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조금은 쌀쌀해진 가을 저녁, 연구소장입니다.
저희가 새로 시작한 'AI라는 외래종과 결합하기' 시리즈(https://brunch.co.kr/brunchbook/ai-formula)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기원하며 몇 자 적어봅니다. 사실 이 거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까지, 제 안에는 꽤 많은 망설임과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미토콘드리아'니, '진화'니... 조금 과한 비유는 아닐까, 괜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밤마다 저를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연구원님들께는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이야기를 꺼내 놓게 된 두 가지의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계기는, 이 책의 프롤로그에도 담았던 '미토콘드리아' 이야기였습니다. 20억 년 전, 생존을 위협하던 침입자가 오히려 세포의 일부가 되어 폭발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곱씹어보면서,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AI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존재가, 가장 위대한 진화의 파트너가 되었던 이 경이로운 사건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AI 시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조금 더 현대적인 이야기입니다.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 블루'에게 패배했을 때, 세상은 인간 지성의 종말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005년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에서 평범한 체스 선수와 평범한 노트북으로 이루어진 팀이, 그 어떤 슈퍼컴퓨터도, 그 어떤 체스 그랜드마스터도 모두 이겨버린 것입니다. 인간의 직관과 기계의 계산 능력이 '결합'했을 때, 각각의 능력을 단순히 합친 것을 넘어선,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지성이 탄생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제 머릿속에서 합쳐졌을 때, 비로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윤곽이 그려졌습니다. AI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멸종의 공포가 아니라,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결합'의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가 AI와 싸워 이기는 것이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파트너와 함께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존재, 즉 '켄타우로스'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조금은 거창하고 소심한 글을 쓰게 된 이유의 전부입니다.
물론 여전히 두렵고, 제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중요한 시대의 갈림길에서, 연구원님들과 함께 이 지적인 탐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면 더없이 든든할 것 같습니다. 부디 앞으로의 여정에도 날카로운 질문과 따뜻한 격려로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긴 연휴를 끝내고 두려운 출근을 앞둔 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연구소장 드림.
P.S. 사실 최초 제목은 '기생수 - AI와 결합하기' 였으나 저작권 문제로 바꿨다는 ...
'기생수: 더 그레이' [사진=넷플릭스] 출처 : 뉴스워커(http://www.newswork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