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포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주의 : 상세 줄거리는 없지만 스포일러는 있음.
중산층의 가장으로 커피숍을 운영하며 여유롭게 살아가지만 지나친 결벽증을 가진 남자, 성수 (손현주 역)
입양된 그는 형을 배신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 한 과거가 있다.
그 빚진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혐오한 형의 피부병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그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이 결벽증으로 표출된다.
여기, 또 물욕에 미쳐버린 한 여자가 있다.
자신의 딸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화로운 성수의 가정을 산산조각 내버린 여자, 주희. (문정희 역)
마음의 병, 그 불안에서 시작되는 공포.
현실의 어떤 단단한 문도 끊임없는 불안과 의심 앞에서는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없다
주인공 성수는 형을 찾으러 방문한 스산하고 허름한 동네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을 느낀다. 완벽한 치안이 보장되는 아파트에 살지만 늘 불안해하는 성수, 그것을 지켜보며 더 불안해하는 성수 가족이 영화의 한켠을 차지한다.
이 영화에서는 단단하고 완벽해 보이는 초호화 아파트의 현관문도, 이중 삼중의 도어록도 오히려 무방비 상태로 묘사되는데 이러한 시스템이 공포의 순간에는 무용지물임을 보여준다. 철통 같은 보안시스템이 어이없이 무너질 때 공포심은 더 극에 달하게 되는데, 불안한 마음에 넘어져서 핸드폰이 고장 나 상황이 더 악화된다던지 노려보거나 의심스러워 보인다는 이유로 모르는 남자와 붙어 싸운다든지 하는 모습들은 결국, 모든 불안은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러한 공포로 인해 사고가 악화일로로 치달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괴물을 만드는 병든 사회
한편, 영화에서 비중 있게 나오진 않지만 정신병이 있는 주희의 딸은 보고자란대로 엄마와 똑같은 성향과 정신이상을 보인다. 물론 영화는 주희가 왜 물욕에 미쳐버렸는지 어떤 과거가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영화가 문제적 인물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라고 보이는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찾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희는 싱글맘으로 무시받고 천대받은 가난 콤플렉스 때문에 어렵게 살며 신분상승을 꿈꿔왔을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그런 부녀를 받아주지 못하는 사회가 그들이 괴물이 되도록 방치했기 때문일 것이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고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듯 한 단계 더 위로 올라가려는 욕심을 조장하는 사회, 도덕과 가치관을 습득하지 못한 채 오로지 돈과 공부에만 집중하는 파괴된 가정, 인성이 파괴된 아이들. 그 모든 사회의 단면을 주희를 통해 극단적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너무 뻔하고, 잘 알지만 부수기 어려운 편견들
또 한 가지.
성수의 형이 혐오스럽게 생기고 전과자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당연히 그가 범인일 거라 상상하며 영화를 보게 된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그러나 때로는 가장 무서운 파급력을 낳는 이 일상적인 편견을 관객 스스로도 갖고 있었음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 물론 그 편견 때문에 반전이 시시하기도 해질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이 영화는 그렇게 우리의 뻔한 편견을 비웃고 맹렬히 비판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진짜 괴물은 누구일까
주인공 성수에게서는 이미 쟁취한 풍요로움을 뺏기지 않으려 끊임없이 불안에 떠는 어떤 사람들이 모습이,
주희에게서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으니 넌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극성 엄마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렇게 하여 결국 남는 것은 남의 집 벽장에 숨은 진짜 괴물이다.
그 아이가 자신이 소문 속의 괴물임을 알지 못하고 소문을 읊조리는 것처럼,
우리도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섬뜩한 모습이
우리와 우리 사회에 스며들어있는 자화상인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평점은 배우 문정희의 재발견이 가능하나, 집에 가는 길이 그다지 무섭지 않으므로
별 세 개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