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바 챔머스> 그림
올 초에 단톡방을 정리하고 그와 관련된 글을 올린 적이 있어요. 그때 어떤 분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친구목록 정리도 추천'하신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하여... 친구목록을 보았더니 글쎄, 1,200여 명이나 되지 뭐예요? 언제부터인가 프로필 업데이트를 하면 상단에 표시가 되는데, 그래, 거기에 참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 많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목록에서 정리한 사람들
사진과 이름을 보아도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
첫 번째 정리 대상은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잠시잠깐 스쳐 지났던 단톡방에서 어떤 이유로 추가했던... 그러나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을 만한 사람들이었겠지요. 또는 휴대폰 번호를 바꾼 사람들의 옛날 번호를 사용하는 어떤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때때로 '할머니'라고 저장된 이름에, 중학생 남짓한 아이의 얼굴이 떠 있기도 했거든요.
이런 카카오톡 친구는 사실 훨씬 더 일찍 정리했어야 할 만한 이들이었을 것이기에 쉬웠습니다. 그저 매일 짬짬이 시간이 날 때 모르겠다 싶은 사람들을 하나씩 '숨기기-차단-삭제' 하면 되었거든요. (카카오톡 친구목록 정리가 너무 불편합니다. 바로 삭제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어요.)
한 시절 인연이었지만 그 이후 따로 연락한 적 없는 사람
어딘가에서, 어떤 목적으로 잠시잠깐 모였다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런 만남들이 있었습니다. 교육이나 체험프로그램, 또는 어린 날의 소개팅 등이요. 이런 경우는 이름도, 얼굴도 기억은 났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앞으로도 그럴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한 명 한 명 '숨기기'로 했어요. (여기서부터는 너무 번거로워서 일단 숨기기까지만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숨기기 목록에 한가득 차있네요. 이거 쉽게 정리하는 방법 아시면 알려주세요!)
학교 동창, 옛날 직장 동료들
언젠가 뭔가 연락할 일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럴 일 거의 없을 이들이 아닌가 싶어요. 문득문득 업데이트되는 프로필을 보면서 아, 이렇게 살고 있구나. 지금은 이런 모습이구나... 생각하긴 했지만 그 이상 무엇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언젠가 다시 인연이 닿는다면 어디서든 다시 만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이들도 숨기기 목록으로 넘겼어요.
한때 친했고, 최근까지 연락도 했지만... 이제는 왠지 불편해진 사람
이런 사람도 꽤 많았어요. 학교에서든, 직장에서든 만나 한때는 꽤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도 뜨문뜨문 연락을 하거나, 가십과 같은 정보들을 주고받거나, 이따금 연례행사를 핑계 삼아 만나기도 했지만... 왠지 불편해진 사람들이요. 제가 너무 삶의 궤도를 급격하게 바꾸었기 때문일까요?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느 순간부터인가 만남이나 대화가 즐겁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자 왠지 불편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이 되었습니다. 추억도 있었고, 왠지 또 연락하게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일단은 '숨기기'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왕 정리해 보는 거, 내 삶이 정돈되고 확고해질 때까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싶었거든요.
어떤 공적/사적 과제가 남아있는 사람
애매했습니다. 엮인 일이 있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있긴 있더라고요. 그런 일이 아니라면 고민 없이 '숨기기' 했을 것 같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일단은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랬다가 며칠 후, '숨기기' 했습니다. 연락이 오거나, 혹은 내가 그 과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에 '숨기기' 목록에서 찾아보면 되겠지 하고요.
주로 일방적 연락을 받기만 했던 사람
많진 않았지만 이런 분들도 있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연락을 하거나 한 적이 거의 없는데, 상대방 측에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한다거나... 하여서 인연이 이어지고 있는 분들이요. 이제까지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 이런 분들도 '숨기기' 했습니다. '숨기기' 해도 연락은 받을 수 있으니까요.
나의 필요에 따라 저장해둔 사람
주로 유명하거나, 권위가 있거나, 높은 자리에 계신 분들이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정말로 존경하거나 하는 마음으로 저장해 두었다기보다는... 언젠가 도움이 청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저장해 두었다 싶더라고요. (멀리서나마 죄송합니다.) 그래서 그분들을 더 번거롭게 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숨기기 했습니다.
친구목록에 남겨둔 사람들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
가족이나 친구 등이 대다수입니다. 말 그대로 자주 연락을 하니까 남겨두어야 하는, 그런 사람들 말입니다.
앞으로의 삶의 경로가 유사한 사람
삶의 경로라기보다는... 관심사나 하는 일, 가치관이 유사한 분들이랄까요? 어쨌든 계속 연락할 일들이 생길 테니 남겨두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제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을 사람
동창이나 옛 직장 동료 중에서도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똑같이 연락을 안 한 지 꽤 되었는데도, 왠지 때가 되면 연락할 일이 생길 것 같다 싶은 사람들이요. 그리고 그렇게 연락한대도 '새삼 웬일이래?' 하지 않고, 그저 받아줄 것 같은 사람이요.
무슨 이유로든 고마운 마음이 드는 사람
왜인지 기억도 명확하지 않지만, 어쨌든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 있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연락을 주고받은지도 오래되었고, 앞으로도 그다지 할 일이 많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남겨두었습니다. 언제고 고마움에 보답할, 또는 표현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요.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 보니, 약 150명 정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실 한꺼번에 정리한 건 아니고, 며칠에 걸쳐서 애매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고민하다가 숨기거나 남기거나 했습니다. 1,200명에서 700명으로, 500명으로, 200명으로... 줄어들다가 150명까지 온 것이죠.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일단 조용해졌습니다. 카카오톡에 들어갈 때마다 생일이며, 프로필 업데이트며 하루에도 몇십 명씩 떠 있었는데 이제는 하루에 한 두 명 있을까 말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 더 관심 있게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간접적이긴 하지만, 제 삶이나 일상의 테두리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아, 내가 이런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구나, 이런 사람들을 편하게 느끼는구나... 싶다랄까요?
최근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실수'로 카카오톡이 강제 리셋된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즘에는 휴대폰 번호 저장 없이 카카오톡만 추가하는 경우도 많기에... 처음에는 '큰일 났다' 싶었다고 해요. 그런데 예상외로, 필요한 연락처는 많지 않았고 어떻게 다 연결이 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외려 고민 없이 카톡이 정리되어서 개운 했다고도요!! (이 말을 듣고, 이 방법이라면 고민하거나 번거롭게 한 명씩 숨기기 하지 않아도 됐겠다... 왜 생각지 못했을까 싶었습니다.)
카카오톡 친구목록 정리, 한 번 해보고 나니까... 혹여 삶이 번잡하고 정신없다면, 왠지 무엇이든 정리하고 싶다면 한 번 해보시기를 추천해 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