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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띠의 하루 Jun 18. 2021

생존스피치가 나를 살렸다.

내 인생은 뛰어나지 않다. 다만, 특별하게 만들 수는 있다.

본인의 성장과정에 관해
1000자 이내로 서술하시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는 충격적인 때가 있다. 내겐 취업준비를 갓 시작한 24살 겨울이었고, 그때 찾아온 핵폭탄급 좌절감은 나를 지하 100층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내 인생은 보잘것없다. 



  스스로 이런 평가를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지 모른다. 이미 발에 땀이 나도록 능력치를 가꾸고, 경험을 쌓은 친구들은 거침없이 답을 써 내려간다. '나는 인생을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나는 뛰어납니다.'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말이다. 친구들의 반짝거림은 나를 한 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포기하면 백수니까..' 그 자리에 서서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기에는 백수가 된다는 두려움이 좌절감보다 더 컸고, 이에 떠 밀리듯 앞으로 한 발자국 내디뎠다. 스스로 별 볼 일 없는 인생이라 평가했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취약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소개서를 쓸 때, 약점을 최대한 장점으로 포장하는데 온 힘을 다했고 결국 1차 합격 소식을 들었다. 물론 친구들이 10번 통과할 때, 나는 1번 통과했지만 말이다.




단 1번, 마지막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친구들에겐 다음 기회가 남았지만, 내겐 없다.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면접관의 눈길을 끌어야 했다. "어, 쟤 좀 봐라?"하고 눈 마주치기, 딱 그거면 됐다. 눈길을 끌면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하기를 할 수 있다. 특출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무스펙에 가까운 나를 어떻게 보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발표를 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염소 목소리로 벌벌 떨며 두서없이 말하던 내가 말 잘하는 방법을 공부했고, 이렇게 생존스피치가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심→심→한↗ 지원자 똑띠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영업관리 직무에서 인정받는 사람은 심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투리를 사랑한다. 평생을 부산과 함께하며, 성장했다. 애써 어색한 표준말을 하기보다는 내 몸에 딱 맞는 사투리를 적극 활용해 면접관의 눈길을 끌고자 했다. '뭐라고?'라는 표정의 면접관과 눈이 마주쳤다. 부실한 스펙이 구구절절 나열된 내 자기소개서에서 면접관의 눈길을 떼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후에는 그 눈길을 내게 붙잡아두기 위해 아주 절박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심은
중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4년 동안 판촉 전문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할 때, 15명 팀원의 업무 스케줄을 관리한 경험이 있습니다. 개인의 요구와 회사 자체 기준을 모두 충족하고자, 저만의 업무 스케줄 관리 매뉴얼을 만들었고, 이 경험으로 관리자로서 중심을 가지고 팀원을 이끄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두 번째 심은
 인심을 얻는 사람입니다!

“팀↘장→님, 이번 주는 우리 매장 행사 오↗실→거↘죠?”

제가 담당했던 매장 사장님들께서 제게 가장 많이 하신 말씀입니다. 담당 매장의 매출 상승을 위해 세트 판촉물을 제작해 고객 유입률을 상승시켰고, 홍보 멘트를 고객 연령대에 맞춰 차별화했습니다.
그 결과, 전달 대비 매출액이 120% 신장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중심과 인심을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무르지 않는 실행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담당 매장의 발전을 위해 발 빠르게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00그룹의 영업사원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있어 보이게 말했지만, 실상은 모든 대학생들이 겪는 아르바이트 경험일 뿐이다. 매뉴얼을 만들긴 했지만, 서류로 작성한 것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서 만들었고, 나만 활용했다. 세트 판촉물을 제작했다고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은 투명테이프로 제품을 칭칭 감아 1+1 증정 품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다.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평범한 경험을 특별하게 보이도록 말했을 뿐이다. 

이 것이 생존스피치의 모태가 됐다.




  1차 면접을 운 좋게 통과하더니, 최종면접까지 통과했다. 후에 신입사원 인턴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것은 동기들에 비해 내 스펙은 정말 보잘것없다는 것이었다. 좋은 대학과 학점, 해외 인턴, 봉사 경험까지 지닌 특출 난 동기들이 대다수였다. 


그땐 과거처럼 '아 역시.. 내 인생은 보잘것없구나' 라며 좌절하지 않았다. 다만, '내 인생은 평범하지만, 이것이 마치 특별한 것처럼 들리게끔 말하는 능력이 있다.'며 이를 강점으로 키워나갔다. 하루하루를 생존의 기로에 서있는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말했다. 어느 사람을 만나건 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말하기를 한 것이다.


직장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아~ 저번에 걔?"로 통했다.


아~ 저번에 신입사원 교육 때, 사회 본 걔?

상무님 앞에서 pt 한 걔?

부서 대표로 전략 발표한 걔?


한 번 트인 말문은 멈출 줄 몰랐고, 어쩌면 직장생활 내도록 말 한 번 붙여보지 못할 임원분께 이런 말을 듣기도 했다. "똑띠씨는 잘 모르겠지만, 똑띠씨를 지켜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기대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열심히 하세요." 회식을 마치고, 가던 발 길을 멈추며 말하는 낮은 목소리에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말하는 자체를 두려워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탓에, 남들 앞에서 벌벌 떨기 바빴던 내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말하기를 잘하는 사람이 됐다.


직장에서는 도태되지 않기 위해, 수업시간엔 최대한 많은 배움을 얻기 위해, 모임에선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오로지 생존을 위한 말하기를 하다 보니 난생처음 남에게 인정받았고, 그로부터 얻은 생애 첫 성취감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게끔 했다. 좋아하는 것 찾기는 타인의 인정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나처럼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에 작성해보려 한다.)

결국 이렇게 생존스피치가 내 인생을 살렸다. 


혹시 과거의 나처럼 '내 인생은 보잘것없다, 나는 태어난 김에 살아왔다, 나는 말하는 게 너무 두렵고 무섭다.'며 후회와 좌절감에 빠진 분들이 계시다면, 이 경험과 생존스피치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한다. 아무리 남들이 내 인생이 평범하다 말한다 한들 나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 평범한 내 인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다.




당신이 뛰어나지 않다고,
좌절할 필요 없어요. 

 평범한 인생을
특별하게 말하다 보면,

정말로 특별한 인생을
살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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