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brehee Nov 17. 2024

에스프레소 한 잔



쌓인 것들이 많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은 날들이 있다.

깊고 차분하게 집중하려는 마음으로 베이직 요가 한 시간 영상을 튼다.

땀이 주르륵 흐른다. 옷이 다 젖고 눈으로 땀이 흐른다.

어르신들이 뜨거운 탕에서 시원하다고 하시던 말씀을 이제 이해한다. 

찝찝하기보다 개운하다. 

사바아사나 중 완전히 뻗어 버렸다. 잠깐 동안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

개운해서 무언가를 적을 힘이 생긴다.

수련 도중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질 좋은 원두, 그 본연의 맛을 끌어낼 줄 알게 탬핑하는 바리스타

그리고 오랜 시간 연구 끝에 완벽한 세팅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머신이 만나면 

아주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나온다. 

산미와 고소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향긋한 한 잔.

시럽이나 각종 재료들이 옆에서 도와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한 사람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는 에스프레소. 

진짜 기본이 잘 된 에스프레소는 부연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한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보았다.

대부분은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보다 누가 그랬다더라, 그렇다더라

류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뭐 하고 있지?'

창피해졌다. 경험하지 않은 것들을 떠들어 대면서 

마치 엄청난 삶의 진리를 직접 깨달은 척하는 모습에 신물이 났다.

쉽게 흔들리고 의미 없는 비교와 허세 속에서 상처받았다.

기본으로 돌아갈 때다. 

내면의 소리를 더 잘 들어야 할 때라는 느낌이 온다.

몸을 정성스럽게 펴고 호흡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수련과 동작을 하겠다는 마음을 버린다.

기본이 제대로 서지 않으면 결국 요란함과 천박함만 남게 될 거다.

뜨거워지는 만큼 뭔가 다른 장이 열린 듯한 강한 기운을 

받은 수련이었다. 

오랫동안 연락 없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고, 먹고사는 일이 아닌

나의 일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 악영향을 주던 관계들을

이젠 편하게 놓아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세계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하다. 

찝찝함과 안타까움이 남기도 하지만 묵은 각질도 털어내야

할 때가 있으니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매트에만 오르면 뭔가를 적고 남겨두고 싶어 진다.

나마스테.

이전 11화 강인함의 다른 이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