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에드가 Aug 02. 2019

떡볶이에 브로콜리를 넣어달라고요?

의사와 연애하면 벌어지는 일들 (1)

  내가 금융시장의 최전선에서 근무한다면, 그녀는 생명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한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둘 다 후방이라 일컫어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타인의 자산운용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분석을 하는 애널리스트가 본업이고, 그녀 역시 의학드라마에 나오는 모습처럼 생사를 넘나드는 응급실에서 전투를 벌이기보다는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가정의 이니 우리는 후방의 지원 역이라 보는 편이 옳다.


아무튼 건강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과, 돈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만나면 이런저런 재미난 대립이 많이 생긴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매일 먹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요리를 좋아한다. 처음 집을 나와 먼 외지 땅에서 룸메이트들과 쉐어하우스에 살던 유학생 시절, 당시 (지금도 그렇지만) 토론토 다운타운의 많은 쉐어하우스 콘도들은 집세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좁은 집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었다. 때문에 방 하나당 한 명씩 거주하는 그런 일반적인 환경이 아니라 - 거실에도 디바이더로 칸막이를 치고 사람이 살고, 베란다도 개조해서 사람이 살고 하는 식으로 - 복작복작한 환경을 이루며 같이 살았었다. 그 시절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음 문제도, 화장실 쉐어 문제도 아닌 주방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집 구조상 주방과 거실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데, 주방과 거실 사이에 칸막이를 치고 사람이 버젓이 살고 있으니 미안한 마음에 주방에서 음식 냄새 폴폴 풍기며 요리를 마음껏 할 수가 없었다. 이게 너무 한이 되어서 나중에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토론토의 높은 집세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행복했던 건 혼자 쓸 수 있는 양문형 냉장고가 생겼다는 점과 그걸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마음껏 요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로제 파스타도, 닭갈비도 만들어 볼 수 있고 늦은 새벽에 떡볶이도 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도, 내가 요리를 도맡았다. 나의 요리는 특별한 개성이 있지는 않아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정형화된 레시피를 그대로 충실히 따르기 때문에 못 먹을 음식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는 내게 있어 밥을 먹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피곤한 업무로부터 벗어나 정적인 일상을 잠시나마 즐길 수 있는 중요한 취미였다. 내가 하고 싶은 음식들의 레시피를 찾고 재료를 사 와 만드는 과정도 재밌었고, 내가 만든 요리들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는 그녀도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인간 둘이 만나면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와 함께 살아가며 갖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중에는 함께 먹는 음식도 하나의 자리를 차지했다. 물론 우리의 식성이 극명하게 갈리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침으로 고소한 미역국을 끓여도 괜찮고, 팬케이크를 구워다 달달한 메이플 시럽과 딸기를 곁들여도 괜찮았다. 저녁으로는 정갈한 한식 백반을 차려 먹어도 좋았고, 이탈리안 파스타나 고구마 치즈피자를 만들어 먹어도 좋았다. 몸이 노곤해 요리가 귀찮아질 때면 때로는 퀸스트리트의 예쁜 프렌치 레스토랑을 찾았고, 때로는 파파이스의 치킨 플래터를 시켜먹었다.


  문제는 채소였다. 채소. 채소. 그놈의 채소. 그녀는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경우라면 언제나 일정량 이상의 채소를 요구했다. 오늘의 한 끼 식사는 탄수화물 한 움큼, 단백질 한 움큼, 그리고 채소 뭉텅이. 언제나 채소에게 절반 이상의 지분을 나누어 주어야만 했다. 

  채소를 먹어야 한다는 것쯤은 정해진 상식이라 하더라도 항상 이렇게 많은 채소를 먹어야 하는 것은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소심한 투정을 부리면 그녀는 - 현대 사회의 정제된 음식들은 과도한 탄수화물을 제공하게 되어 이는 인간의 신체에 염증을 유발하는 일이니 적정한 채소의 섭취를 통한 식이섬유 공급으로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라며 - 대략 반박할 수 없는 의사의 논리로 나를 설득하려 했다. 지식의 편차가 과대하다면 논쟁의 의미는 없어진다. 차라리 조용히 브로콜리를 씹는 편이 낫다.


  비록 나의 잦은 투정이 유발되긴 했지만 강압적인 채소 확대 정책이 우리의 밥상과 우리의 관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아니었다. 극단적으로 육류를 소비하지 않는 비건도 아니고 그저 건강을 위해 좋은 취지로 채소를 아주 많이 먹는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할 때면 그린빈을 많이 구우면 되는 거고, 비빔면을 할 때면 오이나 양배추 따위를 왕창 넣어주면 되는 문제다. 많은 노력과 희생을 요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이것이 때로는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도 했다. 나는 중증 원칙주의자다. 무슨 일이든 원칙을 깨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요리의 레시피는 하나의 규율이었고 나는 그것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맛이 변질될까 두려웠다.


  자. 이번에는 크림 파스타를 만든다 해보자. 크림 파스타에 들어갈만한 채소는 양파와 마늘이 전부다. 이외의 잡다한 것들을 억지로 넣는다면 그것은 분명 음식의 맛을 해치는 일이라 여겨졌다. 그런데 크림 파스타는 우유나 크림, 베이컨과 같이 재료의 특성상 우리 몸에 염증을 유발하는 식재료가 많이 포함되어있다. 때문에 이를 적당히 가라앉히기 위해서는 적당한 채소를 곁들여줘야 하는데 파스타에 넣을 수 있는 식이섬유는 더 이상 없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 서로 대화를 통해 원하는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크림 파스타의 일반적 레시피에 어긋나는 채소를 넣는 것은 용납할 수 없고, 그녀는 더 많은 양의 식이섬유를 원한다. 아! 간단한 해결방법이 있다. 샐러드를 만들어 테이블에 함께 올리면 이 문제를 끝이 난다. 오케이 협상 타결.



  모든 협상이 크림 파스타처럼 원활히 진행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떡볶이에서 터지고 말았다. 주재료인 떡도, 어묵도, 당면도, 라면도 전부 다 탄수화물이다. 들어가는 채소라고는 아주 조금의 양파와 당근이 전부다. 함께 어울릴 만한 음식이라고는 김밥? 김밥 역시 탄수화물이 과도한 음식이다. 의사인 그녀의 입장에서는 떡볶이는 악마의 음식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밥상에서 떡볶이를 포기할 순 없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 이상 세계 어디에 있든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 떡볶이는 먹어주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어느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난 오후에 오늘은 떡볶이를 만들겠다 선언하자 그녀는 이미 온몸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오늘도 떡볶이야? 무슨 탄수화물 중독자도 아니고."

  하지만 오늘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오늘은 무조건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오후 업무가 금단증상으로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못할 게 뻔히 보였다. 오늘의 대가로 3일간 아침으로 고기 없는 월남쌈만 우걱우걱 씹게 되더라도 오늘은 떡볶이를 먹어야 하는 날이었다. 내가 계속 입장을 굽히지 않으니 그녀로서도 오늘만큼은 귀엽게 넘어가 주려는 모양이다. 그녀는 반쯤 포기한 눈치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럼 떡볶이에 냉장고에 있는 브로콜리도 넣어줄 수 있어요?


  브로콜리가 들어간 떡볶이라니. 내 한 평생 그런 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나의 세계에서 떡볶이란 브로콜리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레시피를 준수하지도 않고 상식 외의 것이니 결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위에도 서술하였지만 나는 중증 원칙주의자다. 무슨 일이든 원칙을 깨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떡볶이든 크림떡볶이든 짜장 떡볶이든 간에 만들 수는 있지만 각각 체계적으로 정해진 레시피가 있다. 들어갈 재료가 있고, 들어가서는 안 되는 재료가 있는 것이다.


  평화롭던 일요일 브로콜리는 집안에 태풍을 몰고 오고야 말았다. 평소부터 채소에 압박받아온 감정이 쌓이고 쌓여 한 순간에 터졌고 고작 점심 메뉴 정하는 일로 우리 사이에 불필요한 언쟁이 일어났다. 몇 차례의 말다툼을 주고받은 후에 서로는 토라져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침묵을 지켰고 모든 일의 원흉인 브로콜리만이 도마 위에 덩그러니 남아 모두를 비웃고 있었다.


  이럴 때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잠시 감정을 내려놓고 생각해볼 때, 어차피 오늘도 결국은 한 이불 덮고 자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나면 이 침묵이 오래 지속되는 건 매우 불편한 일이다. 불편한 침묵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 먼저 화해해야 한다. 다시 주방으로 나와 프라이팬에 물을 붓고 떡을 담가놓은 후 강한 불로 끓여준다. 물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면 필요한 양념을 모두 넣어 잘 섞어주고 떡이 눌어붙지 않게 잘 저어가며 계속 끓여준다. 어느 정도 국물이 줄어들면 대파와 양파, 당근과 어묵을 채 썰어 넣어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리 삶아둔 계란 두 개를 예쁘게 반으로 쪼개 장식하고 구석에서 미운 얼굴을 하고 있는 브로콜리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올린다. 요리가 마무리되면 적당히 플레이팅을 마친 후 그녀의 방문을 두드린다.




브로콜리의 교훈


  나에게 당연한 일이 그녀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로 다가올 수 있고, 그녀에게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주로 이러한 이해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당연함을 타인이 논리의 전면을 부정할 때 인간 사이의 다툼이 일어난다. 그깟 밥 한 끼. 그깟 밥 한 끼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살아가며 아주 사소한 일들로부터 대립이 시작되고 갈등의 씨앗이 싹튼다. 서로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주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사소하더라도 특정한 부분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툼이 생기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결코 서로를 이해할 수 없기에 인간 사이의 다툼은 불가피하지만, 하나의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라면 서로의 노력을 통해 조금은 다툼을 줄여나가고 이해를 향한 길로 발돋움할 수 있다. 자신이 키워온 사상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게 되더라도 온전히 상대를 위해 상대방의 당연함을 존중해주는 것. 나의 원칙을 불가피하게 어기게 되더라도 때로는 상대를 위해 포기할 줄 아는 것. 이러한 노력이 계속될 때 인간은 비로소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월 40억 버는 보람튜브는 정의롭지 못한 걸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