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의서점 Mar 15. 2017

연필 깎기를 멈추지 않는 밤

-<입 속의 검은 잎> 낭독회 후기

 “배정된 시 가운데 두세 편은 완독해주시고 나머지는 각자의 방식으로 소개해주세요. ‘안개’로 시작해서 ‘밤눈’까지 61편 전편을 다룹니다.” 우리가 정한 낭독회 규칙은 그것뿐이었다. 

 토요일 오전, 우리는 봄이 오기 전 숙제를 마치는 마음으로 <입 속의 검은 잎>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 속의 검은 잎>을 사랑하는 사람도, 기형도 시인을 더 알고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모두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시절을 함께한 기형도의 시는 지금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8명이 둘러앉아 한 편씩 낭독을 이어갔다. 한 사람이 시를 읽으면 그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느낀 바를 말하거나 조용히 다음 시로 넘어갔다. 혼자 읽을 때 다가오지 않던 시들이 타인의 목소리로 낭독되는 순간 이상한 여운을 남겼다.

 ‘봄날은 간다’를 낭독한 청일점 동네 손님은, 실은 전날 밤 술자리에서 이 시를 낭독해보았노라고, 그때와 지금 같은 시가 다르게 다가온다고 했다. 조용히 혼자 읽을 때와 소리 내어 읽을 때, 다른 이의 낭독을 들을 때, 그리고 그 시를 읽는 장소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누군지에 따라 시는 달리 읽히는구나,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주고받았다. 

 조용히 징검다리를 건너듯 돌아가며 시를 읽던 중 한 분이 행사를 기획한 폭풍의점장에게 물었다. “제가 힘든 시기라는 걸 알고 이 시들을 배정해주신 건가요?” 짧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가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나쁘게 말하다’ 중)를 읽다가 짧은 울음을 삼켰을 때, 일순 같은 마음이었던 걸 기억한다. 그이의 감정이 시어를 타고 우리에게 실려왔으므로. 사위가 어둡다는 것이 참으로 위안이 될 때가 있다. 

 표제작인 ‘입 속의 검은 잎’을 읽은 후 우리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던 시인의 자괴감을 잠시 떠올린다. 기형도에게 ‘나무’와 ‘잎’은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무거움과 두려움을 의미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질투는 나의 힘’을 읽던 중 다시 그 순간이 찾아왔다. 시를 낭독하던 분이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라는 구절에서 말을 잇지 못했던 것이다. 당시 그가 겪은 암흑 같은 시간이 우리에게 전해져 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이 마지막 문장을 고백할 수 있었던 기형도는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밤의점장은 이제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로 이 시를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함께 낭독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익숙했던 시를 전혀 새롭게 발견한다.)

 ‘빈 집’ 낭독을 마치고 나서는 한 분이 황현산 평론가의 해설을 읽어주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는 문장이 네 가지 의미를 띨 수 있단다. ‘사랑을 잃은 후에’ 쓴 것일 수도 있고, ‘사랑을 잃고서야’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같은 시어가 다르게 읽힌다.      


 아래는 낭독 중에 우리의 감탄을 자아냈던 구절들이다.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_‘오래된 서적’ 중에서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중요치 않다는 문장은 밤의점장에게 꽤 위안을 주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 박힌,

길쭉하고 가늘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

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여행자’ 중에서
 (안정된 생활에 정착하지 못한 채 늘 어디로 가야 할지 자문한다는 폭풍의점장의 말이 의미심장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름답다

그것뿐이다”

_‘성탄목-겨울 판화 3’에서

(이 시를 맡은 분이 단 두 행을 읽고 넘겼을 때의 깔끔함. 모두 감탄하듯 웃었다!)     


“나는 가끔씩 어둡고 텅 빈 희망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 이상한 연주를 들으면서 어떨 때

는 내 몸의 전부가 어둠 속에서 가볍게 튕겨지는 때

도 있다.” 

_‘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중에서

(“어둡고 텅 빈 희망”이란 말이 좋다. 나를 압박하지 않아서. 그러나 이 시는 기형도의 시 가운데 가장 희망적인 기운을 풍긴다. 자신만의 낡은 악기를 찾아 홀로 만들어가는 즐거움이란 얼마나 힘이 되는가!)


“사내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얼굴 위를 걸어다니

는 저 표정”

_‘장미빛 인생’ 중에서

(“얼굴 위를 걸어다니는 저 표정”! 이런 표현을 쓰는구나...)


“눈발은 수천 장 흰 손수건을 흔들며 하구로 뛰어가고”

_‘도시의 눈-겨울 판화 2’ 중에서

(역시 시인의 표현에 감탄할 뿐.)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_‘엄마 걱정’ 중에서

(그 시절에 숙제가 있기는 했을까. 늘 먹던 찬밥처럼 방에 동그라니 담겨 교과서를 뚫어지게 보았을 소년.)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_‘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자신의 황폐함을 담담히 들여다보았던 시인. 사실 우리는 모두 그런 내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저녁마다 연필을 깎다가 잠드는 버릇을 지금까지 버리지 못했다.”

_‘집시의 시집’ 중에서 

 ‘집시의 시집’을 낭독한 후 한 분이 이 시를 알게 되었으므로 자신은 “쉬지 않고 연필을 깎을 거”라고 고백하듯 말했다. 그이의 선언에는 다가올 좋은 사건을 기대하는 희망이 묻어 있었다. “참된 즐거움을 두려워하”는, “세상을 자물통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어른들에 맞서 시인은 절박한 심정으로 시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필, 아니 나의 연필은 무엇일까.


 대학 때 <입 속의 검은 잎>을 읽고 주변에 선물하기도 하고 편지에 시를 적어 보내기도 했으나 왜 기형도가 이처럼 오래 읽히고 있는지 솔직히 잘 몰랐다. 이번 낭독회를 마치고서야 늙음 앞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던, 자신의 황폐함을 드러낼 줄 알았던, ‘나는 불행하다’ 고백하되 결코 자기 고통은 전시하지 않았던 시인을 발견했다.

 봄이 왔지만 봄이 없다. 당신이 있지만 당신이 없다. 그렇게 누군가에겐 봄, 누군가에겐 어둠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라도 누구라도 이 봄, 기형도를 읽기를.  (by 밤의점장)





*낭독회가 끝난 후 “나를 위해 연필을 몇 자루 샀어요. 그동안 연필을 깎는 습관을 잃어버리고 나 자신을 잊고 산 것 같아요. 낭독회를 열어주어 고맙습니다.”라는 디엠이 도착했다. 서점을 열어 정말 다행이다.          


** 내년 봄에도 밤의서점은 <입 속의 검은 잎> 전편 낭독회를 열 예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