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과 막내사원 사이에서, 과거의 나를 돌이켜보기
(2021년 시점에서 쓰인 글입니다.)
모든 것이 결과로 설명된다고들 한다.
이번에 OOO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작할 때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론을 예상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겨볼 만한, 가능성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회계법인에서도 프로젝트를 제의했고 우리도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었다. 안 될 수도 있지만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던 거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순탄하지 않았다. 자료 준비하는 데만도 한참 걸렸는데 1차로 자료를 제출하고 나서도 계속 이런저런 자료를 끊임없이 요구받았다. 추가 대응을 위해 자료를 한번, 두 번 준비하다 보니 이게 되기는 되는 건가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대를 크게 걸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과세관청에서 원하는 자료를 준비해 주는 것뿐이다. 이미 기존에 처리해 놓은 것에 대한 자료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뭘 바꿀 수도 없었다. 시작부터 추가 대응까지 장장 6개월에 걸쳐 그러니까 작년 하반기에 걸쳐 일을 진행하고 12월쯤이 되어서야 마지막 자료 요청을 끝으로 기다림만 남았다.
요 며칠, 팀장님과 막내 사원 사이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헤아려보고 있다. 둘의 마음 모두 이해는 가는데 팀장님은 팀원을 아끼는 마음에, 사회생활을 좀 더 한 어른으로서 좋은 마음에서 충고를 하려 했는데 깔끔하게 충고만 하면 될 것을 그전에 쌓여있던 자신의 스트레스가 더해져 큰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막내는 막내대로 팀장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기다렸다가 안 한 건데, 나보고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인가 하며 억울한 마음을 품고 있는 거 같았다.
팀장님이 사과를 한다고 나와 다른 동료가 있는 자리에서 막내에게 사과를 했지만 막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런 말을 들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심이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던 건지 시큰둥했다. '사과를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받아들여야 그게 사과예요'라고 하려다 팀장님한테 너무 잔인한 말처럼 들릴 것 같아 이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팀장님이 나중에 따로 그랬다. 사실 자기가 100% 잘못했다고 느껴서 사과했다기 보단 앞으로 우리가 일을 해야 할 사이니까 그래서 사과한 마음도 있었다고. 그런데 사과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 다 느껴진다. 그 왜 있잖아, 일본이 백날 우리한테 사과했는데도 뭐라 그러냐고 하지만 우리는 그게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거다. 마찬가지다.
제삼자인 내가 첨언하자면, 팀장님은 우리 모두 있는 자리에서가 아닌 별도로 둘이 자리를 마련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했으면 좋았을 거고 막내는 막내대로 사회생활의 태도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팀장님이 그렇게 심하게 화를 내시는 건 자제해 주셨으면 한다고 하면 좀 풀어지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의 경험도 생각이 났다. 다른 회사에 다닐 때, 나는 우리 부서를 담당하는 제일 높은 사람 앞에서 씩씩댄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은 솔직히 나를 화나게 했으므로 그럴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길게 보면 화를 내서 나한테 득 될 게 하나도 없었다.
화를 내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내 바로 위에 있는 상사가 나를 불러서 이야기했다. 네가 화나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런 태도는 좋지 않은 것이니 가능하면 내가 사과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상사는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대신 잘 생각해 본 다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어차피 계속 그곳을 그만두려고 이직 준비를 하고 있어서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같잖은 인간, 이직만 하면 절대로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니 나에게 중요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상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지금 화나고 짜증 나고 내 감정에 갇혀있으니까 나를 가만히 놔두고 밖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자.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 상황을 보려고 해 보자.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마음이 내키진 않지만 사과를 하자'였다. 하루 이틀 더 생각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건 시간을 끌수록 모양새가 좋지 않아 졌다. 사과를 할 거면 오늘 퇴근 전에 깔끔하게 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사과를 했는데 오히려 그분이 나에게 딱히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내 마음 편하려고 한 것도 있긴 한데 결론적으로는 좋게 끝났다.
나도 막내한테 이렇게 하라고 조언해줘야 했을까? 사실 남의 일에 끼기 싫은 것도 있었고 내 일도 바빠서 그날은 신경 써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간 이런 일들이 빈번했던 것도 사실이고 (그동안 비슷한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팀장님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두는 건 아닌 거 같아 다음 주에 다시 한번 말해봐야겠다.
<어느 하루 끝에서 (하)>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