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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Sep 22. 2024

비상식적 위로라 하더라도

경첩에 기름칠이라곤 하지 않아 열 때마다 삐거덕거리는 문처럼 눈이 뻑뻑했다. 어깨와 목을 연결하는 승모근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피곤했던 하루를 대변하기 위해 몸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최대한 빨리 잘 준비를 마쳤다. 침대에 누워 눈을 질끈 감았다. 흡사 최면에 빠진 사람인 양 얼마 못 가 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감긴 눈을 뚫고 돌연 새하얀 섬광이 들어왔다. 잠결에 게슴츠레 눈을 떴다. 천지가 암흑이었다. 눈꺼풀 사이 벌어진 틈새는 제대로 열리기도 전에 바로 닫혔다. 번적. 다시 눈을 떴다. 여전히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상하다. 내 눈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 왼쪽 손목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스마트워치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시 36분. 아직 한참 꿈속에 있어야 할 시간이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빨리 다시 자야겠다. 의식이 꿈틀거리며 깨어나자 마음이 약간 조급해졌다.      


잠시 후 또다시 빛을 감지했다. 시계를 확인하다가 혹시 스마트워치가 한 번씩 번쩍거리며 내 수면을 방해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불로 왼손을 꼭꼭 덮었다. 이제는 괜찮겠지. 눈을 감았다. 반작. 이번에는 팔을 뻗어 탁자에 놓여있는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중요한 카톡이나 문자가 왔다고 알리는 걸 수도 있으니까. 잠시 후 모든 카톡방의 카톡을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의 릴스에 빠진 자신을 알아차렸다.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 3시 21분. 아.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낮에 있었던 일로 몸에, 아니 눈에 과부하가 걸린 걸까? 그게 아니라면 신경쇠약으로 이상 증세가 발생한 걸까? 오늘 밤 자기는 다 틀렸다. 자포자기하는 심경으로 일어났다. 비틀거리며 화장실에 갔다. 거실로 나와 조명을 켜고 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까짓 스트레스가 어제오늘 일도 아니건만. 내 몸은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분명 아까 생겼던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해 이러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소한 사건으로 잠까지 못 자다니. 나란 인간은 여전히 한심하구나.      


그때였다. 사방에서 빛이 번쩍하고 덮쳤다.     


창가로 다가갔다. 이중창 중에 첫 번째 창문을 열었다. 투두둑 투두둑. 무언가 창문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째 창도 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좀 전에 번개가 쳤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탄탄한 이중창 덕에 빗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고 잠을 방해한 원인을 엄한 곳에서 계속 찾고 있었다니.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났다. 불현듯 자신만 탓하던 내가 딱했다.      


세상에서 조정할 수 있는 건 오직 자신이라는 말을 받들며 산다. 그 말은 물론 엄연한 진실이지만, 조정할 수 있다는 말에는 원인까지 제공했다는 뜻이 포함되어있지 않다. 혹시 나는 여태껏 그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중창을 꼭꼭 닫아 천둥·번개가 지나가도 눈치채지 못하고 다른 데에서만 원인을 찾았던 것처럼 마음의 눈을 굳게 닫아버리고 매사 원인까지 전부 내 탓으로 돌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자신밖에 조정할 수 없는 현실은 동시에 세상사란 언제나 개인의지 영역 밖에서 돌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말이다.

     

이제는 모든 일에 내 탓만 하며 살지 말아야겠다. 힘든 일이 찾아오면 세상 탓도 하면서 그렇게 응어리진 마음을 풀어버려야지. 화나고 슬플 때는 맥주 한 잔에 기대어 세상에 당한 자신을 다정히 위로하려고 한다. 지는 날이 있으면 이기는 날도 올 테니까. 그렇게 믿는 자신을 그저 더 사랑해야지. 행여나 번지수를 잘못 찾았더라도. 가끔은 그런 방식도 나쁘지만은 않다. 비난의 화살을 매번 내게만 향한다면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으니까. 어라. 어째 결론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뭐 어때. 결국은 내 맘 편해지자고 하는 건데 뭐.


그나저나…. 언제 다시 자나.



#라이트라이팅#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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