 만에 끝이 났다. 함께 면접을 봤던 지원자들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너무 창피했다. 남편과 친한 동생은 “마음 편하게 하고 오라고 했지 누가 깽판치고 오라고 했냐”며 “진상 중에 개진상”이라고 비웃었다. 그 비웃음이 위로가 됐다.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더 부끄러워진다. 나는 충분히 쥐구멍을 찾아 지구를 떠나고 싶은 심정이었다.
헌데 한 가지 참으로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죽도록 쪽팔리는데, 마음은 가볍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홀가분했다. 남편에게도, 친구에게도 하나하나 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내가 처한 환경을 다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구직활동이 짧을 뿐이지 나는 이미 2년째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왔으며, 기대하고 좌절해왔다. 요 근래 다른 일들과 함께 구직 스트레스까지 겹치며 힘들었던 마음이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면접 중에 터진 것이다.
한번쯤 그 마음을 털어낼 기회가 필요했던 것 같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터진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지금도 창피하다. 정말... ‘개쪽팔린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마음이 가볍다. 다시 구직활동에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 같다.
오늘 나로 인해 당황했을 면접관들과, 면접에 방해를 받았을 지원자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여전히 나는 창피하고,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날리고 있지만, 오늘 나의 진상짓을 들은 친한 동생의 “우리 언니가 돌아왔다”는 말처럼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허나, 진상짓은 이걸로 끝내자.
남편은 힘을 내라면서 저 유명한 백석의 시를 읽어줬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 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승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문장> 1941년 4월호, <백석평전>(다산책방, 2014)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