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내부자 시각에서 본 ‘작은 이야기들’(4)

결제대행사(PG)의 구조적 모순 – 위험은 외주로, 책임은 아래로

by LIFOJ

요즘 들어 PG업계 담당자들과 통화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우리는 송금은 안 합니다. 단지 결제만 중계할 뿐이에요.”
그 말을 들으면 묘하게 낯설지 않다. 예전 금융위기 때, 서브프라임 채권을 팔던 은행들이 한 말과 똑같다.
"우리는 유통만 했지, 그걸 만든 건 아니니까요."


1. 결제대행사란 무엇인가 – 시스템의 중심이자 가장 빠진 구멍


PG(Payment Gateway)는 이름 그대로 결제의 ‘게이트웨이’다.
쇼핑몰, 앱, 플랫폼, 해외 가맹점 등에서 발생한 결제를 카드사나 은행으로 중계해준다.
대부분의 온라인 결제는 PG를 거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구조가 너무 ‘얇다’는 점이다.

수익구조도 얇고, 책임도 얇다.
결제 데이터를 통과시켜주고 소액 수수료만 가져간다.
대신, 실물 상품의 적법성, 결제자의 신원, 정산 이후의 자금 흐름에 대해선 철저히 선 긋는다.

“그건 가맹점 책임입니다.”

“우리는 기술 제공자일 뿐입니다.”


2. 위험은 누구에게 외주화되는가


이런 구조에서 등장한 게 리셀러(Reseller), 대행사, 통합솔루션 제공사다.
PG 본사는 “가맹점 직접 모집”을 줄이고, 하위 파트너들이 가맹점 개통, 정산, 민원 응대를 맡도록 한다.
즉, 돈을 벌면서도 위험은 중소사업자에게 외주화한 구조다.

그 결과, 발생하는 일들:

유령 쇼핑몰이 실제로 결제망을 열고, 송금에 활용된다

해외 직구몰을 가장한 환치기 사이트가 버젓이 정산을 받는다

결제 후 현금 환불이라는 이상한 흐름이 시스템 안에 숨어든다

이런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PG 본사가 아니다.
가맹점 모집을 맡은 하위 대행사들, 혹은 이를 통합 관리하는 외주 솔루션 업체들이다.
그들은 수수료 몇 퍼센트에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운영한다.


3. 결국 가장 낮은 곳에서 무너진다 – B2B 송금 플랫폼의 현실


이 구조의 끝에서 B2B 해외송금 플랫폼이 등장한다.
간편결제→환불→해외송금 구조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마지막 고리를 담당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책임이 여기서 묻히고 끝난다.

왜냐하면 송금 플랫폼은 "돈을 실제로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수입대금, 로열티, 수수료 등 어떤 명목이든 해외로 자금이 넘어가는 순간,
그 돈의 진짜 성격을 파악해야 할 최종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B2B 송금 기업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저 의뢰받은 대로 돈을 보냈을 뿐입니다.”

그렇다. 위험은 송금 플랫폼이 떠안는다.
정작 거래를 설계하고, 가맹점을 개통하고, 고객을 유치한 위쪽의 구조는 책임지지 않는다.


4. 누구도 나서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 연결돼 있으니까


이 구조는 서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PG는 “우리는 결제만 한다”

리셀러는 “우린 그냥 중개한 것”

소상공인은 “우린 몰랐다”

송금사는 “우린 요청만 처리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백억 원의 자금이 시스템 속을 떠다닌다.
누구의 눈도 제대로 닿지 않는 곳에서.


5. 이 시스템을 누가 설계했는가


이 모든 구조는 우연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수많은 사업자들이 생존과 경쟁, 규제 회피와 수익 확보라는 목적 속에서
의도적으로 책임을 분산시키며 진화시킨 구조물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감독당국은 규제를 만든다.
그러면 업계는 그 규제의 바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새롭게 만들어진 시스템은, 다시 감독 사각지대를 만들어낸다.
그 반복의 결과가 지금의 위험한 PG 구조다.


6. 질문은 여기서 시작돼야 한다


우리는 늘 편리함을 원했다.
1초 결제, 0원 수수료, 자동 정산.
하지만 이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누구의 손을 거쳐 그 돈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다.

이제는 묻자.

“PG사는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가?”

“누가 이 가맹점을 열었고, 그 돈은 왜 외국으로 나가는가?”

“지금 송금되고 있는 이 돈, 정말 정당한 대금인가?”

질문을 시작하면, 시스템의 균열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균열은 언젠가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이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다음 글에서는 B2B 송금의 경로를 따라가며,
“‘환율 차익’을 활용한 국경 간 송금의 이면,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든 비공식 루트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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