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관객’에서 ‘참여자’로

우리가 직접 문화를 만드는 시대

by 닥터 F

"제4의 벽(The Fourth Wall)을 부숴라."


연극 용어 중에 '제4의 벽'이라는 말이 있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벽이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관객은 이 벽 뒤에 숨어 있었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고, 관객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지켜보다가 박수나 칠 뿐이었다. 서로의 세계는 분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K팝은 이 오래된 규칙을 보란 듯이 박살 냈다. K팝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무너졌다. 우리는 단순히 '보는 사람(Viewer)'이 아니다. 우리는 '하는 사람(Doer)'이다.


응원법을 외쳐 노래의 빈 공간을 채우고, 휴대폰 플래시를 켜 조명을 대신하며, 챌린지 영상을 찍어 안무를 완성한다. 회사가 내놓은 콘텐츠는 '완성품'이 아니다. 팬덤의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반제품(Half-finished product)'이다.


이번 챕터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수동적 관객'에서 '능동적 참여자'로 진화했는지, 그리고 이 변화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권력 지도를 어떻게 뒤집어놓았는지 이야기하려 한다.


1. 응원법과 떼창: 음악의 최종 저작권자는 누구인가?


K팝 공연장 영상을 본 적 있는가? 외국인들이 가장 충격을 받는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응원법'이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수만 명의 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정확한 타이밍에 멤버 이름을 외치고, 특정 가사를 따라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추임새가 아니다. 응원법은 곡의 리듬(Beat)을 구성하는 하나의 '악기'다. 응원법이 빠진 K팝 라이브 음원을 들어봐라. 뭔가 허전하고 밋밋하다. 음악이 완성되지 않은 느낌이다. 팬들의 함성이 들어가야 비로소 그 곡의 다이내믹이 폭발하고, 전율이 흐른다.


즉, 음악을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조각은 작곡가가 아니라 '팬덤'이 쥐고 있다. 우리는 객석에 앉아 있는 소비자가 아니라, 무대 위 아티스트와 실시간으로 호흡을 주고받는 '공연자(Performer)'다.


회사는 티켓을 팔지만, 그 티켓값을 낸 우리가 없으면 그들의 공연은 '리허설'에 불과하다. 텅 빈 객석에서 아무리 완벽하게 춤을 춰봤자 그건 '쇼'가 아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섞여야 비로소 '문화'가 된다.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라. 당신의 목청이 그날의 공연을 '레전드'로 만든 것이다.


2. 놀이 노동(Playbor): 우리가 노는 것이 곧 가치다


인터넷에는 '놀이 노동(Playbor)'이라는 개념이 있다. 놀이(Play)와 노동(Labor)의 합성어다. 우리는 덕질을 하며 '논다'고 생각하지만,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는 엄청난 가치를 생산하는 '노동'을 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밈(Meme)'과 '챌린지'다. 회사가 신곡을 내면서 "이 춤 따라 해보세요"라고 챌린지를 만든다. 여기서 팬들이 그냥 똑같이 따라만 하면? 그 챌린지는 망한다. 재미없으니까.


하지만 팬들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달라진다.


춤을 우스꽝스럽게 변형하거나,


상황극을 섞어 스토리를 만들거나,


배속을 빠르게 해서 고난도 미션으로 바꾼다.


팬들이 '변주(Variation)'를 주는 순간, 죽어있던 안무는 생명력을 얻고 틱톡과 릴스를 지배하는 유행이 된다.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가 성공한 건 노래가 좋아서기도 하지만, 대중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챌린지를 '재해석'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우리가 트렌드를 만들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천만에. 그들은 '장난감(소스)'을 던져줬을 뿐이다. 그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방식(Rule)'을 창조한 건 우리다.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건 기획실의 엘리트들이 아니라, 방구석에서 폰을 들고 춤추는 너희들이다.


3. 해석의 권력: 정답은 회사가 아니라 우리가 정한다


과거에는 작가가 쓴 의도(오피셜)가 정답이었다. 독자는 그걸 외워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죽음(The Death of the Author)' 시대다.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작가가 손을 떠난 작품은, 그것을 읽는 독자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결정된다.


아이돌의 세계관을 보자. 회사가 아무리 거창한 설정집을 내놓아도, 팬들이 "이거 너무 오글거려, 노잼이야"라고 외면하면 그 설정은 폐기된다. 반면, 회사가 의도하지 않은 사소한 장면(예: 멤버 둘이 눈 마주치는 1초)을 팬들이 포착해서 "이건 혐관(혐오 관계) 서사야!"라고 해석하고 2차 창작을 쏟아내면? 그게 '공식(Canon)'이 된다.


다음 앨범에서 회사는 팬들이 만든 그 해석을 역수입해서 컨셉에 반영한다. 왜? 그게 팔리니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콘텐츠의 '의미'를 결정하는 권력(Hegemony)이 회사에서 팬덤으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우리는 회사가 주입하는 대로 받아먹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엮고 싶은 대로 엮는다. 우리의 해석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여론이 다음 앨범의 방향키를 쥔다. 사실상 우리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셈이다.


4. 미디어 권력의 이동: 내가 곧 방송국이다


예전에는 내 가수를 띄우려면 방송국 PD님에게 잘 보여야 했다. TV에 한 번이라도 더 나가야 대중이 알아줬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내 트위터 계정, 내 유튜브 채널, 내 블로그가 곧 '방송국'이다. 내가 찍은 4K 직캠 하나가 공중파 음악방송 카메라보다 퀄리티가 좋고, 내가 쓴 영업글 타래(Thread) 하나가 연예 뉴스 기사보다 파급력이 세다.


이제 아이돌은 방송국 PD보다 '네임드 팬(찍덕, 금손)'의 눈에 드는 게 더 중요해졌다. 홈마(홈마스터)의 사진 한 장이 그날의 스타일링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팬 튜브의 편집 영상 하나가 멤버의 예능감을 증명하는 포트폴리오가 된다.


우리는 '미디어'다. 정보를 확산시키고, 여론을 조성하고, 스타를 검증하는 권력을 우리가 쥐고 있다. 회사가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해도, 팬덤이 "그거 아니야"라고 반박 증거(영상, 녹취)를 타임라인에 쫙 깔아버리면 언플은 실패한다. 회사의 정보 독점 시대는 끝났다. 이제 정보의 유통망을 쥔 건 우리다.


5. 실전 마인드셋: "고마워하지 마라, 당당해져라"


많은 팬들이 회사에 대해 묘한 부채감을 느낀다. "그래도 우리 오빠 데뷔시켜 준 회사인데..." "떡밥(콘텐츠) 던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노예근성부터 버려야 한다. 회사가 떡밥을 주는 건 자선 사업이 아니다. 네가 그걸 가지고 놀아서(2차 가공), 바이럴을 만들고, 매출을 올려주길 기대하며 던지는 '미끼'다.


낚시꾼이 물고기에게 미끼를 던졌다고 물고기가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나? 아니다. 우리는 그 미끼를 물어주는 대신, 거대한 문화를 만들어줬다.


2차 창작물에 대해 저작권 운운하며 경고장을 날리는 회사가 있다면?

- 싸워라. "내 영상 내리면 너네 홍보는 누가 해주는데?"라고 배짱을 부려라.


회사가 팬들의 니즈를 무시하고 엉뚱한 컨셉을 밀어붙이면?

- 보이콧해라. "연출가는 우리야. 배우(아이돌) 망치지 마."


우리는 관객석에 앉아 박수만 치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이 무대의 조명을 켜고,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주인공'이다.


회사는 시스템을 깔았을 뿐이다. 그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며 '축제'를 만든 건 언제나 우리였다. 그러니 이제 제4의 벽을 넘어, 당당하게 무대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라. 그리고 요구해라. 공동 연출가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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