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그때 과즙세연과 LA 로데오 거리게 있었다.
슈가는 2024년 8월 6일 화요일 오후 9시 경 한남오거리 식당에서 지인들과 식사를 하면서 1차로 술을 마셨다. 슈가는 인근에 있는 음악 작업실로 이동해서 2차로 술을 마셨다. 슈가의 작업실은 한남동 나인원한남에서 500미터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나인원한남은 2024년 6월 1층 매물이 200억 원에 거래되면서 국내 아파트 역대 최고 매매가를 기록한 한남동의 고급 아파트다. 오후 11시 경 슈가는 술에 취한 채로 작업실에 있던 자신의 전동 스쿠터를 몰기 시작했다. 헬멧은 착용한 상태였다.
10분 쯤 뒤인 오후 11시 10분 경 슈가는 나인원한남 한남 정문 앞에서 급하게 우회전을 했다. 갑자기 균형을 잃고 오른쪽으로 쓰러졌다. 제법 세게 넘어지는 바람에 쓰고 있던 헬멧이 벗겨질 정도였다. 마침 인근을 순찰 중이던 경찰 기동대원 3명이 슈가에게 다가갔다. 넘어지기 직전에 슈가가 전동 스쿠터를 타고 옆을 스쳐 지나갔던 경찰관들이었다. 경찰관들은 슈가를 도와주려다가 술 냄새를 맡았다. 음주 운전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경찰관들은 인근 파출소로 지원 요청을 했다. 곧바로 순찰차가 도착했다. 슈가에 대한 음주 측정이 이뤄졌다. 슈가의 혈중알콜농도는 0.227%에 달했다. 면허 취소 기준인 0.08%의 3배에 육박했다. 도로교통법 제148조2에 따르면 전동 스쿠터를 이 정도로 만취한 상태로 몰면 슈가는 면허 취소는 물론이고 형사 처벌 대상이었다. 심지어 혈중알콜농도가 0.2%를 넘었기 때문에 가중 처벌 대상이었다. 2년 이상 5년 이하 징역에 최대 벌금 2000만 원이었다.
기동대원들은 슈가가 BTS의 슈가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슈가가 만취 상태여서 조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일단은 슈가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미 음주 측정으로 음주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슈가가 몰았던 전동 스쿠터도 압수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사안은 아니었다.
그런데 슈가의 소속사인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빅히트뮤직의 초동 대응에서 일단 문제가 생겼다. 빅히트뮤직은 다음날인 8월 7일 수요일 “슈가가 음주 상태에서 헬멧을 착용한 상태로 전동 킥보드를 이용했다”는 1차 입장문을 발표했다. 음주 상태인 건 인정했지만 방점은 헬맷을 썼고 전동 킥보드를 탔다는 부분이었다. 슈가 역시 소속사의 입장문이 나온 이후 위버스를 통해 “술을 마신 후 전동 킥보드를 타고 귀가했다”는 해명글을 올렸다. 마찬가지로 방점은 전동 킥보드였다.
전동 킥보드와 전동 스쿠터는 모두 원동기 장치 자전거지만 음주 운전 처벌의 수위는 천양지차다. 킥보드는 범칙금 10만 원 처벌 대상이다. 스쿠터는 유기 징역형까지도 가능하다. 빅히트뮤직은 다음날인 8월 8일 목요일 2차 입장문을 내놨다. “당사는 아티스트가 이용한 제품을 안장이 달린 형태의 킥보드라고 판단해 전동 킥보드라고 설명드렸다”고 해명했다. 소속 아티스트가 음주 스캔들에 휘말렸는데 차종조차 정확하게 파악을 못한 것이다.
덕분에 슈가의 음주 스캔들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첫 단추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대중이 슈가와 빅히트뮤직를 불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이브의 매출에서 BTS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기준 65%에 달했다. 군백기로 BTS의 매출 비중이 일시적으로 줄었다곤 하지만 BTS가 여전히 하이브의 최대이자 최고의 IP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최악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한 것이다.
아이돌 산업의 최대 리스크는 언제나 사람이다. 아이돌 산업이란 게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팬덤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팬덤은 아이돌에 사랑해주는 존재지만 한번 실망하면 무섭게 돌아설 수도 있는 소비자 집단이다. 팬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돌 아티스트와 팬들의 정서적 연결이다. 그 기초는 신뢰다.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절대 절대 해선 안 되는 짓이 거짓말이다.
빅히트뮤직은 전동 킥보드를 전동 스쿠터로 잘못 발표했다지만 대외적으론 슈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졌다. 슈가 본인이 전동 킥보드라고 소속사에 설명했을 수도 있다. 슈가 말만 듣고 전동 스쿠터라고 했다고 해도 치명적 실수다. 음주 운전은 아이돌의 연예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나락에 간 것도 2024년 5월 9일 일으킨 음주 운전 사고 때문이었다. 게다가 김호중의 치명타는 음주 운전을 은폐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대중은 음주 운전에는 실망했지만 거짓말에는 분노했다. 전동 킥보드와 전동 스쿠터는 세 글자 차이지만 슈가를 나락으로 보낼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킥보드와 스쿠터에서 생긴 불신은 CCTV 영상들이 속속 공개되면서 점점 커졌다. 슈가는 “집 앞 정문에서 전동 킥보드를 세우는 과정에서 혼자 넘어졌다”고 해명했었다. 2024년 8월 14일 YTN를 통해 공개된 CCTV 영상을 보면 집 앞도 아니었고, 전동 킥보드도 아니었고, 세우는 과정도 아니었다. 급기야 하이브 용산 본사 앞엔 성난 팬들의 화환이 늘어서기에 이르렀다. 화환에는 “포토라인에 서기 전에 탈퇴하라”며 “우리 손을 놓은 건 너야”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슈가의 본명인 민윤기를 호명하면서 일부 팬들이 사실상 민윤기의 BTS 탈퇴를 요구한 것이다.
군백기가 모두 끝나고 BTS 7명의 완전체 활동이 가능해지는 시기는 1년 뒤인 2025년 6월이다. 전세계 BTS 팬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디데이다. 하이브는 말할 것도 없다. 하이브 주주들도 마찬가지다. 정작 슈가의 음주 스캔들로 BTS 완전체 활동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슈가 탈퇴 여부를 쟁점으로 BTS 팬덤이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BTS 7명 완전체 복귀는 BTS의 팬덤인 아미도 모두 돌아와야만 비로소 완성된다. 이미 거짓말 논쟁으로까지 번진 슈가 음주 스캔들이 하이브의 비상한 위기인 이유다. 더 이상 킥보드냐 스쿠터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실 하이브가 이렇게 리스크 매니지먼트에 실패한 건 슈가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22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와 마찰을 빚었을 때도 하이브는 미숙했다. 하이브는 산하 레이블인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배임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의 인수자를 물색했고 어도어의 최대 IP인 뉴진스를 독립시킬 방법을 찾았다는 내용이었다.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 경영진들을 “개저씨”라고 부를 정도로 노골적으로 하이브를 배신했다. 그렇지만 법적으로는 배임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지난 5월 31일 재판부도 민희진 대표가 배신은 했지만 배임은 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결국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해임하는데 실패했다.
대신 민희진 대표한테 역공을 당했다. 민희진 대표의 무기는 뉴진스의 팬덤이었다. 민희진 대표는 하이브가 뉴진스를 콩쥐처럼 홀대했다고 주장했다. 3시간 넘는 격정 기자회견을 통해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 팬덤과 하이브 사이를 갈라놓는데 성공했다. 민희진 대표는 뉴진스의 다섯 소녀들을 사랑하는 뉴진스 엄마가 됐다. 하이브는 뉴진스를 괴롭히다 못해 뉴진스를 베껴서 다른 아이돌 그룹 아일릿을 데뷔시킨 악당 개저씨가 됐다. 팬덤 비즈니스의 주인은 팬덤이다. 팬덤이 그렇게 믿으면 그런 것이다.
이전투구 속에서 민희진 대표도 개인적 팬덤까지 확보했다. 민희진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비쥬얼 디렉터 시절부터 이미 업계에선 네임드였다. 하이브와 맞짱을 뜨는 과정에서 민희진 대표는 조직 안에서 꼰대 아저씨들과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사회적 아이콘이 됐다. 민희진 대표와 대중 사이에 정서적 교집합이 생긴 것이다. 아이돌을 만들던 민희진 대표가 스스로 아이돌이 된 것이다. 민희진 대표를 법적으로 정리하려고 했던 하이브는 이제 민희진 대표와 민희진 대표의 팬덤까지 상대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다. 하이브의 완패였다.
반면 하이브는 끊임없이 팬덤과의 교집합을 줄여갔다. BTS를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시가 총액 1등 연예 기획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민희진 대표를 통해 공개된 방시혁 하이브 의장의 “에스파 밟으실 수 있죠?”라는 카톡부터가 치명상이었다. 덕분에 방시혁 의장은 뉴진스 팬덤 뿐만 아니라 에스파 팬덤한테도 공공의 적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뉴진스와 에스파는 서로 소속사가 다른데도 서로의 신곡 챌린지에 참여하면서 콜라보를 했다. 반면 뉴진스는 하이브 소속 아티스트들과는 아무런 콜라보도 하지 못했고 않했다. 결과적으로 하이브는 뉴진스와 에스파 팬덤에 포위됐고 수장 방시혁 의장은 팬덤의 적이 되고 말았다.
하이브는 2023년 2월 9일 이수만 회장과 SM엔터테인먼트 지분 14.8%를 4229억 원을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방시혁 의장이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 모두의 수장이 됐던 것이다. 카카오와의 공개 지분 경쟁 끝에 하이브가 한 발 물러나긴 했지만 이때 방시혁 대표와 하이브는 확실하게 야심을 드러냈다. 에스파도 뉴진스도 BTS도 모두 소유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아이들 팬덤은 방시혁 의장이 돈으로 에스파를 사는 게 무산되자 뉴진스에게 에스파를 밟으라고 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민희진 대표는 방시혁 의장의 카톡을 공개하면서 이런 팬덤의 불신에 살짝 넛징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2024년 4월 22일 코첼라 무대에 오른 르세라핌이 라이브 논란에 휘말렸다. 르세라핌의 실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팬덤의 라이브 실력 비판에 대응하는 르세라핌의 태도가 문제였다. 슈가의 킥보드와 스쿠터 논쟁과 닮은꼴이었다. 호미로 막을 일을 팬덤과 기싸움을 벌이면서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으로 리스크를 키운 것이다. 2024년 들어서 바람 잘 날이 없는 하이브를 둘러싼 리스크는 아이돌 산업 특유의 재해이면서 동시에 인재일 수 있는 것이다. 실수가 반복되면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다.
하이브의 최고법무책임자는 정진수 부사장이다. 정진수 부사장은 김앤장에서 15년 동안 일했고 엔씨소프트에서 11년 동안 일했다. 2022년 8월 하이브에 합류했다. 정진수 부사장을 하이브에 합류시킨 인물은 최근 사임한 박지원 하이브 대표였다. 박지원 대표는 넥슨코리아 대표를 역임했다. 여기에 민희진의 난 과정에서 민희진 대표를 대체할 어도어의 신임 대표로 물망에 올랐고 박지원 대표의 후임으로 선임된 이재상 하이브 최고전략책임자가 하이브의 탑 매니지먼트였다. 유능한 경영자들이지만 아이돌 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진은 분명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의 경영자는 유능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합리적 결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이다. 대중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동물적 본능이 필요한 것이다. 파란색 야구모자를 쓴 민희진 대표가 보여준 것이 그것이다.
하이브에서 동물적 본능을 가진 인물은 당연히 방시혁 의장이다. 문제는 방시혁 의장 본인도 본의 아니게 리스크의 중심에 서버렸다는 것이다. 방시혁 대표는 2024년 8월 8일 업로드된 유튜브 채널 아이엠 워킹의 영상에서 갑자기 등장했다. 혁이 왜 거기서 나와의 상황이었다. 아이엠 워킹은 LA 비버리힐즈와 로데오 거리를 오가면서 지나가는 여성과 주차된 슈퍼카를 촬영해서 업로드한다. 방시혁 의장은 52분 길이의 영상에서 초반 47초에 3초 가량 등장한다. 로데오 거리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찍힌 것이다.
화근은 동행들이었다. 방시혁 의장의 양쪽엔 아프리카BJ로 유명한 과즙세연과 언니가 있었다. 과즙세현은 최근 넷플릭스 예능 인플루언서에도 출연하고 있다. 아프리카 별풍선으로 2023년에만 30억 원을 번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방시혁 의장은 1972년 생이다 과즙세현은 2000년 생이다. 스물 여덞 살 차다. 초대형 엔터테인먼트 상장사의 수장이 인플루언서와 로데오 거리에서 목격된 것이다. 게다가 방시혁 의장이 365억 원을 주고 사들인 고급 주택이 목격 장소로부터 불과 5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 분명 오너 리스크였다.
이때도 진짜 문제는 리스크 매니지먼트였다. 하이브는 “예전에 지인과 모이는 자리에서 두 분 중 언니 분을 우연히 만났고, 엔터 사칭범과 관련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조언을 준 바 있다”라며 “이후 두 분이 함께 LA에 오면서 관광지와 식당을 물어와서 예약해 주고 안내해 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걸 리스크라고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 대응이었다. 한국 주식 시장은 오너의 사생활 리스크에 매우 예민하다. 오너 리스크 때문에 주가가 흔들린 경험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이브 주가는 영상이 공개된 2024년 8월 8일 6% 넘게 폭락했다.
2024년 들어서 하이브는 하루 아침에 시총이 1조 원 넘게 증발하는 하이 리스크를 계속 겪고 있다. 민희진의 난부터 르세라핌 논란에서 과즙세현 스캔들에 슈가 음주 운전 사건까지 리스크의 성격은 다양하다. 반면 하이브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는 시종일관 부족했다. 대중의 신뢰와 지지와 마음을 얻어야 이기는 시장에서 하이브는 대중을 속이거나 맞서거나 싸우려고만 했기 때문이다. BTS로 전세계의 마음을 얻어서 아미로 만든 하이브답지 않았다.
방시혁 의장은 2003년 JYP엔터테인먼트의 박진영 프로듀서와 함께 미국 진출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케이팝이 인기인 시절도 아니었다. 누가봐도 시기상조였지만 31세 방시혁은 도전했다. 비용을 아끼느라 방시혁은 박진영과 1년 동안 LA의 아는 신혼 부부 집에서 월세 살이를 했다. 방 한 칸에서 지내며 음악은 차고에서 만들었다. 21년 뒤 방시혁 의장은 370억 짜리 저택에서 하이브 아메리카 CEO 스쿠터 브라운과 미국 진출을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과즙세현과 LA 길거리에서 목격됐다. 하이브의 리스크는 결국 초심이 문제다.
온라인 인물 도서관 서비스 라이프러리의 인물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됐습니다.
중소기업뉴스에 기고했던 칼럼의 원본 원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