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나 사이의 경계선
이 글은 필자와 ChatGPT가 나눈 대화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초안과 재서술 과정에서 AI 도움을 받았으며, 최종 선택과 교정의 책임은 필자에게 있습니다.
2025년 5월, 나는 챗GPT의 도움으로 완성한 에세이 한 편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심사 메일을 열어 보니 '승인'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꽂혔다.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제 발행만 누르면 새 작가 프로필 아래 첫 글이 세상에 공개된다. 그런데 '작성자: 리비' 뒤에 '(챗GPT‑4o 도움)'이라는 괄호를 달아 둘지 말지, 커서가 괄호 앞에서 덜덜 떨렸다. 괄호를 넣으면 솔직해지는 대신 독자가 흥미를 잃을까 걱정됐고, 지우자니 스스로를 속이는 기분이었다. 화면 속 빈칸과 현실의 숨이 얽혀 잠시 시간도 멈춘 듯했다.
이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인스타그램을 스크롤하던 중, 평소 즐겨 읽던 에디터님의 피드에서 '챗GPT 시대의 고민 상담' 에세이 공모 포스터가 번쩍 눈에 들어왔다. 포스터에는 "내 고민을 챗GPT에게 털어놓았던 경험, 그 대화가 내 생각이나 감정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를 솔직하게 담은 글이라면 누구든 지원 가능"이라는 공지가 굵은 글씨로 박혀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챗GPT에게 털어놓은 고민들을 엮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켰다.
그대로 "지난 일 년 동안 너에게 털어놓은 고민을 에세이로 묶어 줄래?"라고 물었고, 다섯 분도 채 안 돼 초안이 천오백 자를 넘겨 화면을 가득 채웠다. 흐름은 거칠었고 어조도 낯설었지만, 시도가 가능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나는 붉은 펜으로 어색한 비유를 지우고 파란 펜으로 내 추억과 냄새,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덧칠하며 글을 다듬었다. 밤을 꼬박 새워 세 번째 버전을 만든 뒤 친한 친구 넷에게 보냈다.
"네 목소리 그대로인데, 훨씬 매끄러워."
"읽다가 울컥했어."
화면 너머에서 돌아온 칭찬은 달콤했지만, 동시에 죄책감이 스며들었다. '챗GPT 없이 이런 표현을 내가 혼자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조용히 양심을 눌렀다. 좋은 글을 쓰고 주변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칭찬을 듣자, 억눌려 있던 창작열이 순식간에 솟구쳤다. 노트 앱에 제목과 간단한 내용만 적어 둔 아이디어 초안들을 챗GPT 창에 마구 던져 넣었다. 웹소설 공모전, 단편소설상, 브런치의 다른 테마 공모까지 목록을 정리하며 "어디에 지원해 볼까?"를 골똘히 궁리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다른 작가들도 AI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쓸까? 쓴다면 작품 정보에 어떻게 표기할까?
검색창에 'AI 소설' '공동저자' 등을 입력하자 놀라운 사례들이 쏟아졌다. 일본의 리에 쿠단은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도코로 도조토>에서 약 5퍼센트를 AI가 썼다고 공개했고, 미국 작가 스티븐 마르체는 95퍼센트가 AI가 작성한 <작가의 죽음>을 발표해 'AI 소설'의 가능성을 극단까지 밀어붙였다. 이 밖에도 여러 나라의 젊은 작가들이 'AI‑built' 배지를 달고 새로운 서사를 실험 중이라는 기사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웹서핑은 더 큰 토론으로 이어졌다. 문학평론가 노대원은 신간 『소설 쓰는 로봇』에서 거대언어모델이 전통적 글쓰기 패러다임을 뒤흔들고 있다고 분석했고, 지난 3월에는 4백여 명의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이 AI 저작권 규제 완화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반면 SF 작가 테드 창은 "챗GPT는 웹에 떠도는 흐릿한 'JPG'(저해상도 이미지)"라며 예술적 깊이를 의심했다. 누군가는 AI를 두려움으로 규정했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붓이라 말했다.
논쟁이 뜨거울수록 궁금증이 커졌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나라 저작권 상식은 어디쯤에 있을까?'
국내 가이드를 뒤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배포한 <대학생이 반드시 지켜야 할 저작권 상식> PDF를 발견했고, 바로 출력해 책상 위에 펼쳐 두었다. 첫 장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발생하며 별도 등록이 필요 없다."
내가 질문을 던지고 챗GPT가 문장을 토해 내는 순간에도 법적으로는 '무언가'가 창작된다. 그러나 다음 페이지에는 이렇게 이어진다.
"저작인격권은 오직 사람에게만 귀속된다."
선택하고 배열하고 책임을 지는 주체가 곧 저자라는 뜻이다. 인공지능은 아직 이름을 달 권리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오히려 챗GPT의 도움을 숨기는 쪽이 독자를 속이는 일 아닐까? 나 혼자 쓴 척하며 빛나는 표현을 품은 글을 내놓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정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솔직함이 두려움보다 쉬운 법은 없다. "괄호 하나 넣었다고 독자들이 차갑게 돌아서면 어쩌지?" "문학상 심사위원이 '순수하지 않다'며 탈락시키면?" 사소한 가정이 머릿속에서 눈덩이처럼 굴러갔다. 그때 자료집 뒷부분에서 눈길을 끈 문장을 다시 읽었다.
"표기는 의무가 아니라 신뢰의 선택이다."
논문을 제출할 때 참고 문헌을 정확히 밝히면 표절 검사에서 자유로워지듯, 창작의 결을 숨기지 않는 편이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든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종이 위에 네모를 네 칸 그렸다. 질문 작성자, 사용 모델, 최종 편집자, 활용 범위—네 칸을 또박또박 채워 넣자 마음이 이상하게도 가벼워졌다. 괄호 한 줄보다 솔직하고 각주보다 간결했다. 누가 봐도 "이 글은 사람과 인공지능이 함께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동시에 "마지막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는 메시지도 분명했다. 제도적 의무는 아직 없지만, 논의의 불씨를 먼저 지피고 싶었다.
정오의 햇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었다. 밤새 분홍빛이던 모니터 화면은 푸른 낯빛으로 바뀌었지만, 화면 오른쪽 위의 발행 버튼은 여전히 회색이었다. 괄호를 단 작성자 표시는 커서가 지나갈 때마다 깜박이며 나를 재촉했지만, 손끝은 끝내 클릭하지 못했다.
"솔직함일까, 과장된 부담일까."
괄호를 없애면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가도, 숨기는 순간 글까지 작아질 것 같은 두려움이 스쳤다. 반대로 괄호를 남기면 투명해지겠지만, 독자들이 먼저 숫자부터 셈할까 봐 겁이 났다. 나는 문서를 '임시 저장'으로 닫고 의자를 뒤로 밀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구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아직도 고민 중. 내일 다시 읽고 결정할 것."
학교 도서관에서, 편집실에서, 새벽의 자취방에서, 무수한 글쟁이들이 같은 물음표로 밤을 새울 것이다.
'내가 쓰지 않은 문장을 내 글이라 불러도 될까.'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다만 이렇게 정리해 본다. 글의 첫 불씨가 내 마음속 고민에서 피어올랐고, 마지막 재를 털어 낼 책임 또한 나에게 있다면―괄호를 달든 지우든, 그 선택 자체가 곧 내 문장이라는 것.
늦은 밤,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괄호 넣을지 말지 아직 못 정했구나?" 웃음 이모티콘과 함께 '결국 네 글이잖아'라는 한 줄이 따라왔다. 그 말을 읽으며 생각했다. 인공지능은 오늘도 내 옆에서 문장을 속삭이겠지만, 마지막 서명은 사람이 남긴다. 괄호를 넣을지 지울지는 내일 아침 다시 결정하더라도, 선택과 책임은 끝까지 내 몫이라는 사실만큼은 이미 분명해졌다.
언젠가는 인공지능 공동저자 표기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을 날이 올지도 모른다. 활판 인쇄부터 워드프로세서까지, 인공지능도 결국 글쓰기를 확장하는 하나의 도구가 될 것이다. 그때가 오면 괄호는 사라질지라도, 오늘의 망설임은 기록으로 남아 내일의 나를 증명해 줄 것이다. 그렇게 괄호 안팎을 오가며,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