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를 믿지 않은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특별한 이벤트도 없었고 산타가 주는 선물 또한 없었던 유년시절이었다. 기념일을 챙기는 남편을 만나 무교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를 챙기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이들을 위한 날일 뿐이었다. 산타는 아이들의 꿈과 환상이니까.
올해의 마지막 주에는 친정에 방문하기로 했었다. 망년회라는 타이틀을 걸고 올해가 가기 전 부모님을 뵙기 위함이었다. 연말이라 바쁘신 부모님은 매주 모임이 있으셨다. 마지막 주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저녁 늦게라도 손녀들을 볼 생각에 꽤나 반가워하셨다.
친정 방문 6일 전, 일요일 아침 8시 전화벨이 울렸다. 새벽 1시에 자서 10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야 하지만 이른 아침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평소 이른 시간에 먼저 전화하시는 법이 없으셨기에 이 전화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는 것을 벨소리만으로 감지했던 것이다.
"한 시간 뒤면 도착해"
항상 일정을 물으시거나 딸의 집에 먼저 오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약속도 없이 갑작스러운 방문이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웠다. 차가 막히는 연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못된 안도감과 한 주 빨리 부모님을 뵐 수 있다는 묘한 감정이 섞였다.
부지런히 집을 정리하고 남편과 아침 메뉴를 고민했다. 요즘 들어 요리에 진심인 남편이 불고기를 하겠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여는 정육점을 알아보고 나갈 준비를 할 때 부모님이 일층에 도착하셨다. 짐이 있으실 듯하여 남편과 마중을 나갔다.
"메리크리스마스"
빨간 잠바를 통통하게 감싼 엄마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넸다.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라니. 불교인 듯 하지만 무교에 가까운 친정에서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이나 다름없는데. 엄마가 건넨 밝은 인사가, 산타처럼 넉넉하게 빨간 잠바를 입고 웃으며 걸어오는 모습에 배속에서부터 큰 웃음이 절로 나왔다.
뒤에 오는 아빠는 박스 한가득 아이들의 간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족히 십만 원은 넘을 것 같은 아이들을 위한 과자와 음료수가 넘치도록 담겨있었다. 선물이 벌써 한가득이다.
돼지고기를 선호하지만 소고기만 드셔야 하는 장인어른을 생각해서 불고기용 소고기를 넉넉히 사 왔다. 사위의 손은 바빴다.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재료인 소고기에 양념을 하여 고기를 볶는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맛이 없으면 어떡할지,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장인장모님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했다.
맛은 뭐. 역시나였다. 손 맛 좀 있는 남편의 불고기는 불에 구운 향과 함께 단짠의 조화를 이루었다. 사위가 해 준 음식이라 그런지 아빠는 젓가락질을 멈추지 않고 식사를 하셨다. 크리스마스 날은 아니지만 식구들이 한 곳에 모여 따뜻한 밥 한 상을 먹을 수 있음이 감사한 자리였다.
식사 후 다 함께 쇼핑몰로 이동했다. 추운 날씨였고 어디로 놀러 가기에는 시간이 촉박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막내의 귀를 뚫기 위해 액세서리 샵을 찾았다. 9살 언니가 5월에 귀를 뚫었던 곳에서 7살 막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긴장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먼발치에서 아빠가 핸드폰으로 담고 계셨다.
엄마가 귀를 뚫는다고 할 때는 망치 가지고 오라며 직접 뚫어주겠다고 하시던 고지식한 아빠였는데. 손녀가 귀를 뚫는 걸 응원해 주고 동영상으로 담고 있는 모습이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관심 아래 눈을 질끈 감은 사이 양쪽에 보석을 박아 귀를 뚫었다.
덩달아 큰 아이와 나도 새로운 귀걸이를 아빠에게 선물로 받았다. 그동안 해오던 귀걸이가 식상하던 찰나였는데 아빠 덕분에 기분 전환이 되었다.
옷가게가 있는 매장에 갔던 건 남편이 이끌어서였다. 장모님에게 어울릴 것 같다며 옷을 골라주더니 장인어른에게도 외투를 선물해 주었다. 눈썰미가 좋은 남편이라 아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찰떡같이 골라왔다. 두 분 다 한 편으로는 미안해하면서 좋아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후에 일정이 있으셔서 만난 지 다섯 시간 만에 부모님은 집으로 돌아가셨다. 짧지만 강렬했던 부모님의 게릴라 방문.
눈을 뜨기 전 마주한 갑작스러운 만남이었고 눈코 뜰 새 없이 밥을 차렸다. 생에 한 번뿐인 손녀의 귀를 뚫는 순간을 함께하고, 부모님의 옷을 골라드렸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 않아도 꿀처럼 진하게 달콤한 시간이었다. 마치 산타를 만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