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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밍 Jan 21. 2021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씨네리와인드 오피니언|넷플릭스 영화 '유니콘 스토어(2017)'


[씨네리와인드|최은민 리뷰어] “무슨 일 하세요?” 예고도 없이 퍼부어지는 공격에 당황스러움도 잠깐, 이내 “취업준비생이에요.”라고 답한다. 취업은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한 첫 도약이자,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여겨진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 어느덧 취업준비생이라고 불리는 시기에 도달했다. 막 스무 살이 되어 바라본 선배들은 다 큰 어른 같아 보였는데, 막상 그 나이에 접어든 나는 ‘어른’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내 속에 앉아있는 것 같다. 마냥 꿈꿔왔던 일을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야 할지, 그렇다면 과거의 꿈과 노력들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처럼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깜깜한 밤하늘 아래에서, 우연히 영화 <유니콘 스토어>를 만났다.



 극 중 미술을 전공하던 키트는 교수들에게 수준 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학교에서 쫓겨난다.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온 그는 ‘실망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임시직 소개소를 통해 취직한다. 자신의 꿈과 전공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광고 회사에서 잡다한 업무를 맡는 임시직이다.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키트는 더 이상 과거의 꿈을 좇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키트는 “당신이 원하는 것, 당신에게 필요한 걸 팝니다.”라고 주장하는 상점의 초대 편지를 받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점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이어지는 판매원의 말이 이 불온한 의심에 불을 붙인다. 이 곳은 ‘유니콘 상점’이고, 당신은 유니콘을 가질 수 있다고.


 키트에게 ‘유니콘’은 과거의 꿈과 사랑 그 자체다. 어른이 되기 위해 지워내려 했지만, 선뜻 지워지지 않는 옛 흔적이다.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대상이 실제로 출현한다면, 아무리 현실적인 사람이라도 그 유혹을 거절하기가 힘들다. 키트는 유니콘을 갖기 위해 일종의 자격을 갖추기로 한다. 키트는 유니콘이 살기 적당한 집을 만들고 건초를 구하는 과정에서 철물점 직원 버질을 만나고, 그의 도움을 받으며 유니콘 프로젝트를 실행해 나간다. 그런데 여기에 유니콘을 얻기 위한 조건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사랑’이다. 판매원은 유니콘을 사랑으로 에워싸야한다며, 이에 대한 답은 키트 스스로 찾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냥 쉽지 않다. 키트는 부모님에게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지만, 부모님은 그런 딸을 이해하지 못한다. 키트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부모님을 밀어내기에 급급하다.


 유니콘 프로젝트를 진행함과 동시에, 회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또한 다가온다. 키트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던 중 키트는 상자에 가둬놓은 과거의 물건들을 다시 꺼내보게 되고, 이에 영감을 받아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다. 어린 시절의 꿈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키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르지만, 정장을 차려입은 어른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키트의 프레젠테이션은 실패한다. 어린 시절 자신이 꿈꿨던 이상을 담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지만, 키트의 꿈과 노력은 인정받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버질 또한 키트의 유니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키트와 버질은 함께 유니콘 스토어를 방문하지만, 텅 빈 공간만이 이들을 반긴다.



 키트의 꿈과 노력은 어른의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곧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유니콘 또한 사라진다. 키트는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모아 쓰레기통에 버린다. 실패의 경험 앞에서 무너져 내린 키트에게,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어른스러운 일은 네가 아끼는 일에 실패하는 거야” 꿈의 실패를 받아들인 키트는 밀어내기만 했던 부모님을 끌어안고, 버질과의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먼저 다가선다. 유니콘을 갖기 위해 노력하던 과정에서 서툰 모습을 보였던 키트는 쓰디쓴 경험을 통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타인을 둘러보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키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님과 버질 또한 그를 좀 더 이해하고 응원하기 위해 ‘유니콘 집’을 완성시킨다. 이들이 완성한 ‘유니콘 집’은 키트가 쓰레기통에 버린 과거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첫 미술시간에 만든 작품, 어릴 때 그린 유니콘 그림, 반짝이, 커튼 등, 키트의 삶이 온전히 담겨있는 ‘유니콘 집’은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난다.


 키트의 유니콘 프로젝트는 이렇게 막을 내리는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키트에게 유니콘 스토어로부터 연락이 온다. 판매원은 당신의 유니콘이 도착했고 대기자 명단에 다른 여자분이 있어서 지금 올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키트는 ‘평생 궁금해하며 살기 싫다’는 마음으로 유니콘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키트는 ‘진짜 유니콘’을 만난다. 어린 시절의 꿈과 추억을 살아 숨 쉬는 형태로 만나게 된 그는, 그제야 유니콘에게 작별을 고한다. 과거에게 감사를 전하며, 너를 더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서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어린아이에 머물러있던 키트는 줄곧 간직하고 있었던 꿈의 실패를 통해 어른이 된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해서 그 꿈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키트가 실제로 만나게 된 유니콘처럼, 과거의 마음은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 그리고 그 애틋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키트를 만들어냈다. 마치 과거의 추억들로 완성된 ‘유니콘 집’처럼 말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의 소망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꿈과 노력이 만들어 낸 삶과 그 기억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전의 아이의 삶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아이의 삶을 가장 강력하게 지탱하는 동기는 반짝이는 꿈과 상상력이다. 그 꿈과 상상력을 거머쥐고 생의 대부분을 살아왔을 텐데, 어느 순간 ‘넌 이제 어른이야’라고 말하며 당장 과거의 흔적들을 지우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전환점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린 시절의 꿈에 가닿으려는 용기와, 그 꿈의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꿈을 선뜻 놓아줄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는 이 일련의 여정을 통해 성장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유치하고 철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업을 앞둔 대학생의 시점으로 바라본 <유니콘 스토어>는 불분명한 미래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용기를 선사한다. 회색조의 현실에 스며들 수 없는 꿈이라 해도, 분명히 그 꿈은 무엇보다 반짝이는 ‘살아있는 어떤 것’이었음을 이 영화 덕분에 잊지 않을 것 같다. 마냥 꿈꿔왔던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그래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게 될지라도, 과거의 꿈과 노력들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이기에 헛되지 않았다고 말이다.





씨네리와인드 대학생 기자단 4기로 활동하며 기고한 글입니다.

http://www.cine-rewind.com/sub_read.html?uid=4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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