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인간, 8. 멍청한 질문을 던질 용기

AI가 내놓은 정답에 "그게 뭔 소리야?"라고 딴지를 걸었다

by 닥터 F

월요일 오전 10시. 주간 전략 회의실은 거대한 예배당처럼 엄숙했다. 전면의 80인치 스크린에서는 회사의 경영 지원 AI인 'K-Nex'가 생성한 4분기 마케팅 전략 기획안이 프레젠테이션 되고 있었다.


"타깃 오디언스의 구매 전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불안 소구' 메시지의 효율이 '희망 소구' 대비 240% 높습니다. 따라서 메인 카피는 '지금 놓치면 뒤처집니다'로 확정하는 것이 최적해(Optimal Solution)입니다."


완벽했다. 그래프는 우상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근거 데이터는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치밀했다. 팀장님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고, 동료들은 각자의 노트북에 'AI 제안 수용'이라고 받아 적고 있었다.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데이터가 내린 신탁이었으므로.


그 매끄러운 합의의 현장에서, 나는 불현듯 기이한 이질감을 느꼈다. '불안을 파는 게 최적해라고? 우리가 파는 건 학습지인데? 아이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게 정말 정답인가?'


나의 뇌는 '효율성'이라는 고속도로에서 이탈하여 비포장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냥 넘어가면 된다. 1시간 뒤면 점심시간이고, 나는 맛집이나 검색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목구멍에 걸린 그 이물감은 삼켜지지 않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스크린의 화면 전환이 멈췄다. 팀장님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타닥거리던 동료들의 키보드 소리가 뚝 끊겼다. 시선들이 내게 꽂혔다. 그들의 눈빛은 명확했다. '다 끝난 회의에 무슨 짓이야?'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내 인생에서 가장 멍청해 보일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정적.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이 윙윙거렸다. 팀장이 당황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소리라니? 데이터가 보여주잖아. 불안 마케팅이 효율이 좋다고. 자네 이해 못 했나?"


"아니요, 데이터는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말을 더듬었다. 논리적인 AI의 언어 앞에서 나의 인간적인 언어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뒤처진다'는 말을 하는 게... 정말 우리가 하고 싶은 일입니까? 수치는 좋을지 몰라도, 그건 좀... 슬프지 않나요?"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 그것은 단순히 분위기가 썰렁해진 것이 아니었다. 효율성의 성전에 '감정'이라는 불순물이 끼어든 것에 대한 집단적인 거부 반응이었다. 동료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김 대리, 지금 철학 수업 시간 아니야."*라는 눈빛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치심이 밀려왔다. 나는 시스템의 흐름을 방해한 멍청한 오류(Bug)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전율이 흘렀다.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나는 살아있었다 .


AI는 절대 "이건 슬프지 않나?"라고 묻지 않는다. AI에게 슬픔은 변수가 아니고, 윤리는 코딩된 제약 조건일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데이터의 인과관계를 뛰어넘어 "이게 옳은가?", "이게 아름다운가?"라는, 효율성 제로의 멍청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나의 질문은 묵살되었다. 회의는 AI의 원안대로 통과되었고, 나는 '눈치 없는 김 대리'가 되었다. 하지만 회의실을 걸어 나오는 내 발걸음은 묘하게 당당했다.


모두가 "예(Yes)"라고 입력된 알고리즘을 수행할 때, 홀로 멈춰 서서 "왜(Why)?"라고 묻는 것. 그것은 시스템의 입장에서는 '오류'겠지만, 인간의 입장에서는 '존엄'이다.


나는 오늘 회의실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가장 인간적인 순간을 획득했다. 나는 기계가 아니다. 나는 질문하는 동물이다. 그 멍청한 용기가 나를 구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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