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카타리나 블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
얼마 전, 민희진 전 대표는 자신의 SNS에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표지 사진을 올렸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비웃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경영진이자 여론전의 고수인 그녀를, 소설 속의 힘없고 순진한 가정부 카타리나와 동일시하는 것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법적 공방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녀에게 제기된 배임 혐의가 사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무결한 희생자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무죄 여부'가 아니다. 이 책이 소환된 진짜 맥락은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한 인간을 사회적으로 살해하는 방식'의 소름 끼치는 유사성에 있다.
나는 민희진을 변호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그녀를 공격하는 '지금의 방식'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1. '증거'인가, '떡밥'인가
비판자들은 말한다. "경영권 탈취 의혹을 입증하기 위해 사적인 메신저 대화는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법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업무상 배임을 입증하는 과정에서 주고받은 메시지는 법정에서 유효한 증거로 채택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묻고 싶다. 지금 언론과 유튜브를 도배하고 있는 그 대화 내용들이, 정말로 '배임 혐의'와 관련이 있는가?
무속인과의 사적인 상담 내용, 동료 직원에 대한 뒷담화, 특정인에 대한 감정적인 비하 발언. 이것들이 그녀가 회사의 경영권을 탈취하려 했다는 법적 증거가 되는가? 아니다. 이것은 그저 그녀를 '비상식적이고 인성이 나쁜 여자'로 만들기 위한 '캐릭터 암살'용 소재일 뿐이다.
증거는 판사에게 제출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자료들은 광장에 뿌려져 대중의 안주거리로 씹히고 있다. 이것은 '범죄 입증'을 위한 공익적 보도가 아니다.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상대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여론 재판'이다.
2. '법정'이 아닌 '광장'에서의 처형
소설 속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을 파멸시킨 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아니었다. 팩트 확인보다 '헤드라인 장사'에 혈안이 된 타블로이드 신문 '차이퉁'과, 그 자극적인 기사에 열광하며 돌을 던진 대중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1974년의 독일보다 더 교묘하고 잔혹하다. 거대 기업은 정제된 보도자료를 뿌리고, 언론은 그것을 검증 없이 '단독' 타이틀을 달아 받아쓴다. 수십만 유튜버들은 팩트보다는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썸네일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화력의 비대칭성'이 발생한다. 민희진 대표 역시 기자회견을 열고 여론전을 펼치는 능동적인 주체다. 하지만 개인이 마이크 하나를 들고 소리치는 것과, 거대 자본과 언론 시스템이 수백 개의 확성기로 떠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민희진의 유무죄가 아니다. 자본이 자신들의 시스템을 이용해,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개인의 사생활을 발가벗겨 '마녀'로 만들 수 있다는 '구조적 공포'다.
3. 알 권리인가, 관음증인가
언론은 늘 "국민의 알 권리"를 방패로 삼는다. 하지만 한 개인의 내밀한 무속 신앙이나, 사적인 뒷담화가 국민이 꼭 알아야 할 공적 정보인가? 이것은 알 권리가 아니라 '관음증'이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자극적인 카톡 캡처를 중계하는 것이 아니다. 주주 간 계약의 불공정성 여부, 배임의 법리적 성립 가능성,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다수의 기사는 '분석'을 포기하고 '중계'를 선택했다. 그것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4. 결론: 시스템을 감시해야 하는 이유
다시 말하지만, 민희진 대표가 법을 어겼다면 처벌받아야 한다. 그녀는 성녀가 아니며, 경영인으로서 비판받을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 단죄는 '법정'에서 '증거'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광장'에서 '사생활 폭로'라는 인민재판 방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 사태를 불편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는, 민희진이 불쌍해서가 아니다. 절차적 정당성이 무시되고, 사생활이 여론전의 도구로 악용되는 이 선례가 남는다면, 그 칼날은 언젠가 또 다른 개인(우리)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명확하다. 폭력은 주먹으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다. 펜 끝으로, 키보드로, 그리고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즐기는 우리의 눈으로도 행해진다.
지금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민희진의 명예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언론 윤리와 이성'인가? 우리는 돌을 던지기 전에, 내 손에 들린 것이 정당한 법봉인지 아니면 관음증의 돌멩이인지 먼저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