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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Jul 02. 2024

6살 딸과 엄마, 스위스 2주 여행기 (4) 베른

에메랄드 빛 강물과 돌바닥


24년 6월 6일(목) 한국은 현충일이다. 휴일에 어디 가냐는 조리원 동기들의 카톡 아우성이 이렇게 현실감 없을 수가.



오늘은 루체른 시내를 한번 더 보고 슬슬 베른으로 넘어가려는 계획이었는데, 아침부터 한국에서 가져온 숫자놀이 책을 하는 걸 지켜보다 열이 폭발하고 말았다. 주머니에 노란 구슬, 초록구슬이 몇 개인지 1부터 7까지 세다가 그다음을 못 세고 ‘열인가? 열하나인가?’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자니 갑자기 부아가 치밀었다.


근데 내가 언제 숫자를 제대로나 가르쳐 준 적이 있었나? 아침엔 출근하기 바빴고, 퇴근해 집에 와서는 이제 밤이니 어서 자라고 재촉하기 바빴다. 그럼에도 왜 나는 당연히 여섯 살이면 열까지는 셀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 당장 한국에 돌아가서 학습지라도 시켜야 하나, 결국 내 딸도 나처럼 수포자의 길을 걷는가 하며 분노 게이지가 급발진했는지 모르겠다. 괴물 엄마 목소리에 애는 울고…



아 미안하다… 서로 진정하고 나니 점심때가 되어 시내 구경은 과감히 포기한다.  알고 보니 호텔 맞은편에 작은 규모의 스위스 백화점 체인 Globus 가 있는 게 아닌가? 롸는 쇼핑이라면 질색팔색이라 일단 망고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이고, 빠르게 백화점을 한번 훑은 뒤, 근처 로컬 피자집에서 두 조각 포장해 놀이터로 가서 먹고 놀았다.


느즈막히 두시 넘어서 베른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한 시간 뒤 도착한 베른은 구시가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에메랄드색 강물과 돌바닥까지 완벽했다.



사실 베른에 온 이유는 장미공원과 곰정원 때문이다. 장미공원은 이제 막 꽃이 만개하려고 해서 사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여기에도 역시 놀이터가 있다. 에메랄드 빛 강물을 낀 도시가 내려다보이고 꽃으로 둘러싸여 있는 이런 정원에 매일 산책 오는 아이들은 얼마나 축복받았을까.



곰 보여준다고 꼬셔서 데리간 곰정원. 도시 한복판에 곰들이 살다니… 생각보다 가까이 보이는 곰들을 이삼십 분 관찰했다. 트램을 타고 다닐걸, 괜히 여기저기 지도상 거리를 대충 감으로 걸어 다니다 매일같이 만보 넘게 걸었더니 다리가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여기선 돌바닥에 캐리어와 트라이크를 끌고 다니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돌덩이 같은 짐들을 들었다 내렸다까지 하니 팔이 너덜너덜한 기분이었다.



곰을 보고 왔으니 곰인형 하나 사고 곰모양 과자도 먹고, 길거리 공연도 봤다. 오늘은 국물이 당긴다. 오가는 길에 발견한 구시가지의 베트남 음식점을 들렀다. 면을 좋아하는 로아도 꽤나 잘 먹었다. 그래도 우리 둘이 쌀국수 한 그릇, 스프링롤 나눠 먹은 게 8만 원 나온 건 너무했다. 사실 맥주도 한잔 시켰지만 점점 프랑에 감을 잃어가는듯 하다.



해가 보통 9시 넘어지다 보니 이곳엔 정말 저녁이 있는 삶이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저녁 6시가 넘어가면 길가에 일렬로 늘어선 음식점 야외 테라스에 맥주 한잔씩 하며 해피아워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주위에 애가 있든 없든 노상흡연 또한 이상하리만치 만연하다.


물론 나는 지금 놀이터가 있는 삶이기 때문에 자투리 시간에 다시 주변 playground를 열심히 찾았다. 구글에서 도로뷰유와 리뷰까지 확인하며 갈만한 곳인지 빠르게 스캔하고 방문해 대부분 실패가 없었는데, 베른에서 굽이굽이 찾아간 놀이터는 아주 묘하게 스산했다. 문닫을 시간 무렵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고, 모든 놀이 기구를 누군가가 직접 손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롸도 느낌이 싸한지, 삼십 분만에 나가자고 한다. 역시 한국이든 스위스든 같이 어울려 놀지 않아도 놀이터에 애들이 있고 없고 차이는 크다.


그래, 우리 이런 날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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