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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Dec 25. 2021

0) 그리고 끝이 나지 않을 나의 이야기 -이해인

born in 1992.10.13


이 글을 시작하며, 두 번의 리마인드 연락을 받았다.

사실 첫 번째 리마인드 때에 글의 대부분을 완성하였으나, 처음의 호기로움은 어디로 내빼었는지, 글이 읽어보면 볼수록 부족한 것 투성이에 부끄럽고 재미없기만 한 내용들 뿐인 것 같아 용기가 까무룩 사그라들었다.


그렇게 글을 덮어놓은 지 보름이 흘렀다.


김장김치가 알맞게 익은 신김치가 되듯이, 2주 동안 묵혀놓는다고 해서 나의 초고가 저절로 완숙한 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마감일에 다시 펴놓고 읽은 나의 글은 처음 그대로 우습고 유치했다.


그렇지만 이 설익은 글이 내 서른의 모습 이리라.

우습고 유치해도, 손발이 오글거려도, 표현할 수 있는 나의 단어와 문장에 한계가 보여도, 이 모든 게 그동안 사는 게 닭가슴살만치 팍팍하다는 이유로 마음의 양식을 쌓아오지 않은 과거 해인의 나태한 모습의 발현 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다시 근원 없는 자신감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아직 채 익지도 않은 이 글이 그래서 풋풋해 보이기까지 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우리의 운명은, 결국 정해져 있는 거라고. 고대 잉카문명에서 별을 읽듯이, 현대 철학관에서 사주 명리학을 공부하듯이 우린 운명대로 살다 가게 되는 거라고.


다른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인생이란, 결국 초콜릿 박스라고. 미래는 예측불허, 오늘 집게 되는 초콜릿이 씁쓸한 리큐르 초콜릿 일지, 달콤한 프랄린 초콜릿 일지는 먹어 봐야 알게 되는 거라고.


카페에서 라테를 마실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또 따뜻한 라테를 마실지 아이스 라테를 마실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평행우주론이 떠올랐다.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모여 전혀 다른 결과를 낳게 된다면, 이 광활한 우주에는 몇 명의 내가 살고 있을까, 우주 어딘가에 있을 수많은 <나> 중에 지금의 내가 가장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일까, 문득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요즘 들어 부쩍 그때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을 마주한다. 화성으로 가고 싶어 하는 우주선은 0.00000001도의 오차로 화성이 아닌 목성으로 보내진다. 지금의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 걸까, 조금의 잘못된 선택이 전혀 다른 종착점으로 나를 내려다 놓으면 어떻게 될까.


버스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서 화들짝 내렸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나의 삶에 재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한다. 그런 간절한 기도는 내 앞에 놓아진 수많은 선택지들을 두고 밤을 새워 고민하게 만든다.



어떤 것은 정해져 있을 테지만, 어떤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나의 삶 속에서 나는,


때로는 흑자와 미슐랭의 예기치 못한 씁쓸함으로 울적하겠지만, 대부분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을 살아가며, <Happily Ever After>이라는 이 소설의 결말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보기로 다짐한 것,


그뿐이다. 나의 서른은.




30±1살,

[0) 그리고 끝이 나지 않을 나의 이야기]

written by LEE HAEIN

@__ulmaire

이해인, born in 199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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