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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잠

by 인생정원사
아플 고(苦), 이야기 담(談).
잠이 오지 않는 밤, 혹은 잘 수가 없는 밤에 쓴 글들. 이곳에서는 엄마도, 정원사도 아닌 오롯이 나를 기록합니다. 일기보다 투명하고, 편지보다 깊은, 푸른 물의 아픈 시간, 그 기록을 다시 불러와 브런치북 <새벽고담>에 담았습니다. 새벽의 글들을 다듬어 다시 올린다면, 고통도 조금은 무뎌질 수 있을까요.


난 떨어지는 공일까,

혹은 그 공을 놓아버린 손일까.

이렇게 한없이 마음이 추락하는 날,

난 유리공이 된다.

영원히 떨어지고 있는.


만약에,

공이 지면에 부딪히면

산산조각 날까 혹은 튕겨져 다시 오를까.


무엇인가 하고 있을 때,

공을 쥐고 있다. 그러나,

손에 꽉 차다 못해 살짝 커서 놓칠까 두려운 크기.

힘이 들어가 긴장을 놓지 못한다.


놓치는 순간

하강. 떨어뜨린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다.

“틈”이 찾아올까 무서워.


촘촘히 하루를 계획하고 의미 있는 순간을 이어 붙인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 계속 이어져 반짝거리는 순간을 만났다.

충실한 아름다움은 일순 모든 것이 "가능했다".

애써 힘주지 않아도 괜찮아.


착각이었다.


통증이 출렁,

훑듯이 몸을 쓸어 지나간다.

결국 공을 놓친다.


마음에 쳐 둔 겹겹의 그물이 순간 희미해진다.

공은 그물의 망을 통과해 버린다.


아, 안돼.


깊은 숨을 내 쉰다.

삶의 부하를 줄이고 몇 가지를 덜어낸다.

덜어낸 자리가 있어야 받을 자리가 생기니까.


간절히

공을 기어코, 움켜쥔다.

다시 반짝거린다.

"난 걸을 수 있다".


몸은 상처투성이.

그러나 걸을 수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두 손은 공을 쥐고 있다.

다른 이의 손을 잡을 수 없다.


외롭고 매정하게 살아야 해.

하강하지 않기 위해.

다시 반짝거리기 위해.


이미 유리공은

내 손 안에서 반짝거리고 있지만,

아직 난 모른다.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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