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전문대를 졸업하는 사람과 4년제를 졸업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물론 나도 4년제를 들어가고 싶었다.
높은 문턱과 터무니 없는 등록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업이 잘 된다는 말만 믿고 3년제를 가야만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이상 미루다 가는 대학을 갈 수 있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입학날짜 안에 돈을 넣어야 하니까 그렇게 학자금 대출을 통해 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안 그랬다면 대학은 꿈도 못 꿨을 거다.
3년제는 대학생활이 아니라 고3의 연장선이었다. 4년간 배워야 할 전문 지식을 3년 안에 다 넣어야 했고 그 안에 실습도 채워야 했다. 실습을 가기 일주일 전 나는 뭔가 직감하고 엄마에게 간호사를 하기 싫다고 말씀드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학교 다니기 싫다고 말이다. 그랬더니 엄마는 "여자라면 번듯한 직장이 있어야 시집도 잘 간다며"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대학교 안 다니고 뭐 하려고 그러냐며 핀잔이시다. 그러게 " 대학 안 다니고 내가 뭘 할까?" 생각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미 나는 1번의 대학 입시 실패를 경험해서 재수생이었다. 그것도 어이없게 입학원서 내는 시기를 놓쳐서 결국은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성적은 잘 나왔으나 나만 잘 나온 게 아니라서 전 보다 점수가 높아졌고, 지원한 학교에서는 대기로 기다려야 했고, 여러 가지 내가 가고자 하는 학교에서는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다 지쳐 집 근처 전문대라도 가자 하며 입학원서를 넣으려고 했더니 이미 기간이 지나버린 후였다. 그렇게 나는 재수생이 되어버렸다.
3년제를 다니며 공부하는데,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었다. 고등학교땐 싫어하던 화학도 염기서열을 외우는 게 너무 쉬웠고, 여러 가지 과학 쪽에서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특히 의학 쪽 해부학과 의학용어를 배울 때면 나도 모르는 내가 되었다.
무서운 전공서적을 들고 이리저리 강의실을 옮겨 다니고, 3년 내내 숙제와 시험에 지쳐버릴 즈음 국가고시라는 엄청난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적관리를 나름대로 한다고 했는데, 막판에 긴장을 늦추는 바람에 성적이 좀 떨어졌고 내가 원하던 3대 대학병원 모두에서 낙방하며 나는 자존감을 잃었다.
그럼에도 성적이 상위권에 들던 내가 어째서 톱 병원들에 다 떨어지는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나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는 면접까지 보고 붙었는데, 나만 면접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여기저기 지원만 하다 포기한 채로 준종합병원 3차에 지원하고 거기서 신규생활을 시작했다. 알다시피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온 터라 나에겐 경력에 흠이 생겼고, 알아주는 3대 탑 병원이 아니기에 나의 위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였다.
그렇게 여기저기 떠돌다가 외래에서 조무사들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생활하다가 3교대는 체력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 상근직을 알아보게 되었다.
제약회사 아웃소싱 업체에서 하는 환자교육 프로그램이었다. 계약직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꿀보직이었다. 간호사에게 그런 일자리는 외래말 고는 거의 없었다. 근데, 외래도 토요일까지 일하는 곳이 많아서 주 5일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내가 맡은 업무는 제약회사 여러 업체가 추진하는 프로그램에 환우분들을 위한 전화상담 교육 간호사였다. 그렇게 아픈 분들에게 처음 시작된 나의 전화상담은 다른 제약회사의 프로그램으로 변경이 되었다.
굵직한 회사의 의학정보실이라는 부서에서 전화로 문의 사항에 대해 안내하는 일이었다. 약사분들의 숲에서 약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또한 모든 일들이 영어로 소통되기에 그것 역시 더 부담되었다. 그럼에도 어쩌랴? 을인 내가 안 한다고 할 수 있나? 정말 열심히 일을 배웠고, 그 안에서 스트레스가 가중되었고, 점점 몸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픈 몸으로 일을 하는데 나 혼자서 어렵다며 팀을 꾸려주셨다. 근데, 나보다 직급이 높다. 나는 사원인데, 그 사람은 나보다 경력이 많지도 않고 나이도 비슷한데 내가 먼저 이 일을 배워서 세팅까지 해 놓은 건데, 나보다 단지 방송통신대로 4년제 학위를 받았다며 주임을 달아준 것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도 없이 그저 학력이 나보다 높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먼저 세팅하느라 고생한 수고로움은 아무 가치도 없이 내팽겨졌다. 나보다 보수도 많이 받았다.
그러자 몸이 더 심하게 아파왔고, 나는 재택근무로 근무 방식을 바꿔야만 했다. 그렇게 버티다 나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다른 일로 변경을 요구했고, 한 달의 휴직을 내고 다른 업무로 투입되었다.
나는 아파서 그만두었지만 정작 나보다 늦게 들어온 경력도 없는 주임을 달아준 그녀는 내가 재택 근무하는 동안 일 하는 게 힘들었는지 아니면 경험이 없어서 어려운 건지 한 달도 하지 않고 퇴사를 해버렸다.
과연 3년제니까 일을 못하는 사람이고, 4년제를 나오면 일을 잘하는 것일까? 왜 사람들은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 보려고 하는 것일까?
나의 경력은 솔직히 말해서 창피한 수준이다. 1년 넘게 다닌 병원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많이 바꿨다. 단, 한 번도 퇴직금을 정산해보질 못했다. 그래서 나 역시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여러 가지 경험이 쌓여서 이젠 어떤 무엇을 하더라도 상담 분야에선 자신 있다. 환자분들도 내게 머리 숙여 인사를 전하신다.
너무 감사하게 친절하고 상세히 설명해 주셔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이다.
지금은 3년제가 없어지고 있다. 학력 차이로 인한 갈등이 많아서 대학 년제를 4년 제로만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3년제 간호사들을 바로 승격해 주거나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내 돈을 내서 1년 과정을 듣고 학위를 따야 한다.
아니면 시험을 보거나 아니면 2년 과정을 다시 듣거나 말이다. 고스란히 벌은 돈을 다 내고 또다시 학업을 해야만 4년 제로 인정받는다.
요즘 간호사 분들은 나보다 더 나약한 상태인 것 같다. 내가 간호사로 재직할 때 보다 더 환경적으로 나아졌다지만 의식 개선은 아직 필요한 것 같다.
지금도 태움 문화는 존재하고, 그 안에서 힘들고 어려운 간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버티는 게 쉽지 않다.
4년제를 나온 간호사들이 보기엔 3년제인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느낀 차별 대우는 존재했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간호사의 사명은 환자들에게 조금은 위로와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따뜻한 마음 간호를 하는 것이 아닐까?
말로만 하는 간호 말고 진심 어린 마음에서 하는 간호를 하는 것이 환자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