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적인 삶을 동경했다.
정확히 말하면 군살 없는 몸을 가진 사람이 하는 어려운 동작과
요가 소품 같은 외적인 것에 관심을 두었다.
요가 수련은 매일 하지 않으면서 요가를 매일 쳐다보는 이상한 사랑.
요가 관련 에세이들을 계속해서 읽다 보니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요가를 어떤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한동안 쉬었던 요가를 다시 해보기로 했다.
짧지만 매일 매트 위에 올라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요가 소년 유튜브에서 20분짜리 전신 요가 영상을 찾았다.
처음 한 두 동작을 하다가 입고 있던 큰 티와 옷이 걸리적거렸다.
어차피 혼자 있는 거 둘 다 벗어 버렸다. 호흡과 동작을 하는데 자유로웠다.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흘러내리는 뱃살과 허벅지 살들을 마주하면
무너질 것 같아 애써 유튜브 화면과 매트에만 의식적으로 시선을 줬다.
내가 책을 제대로 읽고 의식이 바뀌었다면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며
내 호흡과 동작에만 집중했어야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도 살과 겉모습에 나의 시선을 의식하는 내가 조금은 불쌍하게 느껴졌다.
나는 왜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가.
에라 모르겠다. 동작에 따라 제멋대로 움직이는 살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로 한다.
20분 후 사바아사나를 하는데 안도감이 밀려온다. 헛웃음도.
옷을 벗은 채 누워 있는데 갑자기 '태초의 인간은 어땠을까'라는 궁금증까지 올라온다.
수련이 끝난 후 맨몸을 마주한다.
몸의 미니멀리즘을 떠올린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지금 내 몸엔 불필요한 것들이 많이 붙어 있다.
공간에도 여백이 필요하듯 몸에도 순환이 되도록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흘러내리는 것들을 천천히 없애고 싶어졌다.
넘치지 않아야 호흡도 편해지고 동작을 하는데도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다.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짧은 요가 수련을 선택했는데
오랜만에 메트에 서서 그런가 떠오르는 것들이 많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