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습관 속에 너를, 네 습관 속에 나를

'습관'에 대해 쓰기

by 거짓말의 거짓말

나는 지독한 근시였다. 스물아홉 살 언저리 라섹 수술을 하기 전까지는. 안경을 쓰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다. 내 시력이 나빠진 건 8할이 전자 오락실 때문이지 싶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꾸준히 전자 오락실에 다녔다. 4학년 즈음에는 주말이나 방학에 100원~200원을 들고서 오락실에서 4~5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딱히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동네 형들이 하는 게임을 구경만 해도 족했다. 오락실 내공이 쌓이면서 '원더 보이'나, '던전 앤 드래곤' 같은 게임은 운이 좋으면 100원으로 끝판을 깨기도 했다. 단돈 100원으로 1시간가량 놀 수 있는 놀이는 전자 오락이 유일했다. 당시엔 천 원짜리를 100원으로 바꿔 오락기에 동전을 쌓아놓고 하는 부잣집 형이나, 대전 격투 게임에서 연전연승을 하는 고수를 부러운 눈으로 우러러봤다.


그 무렵 부모님은 작은 과일 가게를 운영했는데 나는 가끔 100원~200원을 슬쩍해서 옆 옆집 아저씨가 운영하는 오락실에 가곤 했다. 도둑질이라면 도둑질이지만 그 당시 나는 부모님이 배달을 나가거나 가게를 비우면 능숙하게 손님에게 과일을 팔았기 때문에 지금도 딱히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10살짜리 꼬마가 능숙하게 과일을 판다는 건 예를 들면 1000원에 10개 하는 귤을 손님이 2000원어치 이상을 사면 서비스로 1개를 더 주면서 '서비스로 1개 더 드릴게요'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비스로 1개를 더 주는 것'이 아니라 '서비스로 1개를 더 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또 가끔은 손님이 '어떤 귤이 제일 맛있어요?'라고 물어보는데 그때그때 아무 귤이나 찍어서 '1000원에 10개짜리요.' 혹은 '알이 굵은 6개짜리요'라고 원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해주는 것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졸업하는 동안 내 시력은 1년에 평균 0.2 정도씩 나빠졌다. 실제로 안경을 쓴 지 10년이 지난 20대 중반 이후에 내 시력은 마이너스까지 내려갔다. 시력 검사를 할 때면 사실상 검사판에 있는 어떤 숫자도 보이지 않게 됐다. 카페에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눌 때 안경을 벗으면 상대방의 눈코입이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만약 당시에 소개팅을 하러 가다 행여 안경을 잃어버렸다면 상대의 외모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해질 수 있었을 거다.


나는 주로 무난한 검은색 테 안경을 쓰곤 했다. 과음을 하고 잠들기 전 무심결에 안경을 텔레비전이나 검은색 가구 위에 두고 잤다가 다음날 안경을 둔 곳을 기억하지 못해 20~30분을 헤매기도 했다. 안경이 내 코앞에 있어도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웠던 '안경 양'과의 동고동락을 끝내기로 한 이유는 2가지 정도다. -프랑스어와 달리 국어에는 단어마다 성별이 존재하진 않지만 기왕 살을 맞댄 사이라면 '안경 군'보다는 '안경 양'으로 부르는 게 낫지 싶다-. 첫째로는 당시 구직 면접에서의 연이은 낙방이다. 안 그래도 고지식한 인상이었는데 두꺼운 압축 렌즈를 끼다 보니 눈이 더 작고 고집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정면에서 거울을 보면 안경 부분의 얼굴 윤곽이 0.5cm는 안으로 파여 보일 정도였다. 같이 취업 준비를 하던 사람 여럿에게 '인상도 바꿀 겸 한번 시력 교정 수술을 받아 보는 게 어때?'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공교롭게도 2년 동안 떨어지기만 하던 면접에서 라섹 수술을 하고 첫 번째에 합격했다.


둘째로는 워터파크에 가도 눈이 나쁜 탓에 좀처럼 흥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나보다 먼저 취업해서 삼성 계열사에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삼성맨 복지의 일환으로 녀석에게는 삼성 계열사인 캐리비안베이 할인권이 나왔다. 일 년에 한 번씩, 2~3년 정도 녀석과 같이 워터파크에 갔는데 눈이 나쁜 탓에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말을 전혀 실감할 수 없었다. 뭐가 보여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안 아름다운지 알 수 있는데 눈에 뵈는 게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도수가 있는 물안경 정도로는 해결이 안 돼서 마지막에 갈 때는 일회용 아큐브 렌즈를 두 달 치인가 샀다. 내 기억에 초고도 근시 용인 '마이너스 8 디옵터' 렌즈였다. 워터파크에 가기로 한 당일 난생처음 눈에 렌즈를 끼우려고 시도해 봤는데 눈이 나쁜 탓에 도저히 렌즈를 끼울 수가 없었다. 렌즈가 보이지 않아서 렌즈를 끼우려 할 때마다 손가락이 엇나가거나 눈을 감아 렌즈 끼우기에 번번이 실패했다. 렌즈를 3~4개 정도 버리고 손으로 눈을 하도 찔러 대서 눈의 실핏줄이 다 터졌다.


시뻘게진 눈으로 나와 같이 살던 렌즈 끼우기 전문가 룸메이트를 깨웠다. 룸메이트의 도움으로 간신히 렌즈를 낄 수 있었다. 시뻘게진 눈을 가리기 위해 나는 렌즈를 낀 눈 위에 선글라스를 끼고 워터파크에 갔다. 과연 한 여름의 워터파크는 TV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노래했던 안치환 형의 말은 사실이었다.


취업을 앞두고 한 라섹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마이너스 8 디옵터였던 내 시력은 라섹 수술 후 한두 달이 지난 뒤에 1.0~1.2까지 회복됐다. 시력이 나빴을 때 안경을 벗고 빛을 바라보면 커다란 원을 작은 원들이 감싸고 있는 형태로 보이던 증상도 사라졌다. 라섹 수술 후에 이 같은 현상을 '빛 번짐'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았다. 일반적으로 라섹 수술 후에 빛 번짐 부작용이 생긴다고 하던데 내 경우에는 라섹 수술 후에 빛 번짐 현상이 오히려 사라졌다. 보통 사람에게는 빛이 광원을 중심으로 방사형의 직선으로 곧게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전까지 '동그란 면'으로 인식됐던 빛이 내게도 '곧게 뻗은 선'으로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더 이상 출근을 할 때 잃어버린 안경을 찾느라 허둥지둥할 필요도, 소개팅을 하면서 외모에 관대해질 필요도 없어졌다.


하지만 안경을 벗고 난 이후의 삶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먼저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거울 속의 나를 뚜렷이 볼 수 있었다. 샤워 후에 맨 얼굴의 나를 또렷이 바라보는 일은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전에는 내가 이를 닦거나 샤워를 할 때 거울 속의 내가 설령 다른 일을 한다 해도 알아챌 수 없었을 테지만 라섹 수술 후에는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시인 이상은 아마도 라섹 수술이 필요할 만큼 근시는 아니었나 보다.


20년 가까이 안경 양에 길들여진 습관도 문제였다. 아침에 세수를 할 때 쓰지도 않은 가상의 안경을 벗느라 헛손질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종종 쓰지도 않은 안경을 밀어 올리기 위해 가운데 손가락으로 콧잔등이를 문지르기도 했다. 안경 없는 맨 얼굴에 한 헛손질이 무안해져 주위 시선을 의식하며 얼른 손을 내리고 주머니에 찔러 넣기도 했다.


안경은 '내 몸이 기억하는 습관'이었다. 그러다 문득 서늘한 생각이 스쳤다. 한 번 몸에 밴 습관은 쉽사리 떨쳐내기 어렵다. 하물며 안경과 같은 물건에 얽힌 습관을 떨쳐내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만약 내 습관이 타인과 얽혀 있는 것이라면. 어떤 가수의 노랫말처럼 '한 순간 내 몸에 익숙했던 네 손이 날 밀어내'는 상황이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습관에 타인을 길들이고, 타인의 습관에 내가 길들여졌다면 어떨까. 내 습관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면 나는 어떡해야 할까. 어떤 습관은 그러니까,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 '무서웠다'.


어린 왕자에게 여우는 말했다.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만약 어느 날 여우가 나를 떠나가 버리게 되면, 여우에게 길들여진 나는 어떡해야 할까.


뭐, 사실 정답은 이미 알고 있다. 누군가 나를 떠나가는 건 막을 수 없다. 반대로 가끔은 내가 누군가를 떠나기도 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고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다음번에 내가 누군가를 만나고 그와 내가 기꺼이 서로를 길들이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내 '마지막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면 나는 그 편지에 이렇게 쓸 것이다.


당신은, 이제, 내 습관입니다.


<2020.06.14 쓰담 클래스 7기 마지막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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