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고 안에 눈 넣어두기
며칠 전 초겨울 눈이라고 하기엔
조금 많은 양의 눈이 왔다.
말대로 "펑펑"오는 눈을 보며
아침부터 한숨이 나오고말았다.
'아.. 춥겠다. 날 씨때문에 지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눈들이 얼으면 길이 미끄럽겠지.'
고난의 출근길을 지나
(결국.. 지각하고 말았다) 복지실에 도착.
커피포트에 물을 담고 펄펄끓지 않을 정도로만 물을 끓여 마셨다. "아 따뜻해." 그제야 조금은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아이들이 복지실을 가장 많이 찾는 시간은
점심시간이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복지실에 들어와서 보드게임을 하거나 상담을 하거나 색칠공부를 하거나 미로찾기를 하거나 나에게 와서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날은 복지실이 싸아 했다.
겨우 대여섯명이 들락날락했다.
알고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밥을 먹자마자 겉옷을 챙겨입고
신발을 갈아신고
눈을 만지러 죄다 밖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아이들을 보니
코와 볼이 새빨간 놈들이 대부분이었고
겉옷과 모자에는 아직 눈싸움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미처 장갑을 챙기지 못한 몇몇 아이들의 손은 얼음장같았다. 아이의 손을 잡아주며 물었다.
"애들아 손 안시려?"
"차가워요. 그래도... 헤헤헤"
아이들의 표정만큼은 최고로 신나보였다.
복지실에 자주 오는 한 여자아이가
나에게 나뭇잎에 고이 싸여진 무언가를 건냈다.
"선생님 부탁드릴게 있는데요.
이거 제가 집에 갈때까지만 여기서 보관해주시면 안돼요? 여기 복지실 냉장고 냉동실에 넣어두면 될것 같은데... 꼭 가져갈게요!"
나무잎을 살짝 치워보니 동글동글하고 작은 눈덩어리 몇 개가 보였다.
'눈을 얼려놨다가 집에 가져가겠다고? 왜..?'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이상하기도하고 웃음이 나왔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곧이어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언니~ 이것 봐봐! 앗차차거~"
20대 초반인 동생이 자기 주먹반한 눈덩이를 둥그렇게 만들어서 들어온 것이다.
질색하는 나에게 와서 눈을 만져보라고 하기도하고 아빠에게는 눈을 피부에 일부러 닿게 하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이고 우리집에 아직도 애기가 있구나"
아빠는 동생을 보며 웃으셨다.
나의 출근길을 방해하는 눈.
옷을 많이 입어 둔한 움직임에 불편함을 주는 겨울을 알리는 눈.
추운 겨울을 더 춥게 만드는 눈.
밖에 나가면 널린 눈.
금방 녹아버릴 눈.
아무 쓸데없는 눈.
나에게 눈은 어느새 이런 의미가 되어버렸는데
아이들에게 그리고 내 동생에게
눈은
그저 만지고 싶고
보면 웃음이 나고
추워도 재미가 있고
언제까지고 오래오래 보관하고싶은 것이었다.
괜히 푸욱 늙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보다도 마음이.
눈 밖의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이.
갑자기 생각이 나 우리집 냉동고를 열어 그안에 고이 모셔져있는 눈을 봤다.
'아직... 거기 있구나. 오래오래 녹지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