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킴이 될 수 없어.

타국에 집을 산다는 것, 이민자에게는 계약 이상의 의미

by Liebe로시

1. 타국에 집을 산다는 것, 이민자에게는 계약 이상의 의미



오스트리아에서 결혼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남편은 좋은 기회가 맞닿아 생각보다 빠르게 집을 마련했다.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쪽이 무거웠다.


외국인 신분으로 이 나라에서 집을 산다는 건 단순한 계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 몰타살이중 비자를 연장할 때마다 서류를 몇 번씩 다시 준비했던 지난 5년이 스쳐 지나갔다. 타국살이는 늘 누군가의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살게 된다. 이번에도 혹시 이 나라에서 외국인 신분인 나 때문에 절차가 복잡해지지 않을까, 괜히 걱정부터 앞섰다.


“남편, 난 굳이 공동명의 안 해도 괜찮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남편은 단호했다.


“앞으로 우리가 부부로서 함께 가정을 이룰 첫 집이잖아. 당신이 오스트리아에서 안정감을 느꼈으면 좋겠어”


남편의 이 한마디가, 이 나라에서의 나의 자리를 조금 넓혀 주는 것 같았다.


2. 또 다른 ‘김’이 등장했다


12월 변호사 사무실. 집주인 내외와 마주 앉아 계약서를 검토하던 순간이었다.

서류를 넘기던 변호사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Frau 김OO, 워싱턴에 간 적이 있습니까? 혹은 과거에 한국 남성과 결혼한 적이 있습니까?”


잠시 공기가 멈춘 듯했다. 네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나를 향했다.


신원조회 과정에서 나와 생년월일까지 같은 동명이인이 조회되었는데, 워싱턴에서 자금세탁에 연루되어 블랙리스트에 등록된 한국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나는 잠시, 내가 아닌 또 다른 ‘나’의 그림자와 마주했다.

서약서에 서명하며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여권과 체류 기록, 지난 시간들이 내 결백을 대신 설명해 주는 듯했다.


3. “한국에는 김 씨가 많습니다”


그때 옆에 앉아있던 시아버님은 너스럽게 웃으시며 말했다.

“한국에는 김 씨 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던데,

저희 며느리는 절대 워싱턴킴이 아닙니다.”


오스트리아는 한국과 반대로 성이 동일한 사람이 흔치 않은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시가족도 사실 얼마나 내심 놀랐는지 나에게 티는 못 냈지만 내 이름을 검색해 보고,

수많은 동명이인이 조회되어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 모든 해명절차가 통과되어 작은 해프닝으로 넘어갔고, 우리 부부의 주택계약 절차는 잘 마무리되었다.



이후, 시아버님은 농담 삼아 나를 워싱턴킴으로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이것이 얼마나 웃기던지 나도

“아버님, 머니 런드리????”라고 응수했다.

워싱턴 어딘가에서 존재하고 있는 동명이인의 그녀의 삶이 안타깝지만

지구반대편 또 다른 오스트리아 킴은 든든한 오스트리아 시가족들이 곁에 있어

타국살이가 하나도 겁나지 않고, 외롭지도 않다.


4. 서류 속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으로


가끔 생각한다.

워싱턴 어딘가에서 같은 이름으로 살아가는 또 다른 ‘김’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민 생활은 종종 나를 ‘외국인’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한다.

서류 속의 사람, 번호로 기록되는 사람, 신원을 증명해야 하는 사람.


하지만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나를 증명해 주는 건 여권이 아니라, 곁에 앉아 나를 믿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워싱턴 킴이 될 수 없다.

나는 이곳에서 누군가의 의심 속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내이고, 며느리인 오스트리아 프라우 킴이다.

낯선 땅에서 집을 사고, 새로운 관계를 배우고, 나의 자리를 만들어 가는 일.

앞으로 내가 써 내려갈 이야기이다.



오스트리아 알프스 산자락 시골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