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 5. 팬이 만든 힘이 회사보다 클 때

참여·창작·집단지성의 시대

by 닥터 F

"이 그룹, 누가 키웠어?"


이 질문에 엔터테인먼트 회사는 뻔뻔하게 대답한다. "저희의 체계적인 트레이닝 시스템과, 훌륭한 프로듀싱, 그리고 막대한 자본 투자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보도자료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경영진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저 말이 반은 맞고, 반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냉정하게 묻자. 데뷔 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을, 직캠을 찍어 나르고 영업글을 써서 '역주행'시킨 건 누구인가? 뮤직비디오 해석본을 만들어 유튜브 알고리즘을 태우고, 자막을 달아 해외로 퍼 나른 건 누구인가? 방송국 놈들이 악마의 편집을 할 때, 원본 영상을 찾아내 해명하고 여론을 뒤집은 건 누구인가?


바로 우리(팬덤)다.


회사는 '원석(아이돌)'과 '무대(소스)'를 제공했을 뿐이다. 그 원석을 갈고닦아 '보석'으로 만들고, 그 무대를 '신화'로 포장해서 세상에 내다 판 것은, 회사 홍보팀이 아니라 방구석에 있는 수만 명의 팬들이었다.


Chapter 5에서는 K팝 산업의 진짜 권력자가 누구인지 밝혀낸다. 우리는 단순히 소비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앨빈 토플러가 예언한 '프로슈머(Prosumer: 생산하는 소비자)'이자, 헨리 젠킨스가 말한 '참여 문화(Participatory Culture)'의 전위대다.


회사가 우리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 간단하다. 우리가 그들보다 일을 더 잘하기 때문이다.


1. 홍보팀은 퇴근하지만, 팬덤은 퇴근하지 않는다


(Chapter 5-1)

대기업 홍보팀 직원은 아무리 유능해도 '직장인'이다. 그들은 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고, 주말에는 쉰다. 그들에게 아이돌은 '업무'일 뿐이다.


하지만 팬덤은 다르다. 우리에게는 '퇴근'이 없다. 우리는 24시간 교대 근무로 돌아가는, 전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열정적인 마케팅 조직이다. 한국 팬이 잠들면 미국 팬이 일어나고, 미국 팬이 잠들면 유럽 팬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장악, 유튜브 조회수 총공, 음원 차트 줄 세우기... 이 막대한 트래픽을 회사 돈으로 사려면 수백억 원이 든다. (실제로 바이럴 업체 단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팬덤은 이 모든 걸 '무임금'으로, 심지어 '내 돈을 써가며' 해낸다.


이 챕터에서는 팬덤의 자발적 영업이 어떻게 수천억 원의 마케팅 비용을 절감시키는지, 경제학적 관점에서 팬덤 노동의 가치를 산출해 본다.


2. 공식보다 재밌는 비공식: 2차 창작의 힘


(Chapter 5-2, 5-3)

회사가 내놓는 '공식 콘텐츠(Official)'는 때때로 지루하다. 딱딱하고, 정제되어 있고, 무엇보다 '팬들이 뭘 좋아하는지' 포인트를 모를 때가 많다.


그 틈을 메우는 게 바로 팬들이 만든 '2차 창작물'이다.


멤버들의 케미를 엮은 '교차 편집 영상'

킬링 파트만 모은 '쇼츠 챌린지'

밈(Meme)으로 만든 '웃긴 짤방'


대중은 공식 뮤비보다 팬들이 만든 쇼츠를 보고 입덕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저작권을 위반한(?) 팬들의 영상이 회사를 먹여 살리는 꼴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저작권을 운운하며 팬들의 계정을 정지시키곤 한다. 멍청한 짓이다. 이 챕터에서는 "2차 창작을 막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임을 증명하고, 팬들의 창작 권리를 옹호한다.


3. 우리가 키웠다: 지분을 요구하라


(Chapter 5-4)

팬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내 새끼 내가 키웠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팩트다.


중소 기획사의 기적이라 불리는 방탄소년단(BTS)도, 역주행 신화의 아이콘들도, 그 시작점에는 언제나 미친 듯이 영업을 뛴 초기 팬덤이 있었다. 우리는 자본이 부족한 회사를 대신해 투자를 유치했고(앨범 구매), 홍보를 대행했고(SNS 영업), 위기 관리(여론 방어)까지 해냈다.


그렇다면 이제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의 지분(Equity)을 인정해라."


주식회사의 주주는 돈을 투자했기에 발언권을 가진다. 우리는 돈뿐만 아니라 '노동'과 '시간'과 '재능'을 투자했다. 그러니 회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갈 때, 핸들을 꺾을 권리가 있다.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야?"라고 회사가 묻는다면, 이 챕터를 들이밀며 대답해라. "내가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니까."


준비되었는가? 이제 방구석의 '소비자' 모드를 끄고, '크리에이터' 모드를 켜라. 당신이 쓴 영업글 하나, 당신이 만든 영상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내 가수의 운명을 바꾼다.


회사는 시스템을 만들지만, 문화를 만드는 건 언제나 우리였다. 이 자부심을 가슴에 품고, 우리의 권리를 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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