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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막 일장 Nov 11. 2023

연극 <기술 융합은 개뿔>

애정 없이는 하지 못하는 말

연극에 애정이 많을수록, 연극에 대한 애정을 놓지 못할수록 <기술 융합은 개뿔>이라는 연극에 감정 이입하며 볼 것이다. 때로는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 나머지 눈물까지 괜스레 핑 돌 것이다. 연극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 좋은 연극을 올리고 싶다는 이상과 부족한 예산으로 함께 일하는 동료의 희생을 바라야 하는 현실의 괴리 등을 <기술 융합은 개뿔>에서 구체적이면서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연극은 수많은 이야기를 크게 조연출, 배우, 작가, 지원사업 담당자 등의 입을 빌려 말한다. 그 이야기들은 각각의 이야기로 펼쳐지다 끝에는 하나의 이야기로 모인다.

사실 작·연출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극에 반영되다 보니 작가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연극인으로 느끼는 비애가 결말로 갈수록 과도하게 표출된 점이 없진 않으나 그럼에도 다양한 분야에 속한 연극인의 입장을 최대한 균등하게 반영하고자 애썼다. 무엇보다 연극인이 공통으로 겪는 어려움과 연극계 현 상황에 대해 내부인으로서 세세히 분석하고 문제 제기한 것만으로도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작·연출의 그러한 문제의식과 비판적 태도에는 진정성이 담겼고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대본과 연출을 통해 잘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작·연출을 맡은 이민구는 전반적으로 비유와 상징을 영리하게 잘 썼다. 현학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진부하지 않다. 또 어느 것보다도 연극인이 처한 상황을 명료하면서 가슴에 와닿도록 말한다.

1) 도미노: 도미노는 한 조각만 쓰러져도 우르르 쓰러진다. 연극은 사람이 만든다. 이 말은 곧 그 연극을 만드는 사람이 불가피하게 작업에 빠지게 되면 그 작업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도미노는 쓰러지는 조각을 신속하게 멈춰 세우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나머지 조각들도 쓰러진다. 극단, 창작 공동체 같은 팀도 그렇지만 개인으로서 연극인도 그러하다.

하나는 다른 하나에 영향을 생각보다 쉽게 미친다.

2) 집 짓기, 젠가: 연극은 ‘집 짓기’라는 행위가 상당히 강조한다. 집 짓기도 그렇지만 연극도 여러 사람이 자신이 가진 기술, 재능을 쏟아 만드는 공동 작업이다. 기술이 제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그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은 여전히 중요하다. 그렇기에 집 짓기나 연극 제작도 사람이 없으면 이뤄지지 못한다.

또 집과 연극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집은 생존을 위해 필요하고 연극은 마음을 살리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집과 연극을 만드는 사람은 정작 불행하고 나아가 안전하지 못하다면? 그 사람이 만든 집과 연극은 타인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반복적인 물음, “이 집엔 누가 살아요?”라는 질문은 집 혹은 연극을 만드는 사람은 과연 괜찮은 건지 우려를 담아 묻는 말로 들렸다.

한편 작·연출은 젠가를 연극의 중요한 소품으로 적극 활용한다. 배우가 위태롭게 쌓아 올리는 젠가를 통해 현실에서의 부실한 건축 현장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렇게 만드는 사람이 괜찮지 않은 연극 작업을 해도 되는가? 비판한다. 

3) 조명, 그림자: 연극에는 조명도 등장한다. 조명은 다른 등장인물과 달리 ‘물체’로 유일하게 존재한다. 작·연출은 조명을 통해 특정 직업군이 겪는 고충을 말하는 대신 보편적으로 연극인, 나아가 연극 그 자체에 대해서도 말하고자 한다. 

조명이 바닥에 내리쬐는 것을 ‘조명이 떨어진다’라고도 말한다. 그 말이 배우가 무대에서 조명받는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조명기가 물리적으로 떨어졌다는 말로도 들려 가슴이 철렁거렸다. 조명 오퍼레이터가 셋업 중에 사고로 다쳤거나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던 때가 순간 떠올랐다.

조명의 말 중 조명이 깨져도 대체할 조명이 많다는 말이 씁쓸하고 아프게 다가왔다. 사람이 다치고 심지어 죽어도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에 눈 깜박도 안 하는 고용주와 사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업계도 그렇지만 연극계도 비슷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연극계와 빛과 그림자는 이 대사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또 남은 조명은 뜨겁다는 말에서는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남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빛을 내리쬐지 못하거나 빛을 내리쬔다고 해도 깨져버리면 버려지거나. 혹은 간신히 쓰여도 뜨거워질 정도로 빛을 계속 내리쬐어야 하거나……. 각기 상황은 달라도 모두 다 불행하다.

조명에 이어 그림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끝내 데뷔하지 못한 사람들, 데뷔했지만 생계 문제, 블랙리스트 사태로 대표되는 정치 문제 등으로 떠났거나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대에 올라가지 못한 작품들도 있다.

그림자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작품들은 언제 그림자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명은 내가 무대에 나가면 그림자인 너희들을 꼭 비추겠다고 다짐하고 그 다짐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애타게 찾아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을 찾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일지라도?

4) 로또: 연극 배우로 활동하다가 넷플릭스 콘텐츠, 영화 등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더러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들에게 조명이 쏟아지니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는 다들 매체 활동을 염두에 둔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로또 1등 당첨만큼 매체 진출은 어렵고, 매체 진출로 유명해지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앞서 언급한 일과 달리 경쟁률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지원사업에 선정되는 것 또한 치열한 경쟁률을 뚫어야만 한다. 다들 그걸 알고 있지만 혹시 자신에게도 올지 모르는 희망을 바라며 사업지원서를 쓰고 선정자 발표 공고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5) 숫자: 연극은 대사를 통해서도 그렇지만 시각적으로도 다양한 수치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연극인의 수, 연극 관련 전공생의 수, 지원사업 총금액, 지원사업 신청자 수, 지원사업 경쟁률 등. 특히 경쟁률과 예산에 대해 아르코와 서울문화재단의 경우를 빌려 말한다.

숫자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도 힘들지만, 간신히 숫자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는 그대로 힘들다. 물가는 치솟고 있는데 지원금은 동결 상태이기 때문이다. 연극인으로 살아남기도 어렵지만 또 연극 자체를 올리는 것도 고된 현실이다.

한편 지원사업 담당자는 업무가 과도하게 몰려 한 담당자가 10개에 이르는 장르를 담당해야 한다. 그런데 연극의 경우 50명에 가까운 선정자들을 모니터링하고 그들의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지원사업 담당자가 말하는 구체적인 숫자를 들으면서 지원사업이 이대로 운영되어도 괜찮은지 고민하게 된다.

6) 회색 상의: 모든 배우는 회색 상의를 입었다. 이는 그가 빛이 될 수도 있지만 그림자가 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상황을 드러내는 거 같다. 여러 인물 중 특히 조연출의 불안정한 심리에 공감했는데, 사례금이 극히 적어도 이 연극에 참여해야 예술인 패스를 받을 수 있기에 기꺼이 합류하는 마음이 이해 갔다. 그에겐 몸이 투명해지고 있는 상태에서 벗어나 연극계에 무사히 자리 잡는 게 그 어느 문제보다 가장 절실할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이렇게 지치고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일지라도 연극을 생각하면 눈이 반짝였을 것이다. 매번 좀비로 등장하는 지원사업 담당 팀장조차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 울컥했다.

작·연출은 연극계 병폐와 연극의 위기까지 세세히 파헤치며 말하지만 그러한 말하기는 연극에 대한 애정이 여전히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다. 애정이 없다면 굳이 진심으로 쓴소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환멸감과 냉소만 품으며 조용히 연극계를 떠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작·연출은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연극으로써 해야 할 말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런 말들은 무대에만 머물기보다는 객석에도 끝내 닿았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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