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교수 강신주 님이 아주 오래전 나 혼자 산다에 강연을 나와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밥을 먹는 게 아니라 사료를 먹고 있다"라고 밥을 정말 맛있게 먹어 본 적이 별로 없을 거라며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끼니를 때우기 위해 먹는 건 "사료"일 뿐이라고 그러니 누군가와 식사를 함께 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말이 내겐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매번 밥을 먹을 때마다 오늘은 뭘로 대충 때우나 싶었는데 정작 누군가와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이 어느 순간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같이 식사하는 일도 회식을 가는 일도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함께 하는 문화는 즐겁고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 밥을 먹을 때마다 간호사는 사료가 아닌 눈칫밥을 먹어야 했고 심지어 그 밥마저도 못 먹을 때가 많았다. 식당 끝나는 시간이 한참 지나서 눈치 보며 겨우 먹기도 하고 다 뿔어터진 짜장면을 겨우 한입 입에 넣기도 전에 다시 콜이 와서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의학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던 모습일 것이다. 그것도 레지던트나 인턴들이 의사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그리는 장면들로 말이다. 하지만 병원은 의사만 일하는 곳이 아니기에 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비슷한 모습들이다.
의사들만 밤을 지새우는 것이 아닌 3교대로 환자들을 위해 밤낮없이 일을 하는 간호사들과 여러 가지 운반을 해주시는 분들 청소여사님들과 경호원분들 등등 말이다.
의학드라마를 보면 너무 멋지고 젠틀하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전혀 딴판이었다. 욕설이 난무하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안하무인들의 끝판왕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채송화 선생님"은 극 중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식사를 엄청 느리게 하는 편이다. 말투도 느리고 행동도 느려서 뭔가 굼뜬 것처럼 보일 때도 많았고 서두르지 않고 느긋한 성미도 한몫했다.
그래서 다른 이들이 밥을 빨리 먹으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졌고, 급기야 매번 천천히 꼭꼭 씹어먹던 내가 빨리 먹다가 급체를 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니면 다 먹지도 못하고 다들 다 먹고 가니까 같이 따라 올라가야 했다. 그렇게 눈칫밥을 먹으니 소화가 될 리가 없었고, 스트레스로 인해 십이지장궤양을 진단받고 치료를 받은 적도 많았다.
왜 근데 밥을 먹을 때 일 얘기를 할까? 다른 시간이 있을 텐데 뭔가 불만들이 생기면 꼭 점심시간에 밥을 먹다 말고 꼭 그런다. " 아 맞다, 아까 너 왜 그렇게 했어? 내가 그렇게 하지 말랬지? 나참 말을 듣는 거니 먹는 거니? 이러면서 같이 먹고 있는 동료들과 다른 의사분들 앞에서 면박을 준다.
밥을 먹은 건지 만 건지도 모르는 채로 다시 또 일터로 걸어가는 내내 혼이 나가서 또 같은 실수를 하게 된다. 역시나 가만히 있지 않는다.
또 다른 곳에 취업되어 적응 중이던 상황이었는데, 환자에게 옮은 건지 물사마귀가 손가락 검지 중앙에 크게 커져서 자라고 있었다. 그때가 하필 피부과였는데 그 여자원장은 사마귀가 더러운 바이러스 균이 옮는 거라며 극혐 했다. 여자가 얼마나 더러우면 그런 게 생기냐며 나를 멀리했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는데 자신이 아끼는 손톱깎이를 내가 빌려가서 썼다고 하자 " 그 손톱깎이 소독 돌려 아니다 그냥 버려 균 옮은 걸 어떻게 쓰라고 생각이 있는 애니? 이러면서 내가 듣게 얘기했다. 무슨 에이즈 환자인 줄 알았네 진짜 바이러스가 옮기긴 해도 내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갑자기 작았던 사이즈가 커진 건데 어쩌라는 건지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날 급체해서 너무 어지럽고 다음날 출근하기도 싫고 아프다고 병가를 낼까 했지만 원장님께 사과하라는 선임의 말에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다른 시간들도 많을 텐데 왜 하필이면 밥을 먹는 시간을 이용하는 걸까? 사람이라면 실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의료진에게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더욱 강박증이 생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확인했던 일을 또 확인하고 반복적으로 묻고 또 묻는 일 그게 직업병으로 자리 잡았다.
내가 너무 모든 걸 맞춰주는 건가?
아니면 그들이 나를 얕잡아 보는 걸까?
맛있는 밥을 정말 음미하면서 즐겁게 식사를 하는 문화는 정녕 없을까?
우리나라는 온 식구가 둘러앉아 다 같이 같은 국그릇에 숟가락을 넣으며 먹는 음식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위생에 좋지 않다며 헬리코박터균이 옮을 수 있어서 따로 국그릇을 사용한다지만 그땐 정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뭔가 부족하지만 따뜻했고, 따뜻보다는 따스함이 묻어있는 정겨움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차갑고 냉철한 싸 기지들의 천국이 된 지 오래다.
밥 한번 제대로 먹기 힘든 우리 의료진 분들에게 조금은 양해를 구해보는 것도 반갑지 않을까? 그들도 의료진이기 전에 사람이고, 사료보다는 사랑을 먹고 싶은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