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타이밍을 재는 자들의 치명적 착각
원화 자산에만 묶여 있는 것의 위험성을 깨닫고 달러 투자를 결심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장벽이 있다. 바로 지금의 환율이 너무 비싸다는 심리적 저항감이다. 환율이 1,400원인데 지금 미국 주식을 사면 상투 잡는 것 아닌가, 1,200원대로 떨어지면 그때 달러를 사겠다는 이야기들을 흔히 한다.
자본 시장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자, 가장 안타까운 착각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율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달러 자산을 사겠다는 전략은 십중팔구 실패한다. 환차손을 피하려다 자산 증식의 거대한 기회비용을 날려버리는, 소탐대실의 전형적인 함정이다.
1.[오만] 환율의 고점과 저점을 맞출 수 있다는 착각
환율은 신의 영역이다. 각국의 금리 차이, 경제 성장률, 지정학적 위기, 수출입 수급 등 셀 수 없이 많은 변수가 얽혀서 매초마다 가격을 만들어낸다. 내로라하는 경제 석학들과 글로벌 투자 은행들조차 매년 환율 전망을 틀린다.
그런데 평범한 개인이 뉴스와 유튜브 몇 편을 보고 환율의 바닥을 잡아내겠다는 것은 오만을 넘어선 무모함이다. 1,400원이 고점 같지만 내일 중동에 미사일이 날아가면 1,450원이 되고, 1,300원이 바닥 같지만 수출 쇼크가 오면 1,350원으로 튀어 오르는 것이 자본 시장이다. 타이밍을 재겠다는 욕심은 결국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변명거리가 된다.
2.[손실] 환율 10% 기다리다 주가 30% 상승을 놓친다
환율이 1,400원에서 1,200원대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이유는 약 10% 남짓한 환전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10%를 아끼기 위해 우리가 시장 밖에서 관망하는 동안, 기축통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 우량 기업들의 자산 가치는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우상향한다.
환율이 비싸다며 환전을 미루는 동안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들의 주가나 S&P 500 지수가 20%, 30% 올라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환율이 드디어 내가 원하는 가격까지 떨어졌을 때, 정작 내가 사려던 미국 주식의 가격은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나가 버린 뒤다. 환차손 몇 푼을 피하려다 자산 시장의 거대한 상승분에 올라탈 티켓을 스스로 찢어버리는 꼴이다.
3.[상쇄] 위기 때 진가를 발휘하는 달러의 방어력
미국 주식을 달러로 직접 보유하는 것에는 엄청난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바로 주가와 환율이 서로를 방어해 주는 거대한 시소게임이다.
글로벌 경제에 위기가 닥치면 전 세계 자산 시장이 얼어붙고 미국 주식도 폭락한다. 하지만 이때 공포에 질린 전 세계의 자본은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 달러로 몰려든다. 내 미국 주식 계좌의 수익률은 마이너스가 되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원화로 환산한 내 자산의 총가치는 놀라울 정도로 덜 빠지게 된다. 반대로 시장이 평화로워 환율이 떨어질 때는 미국 주식이 상승장을 그리며 환차손을 가볍게 덮어버린다.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것 자체가 이미 완벽에 가까운 위험 분산 시스템이다.
4.[실행] 환율창을 끄고 자산의 수량을 늘려라
우리가 달러를 사는 목적은 환치기를 해서 단기 차익을 남기려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녹아내리는 원화의 한계에서 벗어나, 글로벌 1등 기업들의 성장성에 내 자산을 묶어두기 위함이다.
가장 확실한 생존법은 기계적인 분할 매수다. 매달 월급날, 환율이 1,300원이든 1,400원이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해진 금액만큼 달러로 환전해 미국 주식이나 ETF를 사모아야 한다. 비쌀 때도 사고 쌀 때도 사면서 평균 단가를 맞춰나가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매일 변하는 환율의 앞자리가 아니라, 내 계좌에 꾸준히 쌓여가는 우량 달러 자산의 수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